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같은 역사] 잃은 권력을 대하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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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이란 어떠한 존재일까? 다른 것은 몰라도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공화국과 달리, 왕정에서 왕은 주권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국민이 선출한 우리 시대 최고 권력자와 조선시대 왕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 권력의 크기를 가지고 우리는 종종 일대일로 대응시켜 설명하기도 한다. 그만큼 조선시대 왕은 절대 권력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국가의 유일한 주권자였다.

이러한 왕이 자기 권좌를 잃었다. 1623년 음력 3월 12일의 일이었다. 16년간 왕 노릇했던 광해군이 폐위되었고, 능양군(인조)이 보위에 올랐다. 권력 잃은 왕을 죽이지는 않았던 조선의 전통 탓에, 광해군은 왕에서 죄수로 전락해 힘든 삶을 이어가야 했다. 그렇게 11년도 더 지난 1634년 음력 12월 21일, 세월만 보면 잊혀질 수도 있는 폐주였지만, 이날처럼 간혹 먼 시골 예안(현 안동시 예안면 일대)까지 그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소식이 전해진 게 음력 12월 21일이었지만, 이 이야기는 꽤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인조반정의 공신이었던 이괄이 반정 성공 후 논공행상에 대한 불만을 품고 그 이듬해인 1624년 난을 일으킨 게 바로 ‘이괄의 난’이다. 반란에 대한 반란이었기 때문에 인조는 반정으로 왕좌를 잃었던 폐주 광해군을 호서 지방으로 옮길 필요가 있었다. 조정 중신들 모두 그렇게 권했고, 그 건의에 따라 인조는 자신의 인척이었던 홍진도洪振道로 하여금 광해군을 압송토록 했다.

전직 왕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로, 광해군은 그나마 말이라도 타고 갈 수 있었다. 그러나 홍진도는 이마저도 눈꼴이 사나웠던지, 길을 가던 중에 뒤따르던 하인들로 하여금 폐주가 탄 말을 급하게 채찍질하게 했다. 당연히 말은 놀라 날뛸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광해군은 말에서 떨어졌다. 그 충격으로 광해군은 까무러쳐 인사불성이 될 정도였다. 그러나 홍진도는 말안장에 걸터앉아 태연하게 이를 지켜봤다. 고의적인 모욕이었다.

이러한 모욕은 그 이후에도 이어졌다. 죄수를 압송해서 가는 길에 숙식은 주로 역원이나 각 고을 관아를 이용했다. 이럴 경우 그나마 전직 왕에 대한 예우로, 왕에게 지방관이 묵는 동헌이나 객사를 이용하게 하고, 자신은 그보다 낮은 방을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홍진도는 자신이 늘 동헌을 사용하고, 광해군은 관아 노비들이나 하급 관리들이 머무는 낭청에 머물게 했다. 16년간 왕으로 모셨던 이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마저 상실하자, 조정 대간들까지 나서 홍진도를 비판했다. 물론 이러한 비판이 인조에게 받아들여질 일은 없었다.

광해군에 대한 모욕주기는 홍진도만의 일은 아니었다. 충청감사 이명준李命俊은 관련 보고를 올리면서 하다못해 ‘폐주’라고 하지도 않고, 광해군의 본명인 ‘이혼’을 직접 기재하고, 그 위에 적賊자를 추가 했다. ‘도적 이혼’으로 광해군을 불렀다는 말이다. 왕의 이름에 들어 있는 글자마저 피해 이름을 지었던 조선 시대 문화를 생각하면, 이는 일상적인 모욕주기 수준을 넘은 행위였다. 이 때문에 심지어 이명준과 친한 사람도 그를 비난할 정도였지만, 인조는 이 보고서를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런데 이 기록이 있던 당시 광해군에 대한 문제가 다시 대두되었다. 당시 강학년姜鶴年이라는 인물이 벼슬을 거부하면서 올린 상소 때문이다. 이 상소에서 강학년은 11년 전에 있었던 반정과 광해군을 대하는 당시의 시세에 대해 비판하고 나섰다. 그리고 왕의 덕과 조정의 정책 등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박하면서, 가감 없이 자기 의견을 피력했다. 의기 있는 행동이었다.

당연히 조정은 들끓었고, 강학년에 대한 비판이 줄을 이었다. 이렇게 되자 홍진도의 동생 홍진례洪振禮가 상소를 올려 ‘광해가 여전히 생존해 있어서 강학년 같은 이가 이런 상소를 올린다’면서, 광해군을 제거하라고 청했다. 승정원에서조차 상소 내용이 너무 심하다면서 받아들이지 않자, 재차 상소를 올려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 했다. 권력 잃은 왕의 긴 생명만큼, 그의 생명을 빼앗아야 한다는 논의도 길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한 줌밖에 되지 않은 권력이라도 그것이 작동될 때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한 국가의 최고 권력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모든 권력은 항상 옮겨 다니기 마련이고, 이처럼 권력이 떠나면 남는 것은 자연인 이혼(광해군의 본명)일 수밖에 없다. 16년의 왕좌가 아무리 막강했어도, 자연인 이혼은 말에서 떨어지고 죽음의 위협 앞에 시다릴 수밖에 없는 게 자연의 이치이다. 특히 막강했던 권력과 동행했던 사람일수록 이러한 위험은 크기 마련이다. 권력이 영원할 수 없다는 생각, 그리고 권력이 떠났을 때 때 자연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