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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윤석열 내란 사태 후 광장은 둘로 쪼개졌다. 양쪽은 응원봉을 들고 은박 담요를 두른 여성과 서울서부지법을 때려 부순 남성으로 상징된다. 10대부터 30대까지 젊은 여성과 남성, 뭉뚱그려 그저 청년이었던 이들은 이제 좀 더 명확하게 20대 여성, 20대 남성으로 양분돼 첨예한 갈등을 빚는 주체로 그려진다. 정말 그런가?
강우진 경북대학교 교수 연구팀(경북대 정치외교학과 한국 민주주의 연구팀)은 대구사회연대노동포럼과 함께 대구에서 현재까지 18차례 열린 윤석열퇴진 대구시민시국대회 참석 청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분석을 통해 ‘응원봉을 든 키세스단’으로 그려지는 이들을 살폈다. 연구팀은 이들이 누구고, 왜, 무엇을 위해 응원봉을 들고 있는지를 물었다.
연구팀은 18차례 열린 시국대회 중 지난해 12월 14일 열린 10차 시국대회와 1월 18일 열린 15차 시국대회에서 각각 72명(1차), 110명(2차)의 청년들을 만났다. 1차에선 72명에게 개방형 설문을 진행해 광범위한 의견을 표집했고, 2차에선 110명에게 답변의 범위를 좁혀 폐쇄형으로 설문을 진행했다.
10일 오후 연구팀은 1, 2차 조사를 1차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1차 분석 결과는 ‘응원봉과 민주주의 복원’이라는 타이틀로 정리가 됐다. 강우진 교수는 “‘응원봉’은 청년들의 상징이고, ‘민주주의 복원’은 응원봉을 통해서 무엇을 원했는가를 물었을 때 나오는 공통 분모”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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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광장에 나온 응원봉,
그들은 누구인가?
연구팀은 우선 응원봉이 누구인지를 분석하기 위한 질문을 던졌다. 연구팀은 소위 ‘이대남’과 ‘이대녀’로 표현되는 젊은 남성과 여성의 대립항으로 뭉뚱하게 이들을 분석해선 제대로된 문제 분석과 해결책 제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전제로 연구 분석에 나섰다.
강우진 교수는 “전국적인 현상이지만 여성이 80% 정도 참여했다. 이건 좀 더 분석이 필요한 문제다. 특히 서울의 현상에 기반을 두어서 ‘극우화된 이대남’ 대 ‘키세스, 응원봉 혁명을 주도한 빛의 전사 이대녀’ 구도로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며 “기시감이 들지 않나, 이대남 대 이대녀 구도다. 사실 이런 구도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특정 집단을 과대 대표하고 다른 집단을 비가시화하는, 한쪽을 짜부라뜨리고, 다른 한쪽은 키우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이어 “광장의 ‘이대녀’가 20대, 30대 여성을 다 대표하는 것이냐? 사실 그렇진 않다. 서부지법 사태에서 주동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 중 젊은 여성인 경우도 있다”며 “대구경북 여성들이 전국적인 흐름과 발맞춰서 독자적 정체성을 가진 집단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여성들은 보수적인 것도 사실”이라고 짚었다.
강 교수는 “우리는 이대녀, 이대남 특히 극우화된 20대 청년 그리고 아주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20대, 30대 여성. 이런 구도로 문제를 바라보면 절대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며 “내부에 있는 하위 집단의 이질적인 특성들을 우리가 분석을 해야만, 그리고 거기에 맞는 마이크로 타겟팅을 해야만 우리가 이 문제를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배경을 갖고 연구팀 조사에 응한 대상자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살펴보면, 1, 2차 모두에서 연령은 20대(1차 62.5%, 2차 71.82%), 성별로는 여성(1차 88.89%, 2차 75.45%), 직업으론 학생(1차 72.22%, 2차 57.27%), 주관적인 가정의 계층 분류상으론 중층(1차 55.56%, 2차 67.27%)으로 응답한 이들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들은 주로 SNS를 통해 관련한 정보를 득하고(2차 65.45%), 친구와 함께(2차 46.79%) 시국대회에 나왔다. 지지하는 정당은 없는 경우가 과반이 넘었지만(2차, 54.55%), 스스로의 정치 이념을 주관적으로 평가할 때 진보(1차 71.83%, 2차 71.82%)라고 규정하는 이가 다수를 차지했다. 이러한 정치적 성향은 부모님·가족(1차 35.29%, 2차 35.45%) 또는 온라인(1차 27.94%, 2차 24.55%)으로부터 기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1차 개방형 응답을 보면,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응답한 이들은 “어떤 정당도 국민을 위하지 않는다”거나 “나를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 “매번 바뀐다”, “일 잘하는 사람이면 정당이 관계 없다”, “특별히 마음에 드는 정당이 없다”고 밝혔다. 지지하는 정당이 있다고 밝힌 이 중에는 더불어민주당을 지목하는 이가 가장 많았지만(18.57%), 이들 역시 “국힘이 싫어서”라거나, “국힘보다 나아서”, “이유는 없다”고 하거나 “민주당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지금은 민주당”이라고 밝혀 정치적 신념이나 명확한 지향을 가진 지지가 아님을 드러냈다.
탄핵 광장에 나온 응원봉,
왜, 무엇을 위해?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응원봉을 들었는가? 가장 큰 이유는 물론 12.3 윤석열 내란 사태다. 시위 참여를 결심하게 된 계기를 묻는 물음에 2차 응답자의 과반이 ‘대통령의 계엄 선포’(59.09%)를 꼽았다. 윤석열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을 이유로 꼽은 이들은 23.64%로 뒤를 이었다.
구체적으로 윤석열 정부 정책 중 가장 많은 불만을 가진 영역은 경제정책(2차, 24.55%)이고, 이어서 여성 및 젠더 관련 정책(18.18%)이다. 응답자의 75% 가량이 여성인 것을 고려할 때, 여성 및 젠더 정책보다 경제 정책에 더 큰 불만을 가진다는 응답은 현 시국을 살아가는 청년 세대가 갖는 공통적 불안과 우려가 어디를 향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연구팀은 여성 참여자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 젠더 정책만 특정해 평가를 묻기도 했고, 응답자의 92.73%(2차)가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답했다. 같은 물음에 대한 1차 개방형 답변을 보면, 응답자들은 다수가 윤석열 정부가 성평등 정책에 대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평했다. 한 응답자는 “노력은 고사하고 성평등을 알고 있는 의문”이라고 했고, 또 다른 응답자는 “전혀 노력하지 않았으며, 특히 온라인상에서 젠더 갈등은 더 심해졌다”고 평했다.
또 광장에 나선 응원봉들은 현재 한국의 민주주의의 건강성에 의문을 품었다. 연구팀이 2차 조사에서 민주주의의 건강성과 관련해 ‘현재 한국 민주주의는 어떻게 작동다고 생각하느냐’, ‘현재 한국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2개 물음을 던졌는데, 응답자 중 다수가 두 질문에서 부정적은 응답을 가장 많이 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응답자 중 절반이 ‘민주주의 작동’에 대한 물음에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는데, ‘전혀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한 11.82%를 더하면, 61.82%가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민주주의 위협’에 대한 물음에도 92.73%가 압도적으로 위협받고 있다고 응답했고, 그 이유로는 ‘행정부 또는 대통령의 권력 남용 또는 비민주적 행태’가 가장 많이 꼽혔다(76.85%).
부정평가는 주관적인 자신의 계층 분류를 ‘하층’으로 한 이들이 더 크게 했다. 중상층 이상으로 응답한 이들 중에선 41.67%가 ‘매우 잘 작동’ 또는 ‘어느 정도 잘 작동’한다고 응답했지만, 하층으로 응답한 이들 중에선 26.93%가 잘 작동한다는 답을 했고, 73.07%가 제대로(전혀)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국회에 대한 신뢰도 크진 않았는데, ‘국회가 귀하를 얼마나 잘 대표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국회가 귀하를 정책적으로 얼마나 잘 대표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두 가지 물음에서 응답자들은 각각 57.27%, 60.91%가 대표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강 교수는 “‘에타(에브리타임)’에서 제가 얻은 정보지만, 청년들은 기성 정치권을 ‘정치적 보이스피싱’이라고 생각한다. 끔찍한 얘기”라며 “수요, 공급 차원으로 본다면 수요에서 이렇게 불만이 있다면 공급에선 ‘아니’라고 할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구경북의 청년들, 특히 사회경제적으로 하층 청년을 대표하기 위해 국회가 이러저러한 것을 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있느냐는 이야기”라며 “안타깝지만 정치학을 공부하고 가르치고, 학생들과 맨날 토론하는 저도 기억을 못하겠다.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고 다시 짚었다.
탄핵 광장에 나온 응원봉,
무엇을 원하나?
사회경제적으로 중하층에 있으면서, 현재의 국회나 정부가 ‘나를 대표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그로인해 민주주의의 건강성에도 의문을 품는 이들이 응원봉을 통해 획득하고자 하는 것은 그래서 ‘민주주의의 복원’이고, 복원된 민주주의란 개인의 목소리가 자유롭게 발현되고 직접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효능감 있는 민주주의다.
2차 조사에서 ‘민주주의의 의미’에 대한 물음에서 응답자들 중 32.73%가 ‘국민이 권력을 갖는 정치 체계’로 정의했고, 30.0%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제도’로 정의했다. 곧 이어 집회 참석을 통해 배우거나 느낀 점에 대한 물음에서 41.82%가 ‘정치 참여의 필요성’을 꼽았다는 사실이 이를 설명한다.
특히 이번 12.3 내란 사태로 인한 정치 참여가 이러한 효능감 있는 민주주의의 필요성이나 실현 가능성을 더 크게 만든 것으로도 분석된다. ‘이번 시위를 통해 가장 강하게 느낀 감정이 무엇이냐’는 1차 조사 물음에서 응답자 중 여럿이 “직접 참여하니까 책임감이 증가한다”거나 “연대와 동질감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시위에 동참하게 됐다”, “정치에 자주 관심을 가져야 겠다는 느낌이 든다”, “정치에 대해 더 자세히 알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등의 답을 내놨다.
강 교수는 “역설적으로 위기는 대구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금이 대단히 중요한 모멘텀”이라며 “이 위기를 지난 촛불 광장처럼 헌정 체제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한국 민주주의가 지속가능한 복원 탄력성을 회복할 수 있느냐 아니냐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추운 동성로에서 응원봉을 들었던 사람들이 대통령 하나 갈아치우자고 응원봉을 든 건 아니다. 새로운 시대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해야 되는 것은 대통령을 ‘그냥’ 바꾸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바꿀 것이냐, 어떤 정부를 만들 것이냐, 도대체 왜 우리는 10년 동안에 한 번은 국정농단, 한 번은 내란이라는 정말 끔찍한 역사적 퇴행을 겪어야 되는지, 어떻게 하면 이걸 반복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중요한 것은 지금은 대구에서 ‘최대 민주주의 수호 연합’이 필요한 것”이라며 “이것이 만약에 잘 된다면 이후에 ‘민주주의 개혁 연합’으로 이것을 진전시킬 수 있는 게 중요하다. 지난 촛불광장에서 75%에 달하는 촛불 연합을 문재인 정부가 개혁 연합으로 전환시키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결국은 촛불정부가 5년 만에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이 처참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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