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자들] ⑮ “나는 경상도녀, 키세스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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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2.3 윤석열 내란 사태’로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무도한 자에게 권력을 내어주었을 때 국가시스템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처절한 경험을 하며, 대한민국은 다시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21세기의 민주주의는 형형색색, 각양각색의 응원봉처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뉴스민>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에서 응원봉을 든 그들, ‘민주주의자’들을 만나고, 기록한다.

매주 토요일 오후 5시, 대구 동성로 CGV한일극장 앞에선 윤석열퇴진 대구시민시국대회가 열린다. 윤석열 대통령 체포 영장 집행이 임박한 11일 오후에도 어김없이 시민들이 모였다. 영하의 강추위에도 이들은 ‘윤석열 퇴진’, ‘국민의힘 해체’ 구호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참가자 중에도 깃발을 든 이들은 한쪽 옆으로 빠져 선다. 노동조합, 시민단체, 정당 등 단체 참가자들 깃발 사이 개인이 직접 제작한 깃발도 군데군데 자리한다. 이날 어떤 이는 낚싯대에 깃발 천을 묶었고, 또 어떤 이는 프린트한 A4용지를 코팅해 미니 깃대에 붙였다.

홍예빈 씨(22, 달서구)도 깃발을 들었다. 주변보다 큰 사이즈의 깃발을 홍 씨는 쉬지 않고 온몸으로 흔들었다. 홍 씨가 든 깃발에는 ‘내 손에 있는 막대가 깃대 같냐 죽창 같냐. 달린 게 깃발일 때 잘 생각해라. 모범시민과 무법시민 쌍도녀 훈정생템의 소유자도 네놈에게 달렸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홍 씨가 직접 제착한 깃발로, 대구 집회에는 이날 처음 들고나왔다.

▲홍예빈 씨 깃발에는 ‘내 손에 있는 막대가 깃대 같냐 죽창 같냐. 달린 게 깃발일 때 잘 생각해라. 모범시민과 무법시민. 쌍도녀 훈녀생정템의 소유자도 네놈에게 달렸다’고 적혀 있다.

원래 홍 씨가 들고 다닌 깃발은 이보다 한 치수 작았다. ‘×잡놈들 꺼졌으나 내 촛불은 안 꺼진다. 내 나라 돌려줘. ×××’라고 욕설도 섞여 있었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분노를 담아 만들었는데, 막상 집회에 나와보니 10대 참가자가 많았다. 욕설을 빼고 문구를 새로 작성하는 김에 크기도 키워서 새로 제작했다.

깃발에 써진 문구를 해석하면 이렇다. ‘내 손에 있는 막대가 깃대가 될지, 죽창이 될지 그리고 내가 모범시민이 될지, 무법시민이 될지는 윤석열에게 달렸다. 경상도 여성의 훈녀생정템인 이 깃발을 소유한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도 윤석열에게 달렸다.’ 문구는 순화했으나 여전히 분노가 느껴졌다.

홍 씨는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해제된 다음 날 4일, 이 모든 소식을 접했다. 고시생이라 공부와 운동만 반복하는 일상을 살고 있었다. SNS도 안 들어간 지 한참이었다. 4일 국제엠네스티가 후원자들에게 보낸 문자를 받고선 지금 한국이 비상상황임을 알았다.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는 4일 긴급성명을 통해 ‘비상계엄령 선포는 헌법과 국제법에 명백히 위배되는 행위’라고 밝혔다.

상황을 늦게 알고 나니 더욱 화가 났다. 재난문자조차도 없었다. 바로 그 주 토요일, 서울 집회에 참석했다. “제가 성격이 좋지 않아서 열 받으면 몸부터 나가거든요. 정신 차려보면 이미 버스를 예매한 상태, 집회 한 가운데 앉아 있는 상태더라고요. 12월 7일은 윤석열 탄핵안이 투표 불성립에 따라 부결된 날이잖아요. 그날부터 일주일간 혼자 서울에 남아 매일 집회에 나갔어요. 그즈음 방한화도 새로 샀어요. 오늘 신고 온 이거요.” 발목이 긴 패딩 방한화를 들어 보이며 홍 씨가 말했다.

▲홍예빈 씨는 지난 한 달간 서울 한남동, 남태령 대첩, 구미 옵티칼 고공농성 희망텐트에도 다녀왔다.

그가 지난 한 달간 가장 강하게 느낀 건 ‘일반 시민이라는 특권’이다. 집회에 나가면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이들을 많이 보는데, 경찰이 그들과 일반 시민을 대할 때 태도가 다르다고 느꼈다. 시민들이 함께 있으면 강하게 밀지 않는 경찰이, 민주노총이 주축인 집회에선 방패를 들고 미는 장면을 여러 번 봤다.

“정확하게는 특권이 아닌 ‘차별’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노동조합분들도 같은 시민이잖아요. 그런데 경찰이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처럼 대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걸 시킨 사람이 있을 거 아니에요.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들보다 시킨 사람의 느자구 없음(형편없음)이 여실하게 느껴져서 (그게) 너무 옹졸하더라고요.”

홍 씨는 남태령 대첩에도 홀로 다녀왔다. 8일 열린 구미 옵티칼 고공농성 희망텐트에도 다녀왔다. 홍 씨는 “제가 바로 그 키세스단”이라고 자랑스럽게 덧붙였다. 그가 이렇게 한 달 내내 거리에 선 이유는 뭘까.

“박근혜 탄핵 시기에 제가 중학생이었거든요. 부모님이 말려서 집회에 나가지 못했던 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어요. 그때도 ‘아무것도 안 한 게 평생 부끄럽겠구나’라고 생각했거든요. 정말 그다음 생각날 때마다 이불을 걷어찼어요. 그래서 이번엔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떳떳하고 싶다기보단 덜 부끄럽고 싶어요.”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