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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프로그램이 방영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노동이 필요하다. 그 숨겨진 노동 중에는 방송작가의 노동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과거 작가의 임금이 ‘원고료’로 불린 것처럼 작가의 업무가 대본을 작성하는 업무로 한정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과 다르다. 작가는 방송 원고 작성 외에도 주제 선정, 섭외, 조정, 리서치, 취재, 때로는 자막 제작까지 프로그램 제작 전반에 관여한다.
프로그램 제작 전 과정이 작가의 손을 거친다고 여겨도 무방하다. 그에 비해 받는 임금은 최저임금을 밑돈다. TV 작가와 라디오 작가의 근무 체계도 다르고, 작가마다 근무 시간도 달라 표준화하기 어렵지만, ‘저임금’은 공통적 특징이다.
전국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에 따르면 대구MBC 방송작가의 급여를 1달 기준으로 환산하면 최저임금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TV 작가는 TV 프로그램이 대체로 주 단위로 편성되는 탓에 급여도 주급을 받는다. 5년 차 TV 작가의 경우 주급을 41만 원 받아, 월급으로 환산하면 164만 원이다. 이들은 대구MBC와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하는 탓에 최저임금 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
매일 편성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작가 급여는 일급 기준으로 산정된다. 13년 차 라디오 작가의 일급은 7만 2천 원. 이때 주 5일 편성되는 프로그램의 작가는 144만 원, 주 7일 편성되는 프로그램의 작가는 201만 6천 원이 된다.
만약 제작한 프로그램이 결방되기라도 하면 작가들은 일을 하고도 해당 프로그램을 제작한 것에 대한 급여는 받지 못한다.
2022년 MBC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첫 판결이 나온 이후 저임금, 불안정노동이 관행처럼 굳어진 방송작가들도 본격적으로 권리 찾기에 나서고 있다.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는 지난해 5월부터 전국 문화방송 15개사와 단체교섭을 시작했다. 대구MBC 작가 조합원들은 지난 6월 대구MBC와 상견례 한 이후 지난 달까지 6차례 실무교섭을 진행했다. 정식 교섭으로는 처음이었으나 2월 현재까지 타결되지 않고 있다.
방송작가지부에 따르면 당초 작가들은 임금 10.3% 인상을 제안했으나 대구MBC는 라디오 작가 2%, TV 작가 4% 임금 인상을 제시했다. 해당 인상안을 급여로 환산하면 5년 차 TV 작가 주급은 42만 6,400원이 된다. 13년차 라디오 작가는 주 5일 146만 8,800원, 주 7일은 205만 6,320원이 된다. 여전히 최저임금을 밑돈다. 노조는 이외에도 표준계약서 도입, 기본 과업 계약서 명시 등도 요구했다.
노조의 여러 타협안 제시에도 대구MBC는 진척된 제안을 내놓지 않았다. 사측의 제시안에서 1%를 더한 TV 작가 5%, 라디오 작가 3% 인상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노조는 방송 제작의 중추 역할을 하면서도 저임금이 일상화된 고질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4일 오전 11시 대구MBC 앞에서 방송작가 임금 현실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염정열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장은 “2025년 최저임금이 시급 1만원을 넘겼다지만 대구MBC 작가들 중에서 최저임금 이상을 받는 작가는 아무도 없다. 20년 이상 고참 작가 몇몇이 4주간 방송 삭제되지 않고 송출되는 경우에 겨우 200만원 넘는다”며 “대구MBC가 작가들을 배려했다고 하지만, 작가도 많이 배려했다. 경제가 어려울 때 원고료가 깎이는 것도 감내했고, 코로나 시기 원고료 동결도 이해했다. 회사 경영이 어렵다는 것도 받아들여서 인상율을 낮춰 합의하려고 했지만 이제는 계약직과 형평성 문제를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지혁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작가다. 수많은 노동을 담당하며 가치를 생산하는데도 제대로 된 임금은 받지 못하고 있다”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말하는 방송에서 모순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MBC는 “교섭을 9차례 성실히 진행했다. 당사는 최근 몇 년간 대규모 영업적자 상황과 제반 경영여건 등을 고려하여 원고료 인상안을 제시했다”며 “방송작가지부측에서 교섭을 요구할 시 언제든지 응할 준비가 되어있으며, 성실하게 교섭에 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중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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