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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2.3 윤석열 내란 사태’로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무도한 자에게 권력을 내어주었을 때 국가시스템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처절한 경험을 하며, 대한민국은 다시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21세기의 민주주의는 형형색색, 각양각색의 응원봉처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뉴스민>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에서 응원봉을 든 그들, ‘민주주의자’들을 만나고, 기록한다.
12.3 윤석열 내란 사태는 역설적이게도 노동자와 시민의 끈끈한 연대를 드러냈다. 연대는 과거에도 분명 존재했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시민들은 좀 더 절박하게, 또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응원봉과 깃발을 들고 노동 투쟁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지난 10일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고공농성장에 와서 1박 2일 희망텐트 집회에 함께한 서울 시민 최다한(23) 씨도 그들 중 한 명이다. 다한 씨는 소현숙, 박정혜 씨의 고공농성장 아래에 마련된 무대에 올라 노래패 꽃다지의 ‘내가 왜’ 한 소절을 부르며 자유발언에 나섰다.
“‘찬 바람 부는 날 거리에서 잠들 땐 너무 춥더라 인생도 시리고 도와주는 사람, 함께하는 사람은 있지만 정말 추운 건 어쩔 수 없더라’···(소현숙, 박정혜 씨가) 존경스럽고 뜨거워지지만, 속상하고 걱정되기도 합니다. 두 동지가 이 땅을 밟는 것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왔습니다. 시민들의 참여도가 높아진 이 광장이 그래서 저는 참 좋습니다.”
다한 씨가 구미로 향한 이유 중 하나는 ‘소외감’이다. 살아오면서, 그리고 학생 시절 공장에서 일하면서 소외감을 톡톡히 느꼈다. 다한 씨는 비록 일한 현장이 다르고, 살아온 과정이 다르더라도 소외된 사람들끼리 연대할 때 얻는 기쁨을 알게 됐다.
다한 씨는 비상계엄 선포 이후 포고문에 시위를 금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을 확인하며 곧바로 농성 중인 노동자들을 떠올렸다. 학생 시절 학생 단체 활동 중 연이 닿은 세종호텔 해고자들이 호텔 앞에 만들어둔 노숙 농성장을 떠올렸다. 위협을 느끼면서도 곳곳에서 열리는 집회와 시위에 오히려 나서게 됐다.
윤석열 관저 주변에서 열린 ‘한강진 시위’를 꾸준히 지켰고, 한화그룹 본사 앞에서 농성 중인 조선하청노동자들의 농성장이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그곳에도 달려갔다. 그러면서 구미에 있는 한국옵티칼 고공농성장에도 발걸음이 이어지게 됐다.
“생각해 보면 여러 현장에 다닌 이유는 ‘소외감’인 거 같아요. 차상위 계층 집안에서 태어났고, 힘든 학창 시절을 보냈고, 집안이나 사회에서 여성 혐오적 상황에도 놓였고요. 20살 되자마자 공장에서 일했는데, 그때도 느꼈어요. 월경해도 화장실도 제대로 갈 수 없어서, 여성 노동자의 고통을 알죠. 식품 공장에 다녀서 한국옵티칼과 다르긴 하지만, 이해는 해요. 집회 현장을 보면, 장애인, 노동자, 여성, 성소수자처럼 소외 당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어요. 요즘의 집회는 소외감 자체가 새로운 공감대가 돼서 꼭 같은 집단이 아니어도 서로를 드러내고 함께하기 위해 연대에 나서는 모습이 보여요. 제가 여성으로서, 노동자로서 받았던 눈총, 장애인이 지하철을 탈 때 받는 눈총. 다르지만 유사한 그 소외감도 연대의 근거가 되는 것 같아요.”
다한 씨는 거창한 욕심 없이, 윤석열 내란 사태 이후 우리 사회가 ‘인권 감수성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곳이 되길 바란다’고 설명한다.
“시민들의 인권 감수성이 높아지면 좋겠어요. 소외감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 의식도 인권 감수성이라 생각해요. 나의 일이 있고 너의 일이 있지만 너와 나는 같이 차별받는 존재다. 그리고 설령 본인이 차별받지 않는다고 해도 타인의 아픔에 조금 공감하고 같이 싸워줄 수 있는 사회가 저는 민주시민 사회라고 생각해요. 윤석열이 탄핵이 된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고 탄핵 이후의 세계가 중요해요. 감수성과 연대 의식이 계속해서 살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