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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참 잘 싸웠습니다.” (한기명 의장 유훈)
18일 오후 7시 민주노총 대구본부 대강당에서 ‘자주민주통일전사 한기명 의장 1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한평생 통일운동가로 살았던 한기명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대구경북연합 명예의장은 지난해 2월 18일 세상을 떠났다. 1시간 반 가량 이어진 추모제에는 지역 시민사회계 70여 명이 참석해 그의 정신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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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기명 의장은 1942년 동덕여자고등학교에 수석 입학했으며,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위안부로 끌려가는 여성과 농민 수탈 등 일본제국의 만행에 분노하고 만주 무장 독립투쟁 소식에 호응해 민주학생연맹에 가입하면서 민족운동에 뛰어들었다. 해방 후에는 민족의 분단을 막는 일에 앞장섰으며 1990년 범민련 남측본부 결성과 함께 통일운동을 시작했다.
2018년에는 형명재단을 창립해 이사장에 취임했다. 형명재단은 남편인 이형락 선생과 한기명 선생의 이름을 한 글자씩 가져와 만든 이름으로, 장학 사업과 통일·민주화 관련 프로그램 지원사업 등을 진행했다. 한 의장은 영면에 들기 직전까지 한국진보연대 고문,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고문, 대구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고문, 대구촛불행동 고문, 민주화운동원로회 회원 등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관련기사=자주민주통일전사 한기명 의장의 마지막 가는 길···추모의 밤(‘2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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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식은 추모영상 시청, 추도사, 추모공연, 유가족 대표발언, 추모제 준비위 인사,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발언을 위해 무대에 선 이들은 한 의장과 추억을 전하면서 그의 정신을 이어 남은 과제를 풀어 내겠노라 약속했다.
백현국 대구경북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추도사에서 “전 세계적으로 파시즘이 재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통일전사 1세대인 한기명 의장님이 그렇게 바라신 평화통일은 멀어지고 있다. 살아있는 우리의 첫 번째 투쟁은 반파시즘에 맞서는 것”이라며 “자주적 평화통일은 분명 가능하다. 이런 시대를 만든 우리 책임이 없지 않다. 한 의장님을 포함한 통일전사 1세대의 정신을 놓지 말아야 한다. 의미 있는 행사 때마다 의장님은 6.15공동선언문 전문을 암송하셨다. 그 정신을 우리가 찾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명희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대구여성광장 대표)은 “낮에 2.18 대구지하철참사 추모식에선 황망한 죽음에 대해 생각했는데, 저녁에 한 의장님 추모식에 오면서는 뜨겁고 치열한 생애에 대해 생각했다”며 “탄핵광장이 열렸는데 우리 활동가들 사이엔 세상이 쉽게 바뀌지 않을 거란 만성피로, 비관이 있는 것 같다. 의장님은 오랜시간 역사에 대한 기대와 퇴행을 겪으면서도 변함없이 통일과 미래에 대해 말하셨다. 의장님의 한평생을 지켜온 힘이 무엇일까 발견하고 가슴에 새기겠다”고 말했다.
황순규 진보당 대구시당도 “늘 촛불이 가득 메웠던 거리 맨 앞에 계셨던 의장님의 빈자리가 크다. 걱정되는 마음에 작은 집회는 안 나오셔도 된다고 말을 건네면 ‘가야지. 당연한 소리 한다’고 하셨다. 90년 넘게 살아내신 전사이자 동지에겐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항상 까마득한 후배들에게도 애정을 듬뿍 쏟아 내셨다”며 “민중이 주인되는 통일 세상을 앞당기는 데 더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진경 전국보건의료노조대경본부장은 추모사에서 “어머니가 함께 해주신 영남대의료원 노동조합이 현장에서 재건돼서 훨훨 날아오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받은 사랑을 나누겠다”고 말했으며, 민소현 대구촛불행동 운영위원장도 “어머니는 유훈에도 오직 조직과 동지, 조국의 내일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의장님의 피와 땀이 스민 자주와 민주의 거리에 이젠 응원봉 세대가 모여 주권자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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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 대표로 나선 둘째 딸 이순애 씨는 “요즘같이 엄혹한 시절에도 바쁜 걸음 해주셔서 감사하다. 어머니는 우리 자식들에게 형명재단을 잘 이끌어가라는 숙제를 주셨다. 동지 여러분에게는 또다른 숙제, 끝장볼 때까지 잘 하라는 숙제를 내 주셨다”며 “어머니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좋은 결실을 보기 위해 추운 겨울 투쟁하고 있다. 함께 봄을 맞이하자”고 말했다.
1주기 추모제 준비위원회에는 34개 단체, 177명의 시민이 함께했다. 준비위를 대표해 인사에 나선 윤금순 대구경북자주통일평화연대 상임대표는 “안 계신 1년간 ‘이 자리에 계셨을텐데’ 싶은 순간이 많았다. 인간이 한생을 관통해 싸웠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며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손잡고 싸우는 것’이란 글을 본 적 있다. 한 의장님은 사랑을 이루고 가셨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싸우고 계신다. 지금의 투쟁을 승리로 이끌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의장님 앞에서 ‘열심히 잘 싸웠다’고 말씀드리면 좋겠다. 꼭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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