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받지 못한 탄생] ② D-96, ‘강태완’의 길에 선 미등록 이주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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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 2000년전 헤롯왕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이주한 예수는 이주민이었다. 2000년 뒤 한국. 어떤 이들의 탄생은 온전히 축하받지 못한다. 태어나면서 있지도 없지도 않은 존재가 되는 미등록 이주아동. 국가는 이들을 환영하지 않는다. 언제든 강제추방될 수 있는 미등록 이주민의 위태로운 생활이 이주민의 자녀에게도 대물림되기에, 이들의 부모도 이주아동의 탄생을 온전히 축하하지 못한다. 이들은 한국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언젠가는 국적국으로 되돌아가야 할 존재로 여겨진다. 특히 아동이 미등록일 경우, 아동 시기 제공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의료, 복지, 교육 등 각종 서비스 대상에서 배제된다. 그중 한 사람, 미등록 이주아동 강태완은 한국 체류자격을 얻기 위해 분투했고 한국에서 살아갈 자격을 얻기 위해 지역특화형 비자로 취업한 곳에서 일하다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한국사회 구성원으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미등록 이주아동이 겪는 어려움을 짚어본다.

① 아빠는 한국인, 엄마는 미등록 이주여성
②’강태완’의 길에 선 미등록 이주아동···D-96

불안

5세에 몽골에서 한국으로 중도 입국한 미등록 이주아동 강태완. 학업을 마치고도 한국에서 살아기 위해 갖은 방법을 시도하다, 미등록이 되지 않기 위해 외국이나 다름없는 몽골로 자진 출국도 했다. 기억도 나지 않는 몽골에서도, 26년을 지낸 한국에서도 강태완을 지배했던 감정은 ‘불안’이다. 가족이 있고, 친구와 일터가 있는 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불안감과 함께 끊임없이 체류자격을 입증해야 하는 일이다. 강태완은 살아갈 자격을 얻기 위해 일하다 공장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강태완이 숨진 곳은 지역특화형 거주비자1를 얻기 위해 취직한 공장이다.

D-96일

여기 또 불안한 상황에 놓인 가족이 있다.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리엔(가명, 37) 씨 가족이다. 리엔 씨의 첫째 딸(9)은 체류자격이 있고, 둘째인 아들 상우(가명, 3)는 체류자격이 없는 미등록 이주아동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리엔 씨 가족은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딸과 함께 한국에서 체류할 수 있다. 하지만 상우에게는 주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가 한시적으로 미등록 이주아동 교육권 보장을 위해 시행한 ‘한시적 체류허가제도’가 오는 3월 31일로 끝나기 때문이다. 이 제도에 적용되려면, 국내에서 출생한 미등록 이주아동의 경우 구제 신청 시점에서 아동이 6년 이상 국내에서 체류했다는 조건을 갖춰야 한다. 딸은 이 제도를 통해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비자(D-4)를 얻었다. 딸의 비자 취득 후 미등록이던 리엔 씨 부부 또한 자녀 양육을 위해 비자(G-1)를 얻었다. 제도 종료까지 D-96일, 아직 3살인 상우는 제도가 종료되면 미등록 이주아동 신분을 일시적으로나마 벗어날 길이 없어진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아동들과 함께 어린이집을 다녔으나 언제라도 국외로 추방될 수 있는 존재로 남는다.

상우가 성장하는 동안 운 좋게 ‘불법체류’ 단속이나, 미등록 이주노동자 추방을 위한 악의적 시비에 휘말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등록 신분으로 살아가기에 한국은 너무 험난한 곳이다. 국가나 지자체가 마련한 아동 지원을 받지 못하고, 기초교육을 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의료, 교육, 복지 사각지대

상우의 지난달 어린이집 비용은 44만 2,000원. 교육비 38만 원에, 특성화비와 특별활동비가 6만 2,000원이다. 한국 국적 아동 가정에 지원되는 보육료, 가정양육수당, 부모 급여는 받을 수 없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한국 국적이 없는 이주민 부부에서 태어난 아동에 대해서도 보육료 등을 일부 지원하는 경우가 있지만, 부모가 미등록 이주민일 경우 이 지원도 이뤄지지 않는다. 2 상당한 비용을 부담하면서 어린이집을 나와도 문제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초등학교 입학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은 이주아동의 경우 입학이나 전학 신청 시 출입국에 관한 사실 증명이나 외국인등록 사실 증명 내용을 제출하도록 한다.

법무부가 한국행정학회에 의뢰해 2018년 발행한 ‘국내체류 아동에 대한 실태조사’ 보고서에서도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입학 거부 사실이 확인된다. 해당 보고서는 2000년 1월 1일 이후 국내에 자녀가 있는 이주민 643명(등록 478명, 미등록 165명)을 상대로 조사했는데, 이중 미등록 이주민의 13.3%(165명 중 22명)가 자녀의 진학이나 전학 시 학교가 거부한 적 있다고 응답했다.

교육 문제만큼 심각한 문제도 있다. 아플 때 병원에 갈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리엔 씨는 상우가 아프면 순간적으로 빠듯한 집안 살림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다른 가족은 가입할 수 있는 건강보험을 상우 만큼은 가입하지 못한다. 간단한 치료를 받더라도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모든 아동은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라 사회보험을 포함한 사회보장의 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으나, 한국의 미등록 이주아동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체류자격에 따라 병원 이용률 차이도 확인된다. 최근 3개월간 병의원 이용 경험에 대해 응답자 중 체류자격이 있는 이주민은 53.2%(478명 중 254명)가 이용했다고 응답했는데, 미등록 이주민은 48.5%(165명 중 80명)만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진료비나 약값 부담’을 병의원 이용 시 애로사항으로 꼽은 비율은 체류자격이 있는 이주민이 16.7%(478명 중 80명), 미등록 이주민은 52.7%(165명 중 87명)로 나타났다.

강태완의 길

법무부는 2024년 10월 기준 미등록 이주아동이 국내 6,080명인 것으로 집계했다. 확인되지 않는 미등록 이주아동까지 국내에 2만 명이 넘는다는 추정도 있다. 상우도 그들 중 하나다. 수천 명에서 수만 명의 상우가 일시적이나마 체류자격을 얻을 좁은 문이 닫히기까지, 96일 남았다. 그들에게 놓인 길은, 강태완이 걸었던 불안으로 가득한 길과 얼마만큼 다를까.

“첫째와 둘째를 낳았을 때도, 대구 3공단에서 섬유공장을 다녔어요. 남편까지 둘 다 일해야 해서, 저는 아이를 베트남에 보낼까 생각도 해봤어요.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남편이 어떻게든 해보자고 했어요. 아이는 엄마랑 같이 살아야 한다고. 첫째 낳고 임시지만 비자가 나와서 정말 해방된 것처럼 기뻤어요. 그동안은 경찰도 피해 다니고, 모든 일에 숨어있어야 했거든요.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안 되고도 중요해요. 적용되지 않으면 의료비가 너무 비싸요. 우리 같은 이주민들이 일하다가 죽는다는 소식은 저도 듣고 있어요. 우리 동포들도 많이 죽어요. 슬프지만, 어디에나 어려움은 있다는 마음도 있어요. 그래서 이곳에서 사는 것이 쉽지 않음에도 상우가 엄마랑 같이 지낼 수 있도록, 안정적인 비자가 꼭 주어지길 바라요.” (리엔 씨)

▲리엔과 상우

한편 법무부는 한시적 체류허가제를 연장하거나 대안 정책을 고려하는 것이 있느냐는 <뉴스민> 질문에 “현재 시행 중인 제도의 연장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향후 제도 연장 여부 및 대상자 확대 등 운영 계획에 대해서는 관련 통계와 아동 체류 실태, 각계의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신중히 검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

  1. 외국인 유학생 등 일정 자격을 갖춘 지역 우수 외국인에게 인구감소 지역에 거주하거나 취업, 창업하는 조건으로 거주(F-2) 비자를 발급하는 제도
  2. 대구는 달성군을 제외하면 이주민에 대한 보육료 등 지원 제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