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운동 30년 영덕의 ‘소리 없는 반란’, 사드에 성난 성주

[연속기고-사드는 성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2) 박혜령 영덕핵발전소반대범군민연대 사무국장

14:49

[편집자 주=7월 13일 정부는 경북 성주를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지역으로 발표했습니다. 일방적인 결정에 성주군민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정부와 보수언론은 성주만의 문제로 고립시키기 위해 ‘외부세력’을 운운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성주군민들은 사드 배치가 성주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됐고, “한반도 사드 배치 반대”를 요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뉴스민>은 미군기지로 오랫동안 신음한 군산, 신규 핵발전소 반대 싸움을 벌이고 있는 영덕, 송전탑 반대 운동을 벌여온 청도, 일본의 평화운동가의 눈으로 바라본 ‘사드 배치’ 이야기를 1일부터 4일까지 연재합니다.]

[연속기고-사드는 성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1) 사드한국배치반대전북대책위
[연속기고-사드는 성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2) 영덕핵발전소반대범군민연대
[연속기고-사드는 성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3) 청도345kv송전탑반대대책위
[연속기고-사드는 성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4) 일본 평화운동가

국가는 공공의 구조로 작동해야 하며, 공론의 과정으로 작동의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국가권력이 자기정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주인인 국민의 감시와 통제 하에 있어야 하며, 공공성의 목표에 부합한지의 검증을 위해 사회적 논의와 공론화를 수행해야 한다.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은 불의한 국가의 폭력성을 도려내기 위함이며, 우리가 합의하고 있는 국가·사회·공동체의 공공성을 회복하려는 온당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공공성을 상실한 국가에 대한 저항, 영덕·성주

영덕은 1989년 한국 최초의 핵폐기장 반대투쟁을 시작한 반핵운동의 성지이다. 9개 읍면마다 3천 명 이상의 자발적 집회가 있었고, 주민 힘으로 정부의 일방적인 핵정책을 무산시킨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2003년과 2005년 추가로 핵폐기장 후보지로 거듭 거론하면서 30여 년 동안 주민 간 대립과 갈등을 양산했고, 권력에 대한 자기검열로 순종하는 삶을 일상화시켰다. 30여 년 동안 대통령과 지역수장이 수차례 바뀌고 정권이 바뀌었지만, 국가의 속성은 바뀌지 않고 더욱 강화되기만 했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을 지배하고 국가가 시키는 대로 순종할 것을 강요했다. 국가 결정에 반대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집단은 불온세력으로 몰리며 국가의 이름으로 제압하는 폭력이 일상화됐다.

핵은 주민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며, 당대에서 끝나지 않고 후대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다. 영덕주민은 주민 의사를 수렴하지 않은 절차적 부당함과 핵으로 인한 생존권 박탈에 항의해왔다.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인류의 미래를 담보로 하는 정부의 일방적인 강요에 대한 저항은 주민투표를 통해 표출됐다. 효력을 인정받지 못할 것이 너무도 자명한 민간주도 주민투표임에도 많은 주민들이 참여한 이유이다.

▲2015년 11월 11일~12일 영덕 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가 민간주도로 진행됐다. 18,581명이 주민투표가 필요하다고 직접 서명했고, 그중 11,209명(60.3%)이 투표에 참여했다. 10,274명(91.7%)이 반대에 투표했다. [사진=뉴스민 자료사진]
▲2015년 11월 11일~12일 영덕 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가 민간주도로 진행됐다. 18,581명이 주민투표가 필요하다고 직접 서명했고, 그중 11,209명(60.3%)이 투표에 참여했다. 10,274명(91.7%)이 반대에 투표했다. [사진=뉴스민 자료사진]

한국수력원자력과 산업통상자원부의 노골적이고 극악한 주민투표 방해에도 주민 1/3이 투표장을 찾았다. 나는 이것을 ‘소리 없는 반란’이라 부른다. 변변한 집회 한 번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30년의 반핵운동이 남긴 지역의 민주주의는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불가능한 통제 안에 갇혔지만, 주민들은 주민투표를 통해 저항을 표출했다.

영덕이 30년 반핵역사를 ‘소리 없는 반란’으로 표출했다면, 성주는 성난 ‘민중 반란의 시작’이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THAAD)는 미국이 2014년 북핵 위협의 가중으로 한국에 배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이 본격화됐다. 그동안 사드 배치 후보지는 경기 평택, 경북 칠곡, 전북 군산, 강원 원주 등 주한미군 기지를 중심으로 거론되다가 지난 13일 급작스럽게 성주로 발표됐다. 그러면서 성주군은 하루아침에 사형선고를 맞게 되었다.

성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영덕과 공통의 문제를 안고 있다. 성주의 사드 역시 주민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밀실의 독단적 결정이다. 국가안보는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국가안보가 국민의 협력과 동의 없이 가능한 일인가? 지역주민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고, 한 번의 결정으로 성주만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미래까지 담보로 내주어야 하는 문제이다. 사드 배치의 타당성을 비롯해 이것이 가져올 국제관계 등 많은 논란을 두고 서둘러 성주로 결정한 것은 국가안보를 빙자한 일방적인 국가폭력이다.

정부는 사드 배치 결정을 서두를 일이 아니었다. 사드 배치가 한반도 긴장완화와 동북아를 넘어선 국제사회의 평화적 관계 설정에 필요한지 국민적 공론을 모아야 했다. 북핵에 대한 무력대응 방안보다 평화적 남북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미래의 비전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전쟁’ 위협을 낮추고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먼저 고민하는 국가적 신뢰를 보여주어야 했다.

핵이 아닌 평화를 원한다

핵발전의 본질은 전쟁 도구인 핵무기의 폭력성과 동일하다. 핵발전소는 발전(發電)이라는 평화적 이용의 명목으로 포장되어 있을 뿐이다. 십만 년 이상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는 핵폐기물의 양산뿐 아니라 사고 시 광범위한 지역을 방사능에 오염시키는 전쟁을 능가하는 파괴력을 가졌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너무도 분명하다. 국제사회가 가고 있는 탈핵을 정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미래사회를 위해 탈핵의 전환사회를 준비해야 한다. 핵증설을 위한 신규부지 지정을 백지화하고 핵발전소 조기폐쇄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이것은 더 이상 꿈같은 상상이 아니다. 전 세계가 에너지전환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실현해가고 있다. 이것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미래사회의 비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북이 모두 핵무장을 해제하고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실질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국민들은 북핵에 대한 무력 대응으로 전쟁 가능성과 긴장 고조를 원하지 않는다. 한반도가 정전상태에서 평화적 공존을 이룰 수 있기를 바라며, 국가가 이러한 비전을 제시하고 현실화하기를 바란다. 성주 사드 결정을 백지화하고 동북아 긴장 완화를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국민적 바람이며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평화’는 전쟁의 부재를 의미하고 나아가 정의가 구현되는 일체의 지향을 의미한다. 부조리를 거부하는 역동적인 활동이며, 힘의 논리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희생이 없도록 권력을 견제하는 일이다. 국가주의, 전체주의가 내면화된 다양한 폭력성에 저항하는 것이다. 핵과 인류가 공존할 수 없다는 역사의 교훈을 우리 삶에 녹이고 사회에 반영하는 것이다. 평화를 위협하고 부정하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해서는 안 될 일이다. 탈핵, 비핵화를 통해 영덕과 성주 그리고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 평화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국가의 의미이고 역할이며, 국가가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