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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2.3 윤석열 내란 사태’로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무도한 자에게 권력을 내어주었을 때 국가시스템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처절한 경험을 하며, 대한민국은 다시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21세기의 민주주의는 형형색색, 각양각색의 응원봉처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뉴스민>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에서 응원봉을 든 그들, ‘민주주의자’들을 만나고, 기록한다.
대구의 윤석열 탄핵과 민주주의를 외치는 광장에서 김민규(23) 씨는 발언하면서 일부러 마스크를 벗고 실명을 공개했다. 20대 남성이 긍정적으로 불리지 않는 시대, 대구의 20대 남성으로서 ‘윤석열 파면’을 외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트럭 위에서 김 씨는 지금의 ‘이대남’이 갑자기 등장한 표상이 아니라고 했다. 반지성적인 온라인 커뮤니티 문화, 타인을 차별하고 소수자성을 희화화하는 ‘일베식’ 놀이 문화가 굳어진 교실 환경, 군 생활을 거치며 받은 피해가 쌓이며 특정한 정체성을 오랜 기간 형성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김 씨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두 가지 방향에서 노력이 절실하다고 설명한다. 먼저 20대 남성 스스로 냉소주의를 벗어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행동해야 한다. 또한 그들이 민주주의의 광장으로 향할 수 있도록 광장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김 씨는 스스로의 언어가 없는 20대 남성도 광장에서 함께할 수 있도록 광장에서 그들이 문제로 여기는 공동의 의제도 더욱 다뤄질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를테면 ‘기후위기’처럼 10~20대가 민감하게 여기는 의제가 좀 더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다.
아래에 6일 김 씨와의 인터뷰를 대화록으로 정리했다.
![](https://www.newsmin.co.kr/news/wp-content/uploads/2025/02/DSC00617-683x1024.jpg)
Q: 계엄 선포를 들었을 때는 뭘 하고 있었나.
김: 잘 준비하고 있었다. 트위터에 계엄 어쩌고 하는 말이 있어서 게임 얘기인가 했는데 뉴스 속보 보니 현실이더라. 욕이 나왔다. 무섭다는 생각보다 화가 났다. 국회로 뛰어가는 시민의 모습이 보이는데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트위터에서 4일 동성로에서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그리로 향했다. 헌법과 법률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내란 사태 동안 대자보를 쓴 적이 있는데, 찢어졌다. 윤석열 퇴진을 요구하기 위한 학생총회도 추진됐는데 성사되지 않았다. 학생총회를 하러 광장에 나갔는데 성사될 리 있냐고 비웃고 간 학생도 많다.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집단적으로 배제하는 그런 문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Q: 지금 20대 남성이 광장에 나오는 현상을 어떻게 여기나.
김: 20대 남성에게 예를 들어 페미니즘이라든지, 어떤 것들에 대해 소위 ‘발작 버튼’이란 게 있다. 조건반사적으로 분노를 일으키는 거 같다. 그리고 법원 폭동 사건은 조금 더 다른 기제가 있다. 종교 세력이 얽혀 있어서 벌어진 사건이다.
Q: 20대 남성에게는 페미니즘과 같은 그들의 언어가 없는 거 같다. 그런 상황에서 극우적인 종교나 음모론이 그들을 묶어주는 의제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김: 그런 영향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20대 남성이 느끼는 억울함의 가장 큰 부분은 군대가 있는 것 같다. 남성은 자라면서 ‘남자는 군대 가야지’ 하는 말을 듣고 자라고, 실제 군대에 가서는 인격적으로 큰 피해를 당한다. 그런데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다시 ‘남자는 군대에 가야지’하고 말하고, 다른 얘기, ‘군 인권’ 이야기를 하면 다시 반발한다. 그래서 문제 해결을 위한 담론 형성 자체가 어렵다.
채 상병 문제는 사람이 군대에 가서 부당한 지시에 따라 죽으면 안 된다는 상식적인 이야기인데, 왜 이 상식적인 문제가 20대 남성의 의제는 되지 못하나. 문제를 느끼면서도 문제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Q: 집회 발언에서 ‘만들어진 이대남’이라고 언급했었다.
김: 20대 남성은 스스로를 ‘이대남’이라 잘 부르지 않는다. 혐오가 일상화된 이미지가 씌워져 있다. 20대 남성 중에는 아주 일부가 적극적으로 타인을 차별하고 희화화하는 이들이 있고, 그보다 많은 사람이 소극적으로 동조하는 구조다. 교육 현장에서 이러한 행위가 교정되지 않는다. 교실에서 ‘응디시티'(故 노무현 대통령 비하 노래)를 불렀던 친구가 있었는데, 누구도 이를 문제라고 하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거부감이 없어지고 확산되는 거다. 교사 입장에서 제지하는 것이 정치적인 것처럼 민감하게 느껴서 어려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조금만 뭘 해도 민원이 들어오니까.
Q: 민주주의를 지키자는 광장에 청년 남성이 오기 어려운 이유도 언급한 교육 과정이나 문화와 상관이 있을까.
김: 관련 있는 것 같다. 민주주의를 배울 때, 선거와 투표 이상의 이야기가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여성의 경우 일상에서 배우는 게 있다. 권리가 침해당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고,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현실에서 권리를 침해받으면서 배운다. 남성의 경우에 권리를 침해받을 일이 있겠지만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잘 보기 힘들다.
20대 남성의 언어가 마땅히 없긴 하다. 그런데 그 언어를 원하는지는 모르겠다. 군대에서 피해를 보는 것이 문제인 거면 군 인권을 외쳐야 하는데 안 그런다. 예전에는 이준석으로 표상되는 정치세력이 제공했던 희열을 그 집회에서 일부 제공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과거 대화가 통하던 친구가 시간이 지나면서 대화 자체가 되지 않게 되는 경험이 있다. 그 친구가 입시에 성과를 못 내면서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특정 정치 세력을 극심하게 선민주의적이라면서 혐오했다. 내가 확인한 그 모습을 설명해 주니 나에게 욕을 했다.
이렇게 세계관을 형성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소위 지금의 ‘민주주의 광장’과는 점점 담을 쌓는 거다. 그곳에 가면 집회 시작부터 사람들 간에 혐오와 차별에 주의하는 것부터 배우는데, 애초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거다. 그 친구와 멀어지게 됐는데, 소식 들어보니 그 친구는 국민의힘에 가입했다더라.
Q: 윤석열 내란 사태를 겪으며, 평소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도 대화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걸 느낀다. 공통적 합의라는 게 축소되고, 서로 다른 세상을 산다는 느낌이다.
김: 빅테크의 알고리즘 문제가 크다. 세상을 스스로가 원하는 대로 구성하기 쉬워진 시대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듣기 싫은 것은 차단해 버린다. 또 문제는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가 점차 없어지는 점이다. 예를들어 나는 겪어보지 못한 2002년 월드컵 이야길 많이 들었다. 함께 열광하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부족하다. 원더걸스 같은 전 세대가 관심 갖던 유행가라든지,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이라든지 그렇게라도 같이 향유하는 것조차 없다.
Q: 집회에 들고 온 응원봉 문화는 반대로 지금도 유지되는 ‘함께 향유하는 문화’인 점이 유의미한 듯하다. 20대 남성에게 특히 그런 문화가 부족한 것인가.
김: K-POP이 투쟁 문화와 닮았다. 팬들은 덕질하면서 투쟁과 연대를 배웠다. 남성은 문화라고 해봐야. 롤(게임) 정도가 있겠다. 우리 사회가 개인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전가하고, 성과를 내지 못하는 건 개인의 책임이라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더 쉽게 냉소하게 된다.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세상이니 연대를 배우기는 쉽지 않고. 그건 생물학적이기보다는 사회적 문제. 특히 군대의 영향이 큰 것 같다. 그 경험 속에서 ‘나거한'(나라가 거대한 한녀다) 같은 말도 나온다.
Q: 어떻게 하면, 20대 남성도 이끌어낼 수 있을까.
김: 어렵다. 20대 남성으로 표명하며 자유발언을 하면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도 올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내가 이 집회에서 경험한 것을 같이 느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나는 박근혜 퇴진 집회에 어쩌다 온 적은 있지만 그때는 너무 어렸고, 머리 굵어지고 나서는 윤석열 계엄 이후 12월 4일이 처음이다. ‘길을 여는 민주노총’, 그리고 가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며 고맙기도 하고 감동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나 감정을 공감하는 사람들이 대구에서 모여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감동이 느껴지고, 또 소속감도 느껴졌다.
Q: 20대 남성도 공론장에서 함께 목소리를 내려면 공통의 의제가 필요하지 않을까?
미래에 대한 불안함은 큰 것 같다. 낙오될 것에 대한 불안함. 그런데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 ‘기후 의제’가 더 효과적일 수는 있을 거 같다. 기후 문제는 청년 남성층에서도 크게 관심을 갖는 문제다. 사실 이 문제에서 ‘미국과 중국이 저러는데 어쩌겠어’라는 냉소가 있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부로 느끼는 것이 크기 때문에, 이 점이 공통의 의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도 한다.
20대 남성으로 표상되는 사람들을 괴물로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도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문제를 기존 정치권에서는 그냥 덮어놓고 있었다. 20대 남성 스스로도 사유해야 한다. 나는 왜 화가 나는지,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지. 사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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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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