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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레닌 공원이 어둠을 껴입으면>(실천문학사, 2011)을 출간한 임윤 시인은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울산에서 자랐다. 대학을 졸업한 뒤, 1990년부터 연어 사업에 뛰어든 그는 러시아 사할린과 쿠릴열도, 중국 등지를 10여 년간 주유하였다. “통조림용 빈 깡통을 싣고 동해를 헤엄쳐 / 달포 만에 코르샤코프 항에 닿은 화물선 / […] / 비닐 랩으로 친친 감긴 빈 깡통들 / 겉면에 그려진 연어들이 불빛에 파닥인다 / 자작나무 즐비한 아무르 강 건너 / 모스크바로 이어질 시베리아 횡단철도 / 또다시 낯선 길 떠나야 할 연어들 / […] / 강을 떠났다 강으로 돌아오고 / 바다에서 왔다가 바다로 돌아갈 연어들 / 수평선 너머 가쁜 숨들이 꿈틀거린다”(‘항로’)
시인은 연어를 사고 팔기 위해서, 그리고 짧은 약력에 다 적지 못한 또 다른 사연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여러 도시와 지역을 누볐다. 거기서 만난 재소 고려인(카레이스키)·재중 동포·탈북 이주민은 고향을 잃고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뜻에서 회귀성 어류인 연어나 같다. ‘검은 눈동자’·‘이도백하에 내리는 눈’·‘피어나다’에 그들의 슬픔과 그리움이 묘사되어 있다. ‘멸치 젓갈’전문을 보자.
“비행기 도착 시간 지나 허겁지겁 달리는 공항길, 회색 구름이 낮게 스민다 / 아내가 밑반찬으로 보낸 멸치 젓갈 / 로비에 들어서니 반도 끝자락에서 헤엄쳐 온 낯익은 냄새 / 싸늘한 주위 시선, 공항 경찰이 다가와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을 건낸다 / 로비에 퍼지는 지독한 냄새가 마피아의 소행이라 판단되기에 검색중이란다 / 멸치 젓갈 담은 유리병이 깨져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고 사건이 해결되기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 멀찌감치 인파를 헤치며 노파가 다가온다 경상도 어느 바다가 고향이라며 손을 부여잡는다 / 젓갈 냄새만은 기억하는 노파, 세월 지나도 잊지 못한 보리밥 덩이에 얹어 먹던 곰삭은 젓갈 / 샛강 거슬러 오를 날 기다리며 지느러미 꺾일 때까지 태생의 냄새 기억할 카레이스키 연어들”
러시아와 중국을 누빈 시인의 이력은 김동환·백석·이용악이 선보였으나 그 후로 끊겨진 한국 근대시의 한 유산인 북방(北方) 정서를 시 속으로 다시 불러온다. 일제 시대에 생활고나 정치적 이유(독립 투쟁)로 만주와 연해주(沿海州. 러시아명은 프리모리예, 주도는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난 조선인은 200만 명 가까이 된다. 그들에게 북방은 새로운 꿈을 펼칠 이상의 공간이자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이 가득한 비극의 공간이었다. 한국 근대시 속의 북방 정서는 유민의 삶과 정서를 드러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사실주의적이고 농본적이며 긴 호흡의 시를 만들어냈다. 사실적인 이야기조(調)와 한 행이 길쭉길쭉한 임윤의 시는 백석을 연상시킨다.
시인은 러시아와 중국에 흩어져 있는 일제 시대의 유민에게서 연어의 본능을 읽었다. 그런데 연어는 거기에만 있지 않았다. 중국에 가족을 두고 한국에서 취업한 조선족들이 그들이다. ‘황사’에 나온 박 씨 같은 이들에게는 한국은 오히려 낯선 곳이며 만주가 그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일 것이다. 이런 교차성은 조선인이 겪은 근대의 다면성과 민족 개념의 복합성을 나타낸다.
연어는 시인의 연어 사업 경험과 러시아와 중국 일대에 살고 있는 동포들의 망향 의식을 압축한 이 시집의 중심적인 시어다. 그런데 시인은 이 시집에 바다 생물로 된 또 다른 시어 하나를 추가했다. “킹크라비를 마당에 풀어놓았네 / 빛이 들지 않는 오호츠크 심해 / 지독한 수압을 견디며 살아온 그가 / 지상에 닿아 헐거워진 걸음 절룩거리네 / 부풀어 오를 듯 가벼운 / 툭, 긴장이 끊어진 기압 / 엉금엉금 다니는 모습이 영락없는 거북이네”(‘풀밭을 기는 킹크라비’) 이 시의 서두는 뱃사람들에게 붙잡혀 갑판에서 절름거리는 걸음으로 놀림감이 되고 있는 알바트로스를 시인의 운명에 빗대고 있는 샤를 보들레르의‘알바트로스’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해저에서 짓누르던 생의 무게였다면 / 날렵한 몸놀림으로 어디든 돌아다닐까 / 그가 되돌아 갈 곳은 / 관절에 조여드는 수압이 짓누르는 곳”이라고 대목에 이르러, 킹크랩은 고향을 잃은 채 꿋꿋이 살아가고 있는 재외동포들의 형상이 된다.
장정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