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받지 못한 탄생] ① 아빠는 한국인, 엄마는 미등록 이주여성

미등록 이주여성 체류자격 획득 '좁은 길'
배우자 협조 없인 어려워
이주아동 인권 위해 제도 개선 필요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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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 2000년전 헤롯왕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이주한 예수는 이주민이었다. 2000년 뒤 한국. 어떤 이들의 탄생은 온전히 축하받지 못한다. 태어나면서 있지도 없지도 않은 존재가 되는 미등록 이주아동. 국가는 이들을 환영하지 않는다. 언제든 강제추방될 수 있는 미등록 이주민의 위태로운 생활이 이주민의 자녀에게도 대물림되기에, 이들의 부모도 이주아동의 탄생을 온전히 축하하지 못한다. 이들은 한국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언젠가는 국적국으로 되돌아가야 할 존재로 여겨진다. 특히 아동이 미등록일 경우, 아동 시기 제공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의료, 복지, 교육 등 각종 서비스 대상에서 배제된다. 그중 한 사람, 미등록 이주아동 강태완은 한국 체류자격을 얻기 위해 분투했고 한국에서 살아갈 자격을 얻기 위해 지역특화형 비자로 취업한 곳에서 일하다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한국사회 구성원으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미등록 이주아동이 겪는 어려움을 짚어본다.

① 아빠는 한국인, 엄마는 미등록 이주여성

‘현실판 우영우 아빠’, ‘미혼부는 안 돼요’, ‘사실혼 베트남女의 가출’···

23년 7월. 한 베트남 여성에 대한 기사가 쏟아졌다. 사실혼 관계에 있는 베트남 이주여성이 아이를 낳고 갑자기 사라졌고, 이에 한국인 아버지가 미혼부라는 이유로 아이의 출생등록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상 혼인 관계가 없는 남녀 사이에 태어난 자녀는 출생등록 시 여성만 할 수 있다. 그래서 아버지가 소송을 통해서야 아이의 출생등록을 했다는 내용이다.

1살도 되지 않은 딸을 두고 사라졌다는 비정한 엄마. 그 엄마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엄마 응옥(가명, 28) 씨는 지금, 가정폭력 피해 이주여성 지원 단체의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다. 딸도 함께다. 본인에 관한 기사가 쏟아졌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비정한 여자?

응옥 씨는 2022년 딸을 낳았고, 한동안 남편과 같이 살았다. 응옥 씨에 따르면 같이 사는 동안에도 남편은 가사노동이나 육아를 분담하지 않았고, 생활비도 주지 않았다. 응옥 씨는 육아를 하면서 공장이나 딸기하우스 아르바이트를 하며 필요한 생활비를 마련했다.

집을 나오게 된 결정적 이유는 남편의 폭행이다. 대구지법 서부지원 약식명령에 따르면 응옥 씨는 2024년 6월 남편과 옥상에서 다툰 뒤 딸을 두고 집에서 나가라는 남편의 말을 거부하며 딸과 함께 옥상을 벗어나던 중 남편으로부터 머리채를 잡아당겨지는 폭행을 당했다. 응옥 씨는 남편이 화장실에 간 사이 딸과 함께 도망 나오며 경찰에 신고했고, 그 후 지금까지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다.

행방불명됐다던 ‘베트남女’가 사실은 가정폭력 피해자였던 셈이다. 심지어 행방불명도 된 적이 없다. 응옥 씨가 집을 나온 건 ‘행방불명’ 보도 이후 약 1년 뒤인 2024년 6월이다. 남편이 행방불명을 이유로 인지소송을 제기해 딸의 출생신고를 한 시점은 2023년 5월이다. 두 사람이 사실혼 관계에서 생활하고 있던 시점이다.

사실혼 상태일 때 출생신고는 법률상 어머니만 할 수 있다. 하지만 응옥 씨는 남편과 법률적인 혼인관계 상태에 있지 못해서 미등록 신분이었고,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다. 정상적으로 남편이 혼인 신고를 한다면, 남편도 출생 신고를 할 수 있고, 응옥 씨의 체류자격도 생기지만 남편은 끝끝내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았다. 대신 멀쩡히 있는 응옥 씨도 모르게 행방불명이라며 인지소송을 제기했다. 응옥 씨는 남편이 인지소송까지 해서 딸의 출생신고를 했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동안 애꿎은 딸은 한국 국적의 아버지가 있음에도 미등록 상태를 겪어야 했다. 응옥 씨가 2022년 6월 미등록이 됐고, 3개월 뒤인 9월 딸을 출산하면서 딸 또한 미등록 이주아동 신세가 됐다. 딸은 남편이 인지소송이 인용된 2023년 5월까지 8개월을 미등록 상태로 살았다.

딸과 함께 집을 뛰쳐나온 뒤에도 어려움은 이어졌다. 쉼터에 입소해 주거 문제는 해결했지만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인지소송으로 딸은 출생신고가 마무리돼 한국 국적까지 주어졌지만, 응옥 씨는 여전히 미등록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쉼터의 도움으로 한부모 수당이라도 지원 받아보려 했지만, 미등록 신분인데다 행정적으론 딸과 아무런 관계도 없어서 여의치 않았다. 행정기관을 찾아가봐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딸과 모녀관계라는 거라도 증명하려 출산한 병원을 찾았을 땐 미납된 병원비 400만 원부터 먼저 해결해야 했다. 돈을 빌렸고, 출생증명서를 받았다. 하지만 다시 또 큰 비용이 요구됐다. 딸의 양육을 위해 체류자격이 필요했는데, 출입국사무소에선 비자 발급을 위해선 범칙금부터 납부해야 한다고 했다. 미등록 기간이 길어지면서 쌓인 범칙금은 1,500만 원이다. 범칙금을 납부할 방법이 없어, 응옥 씨는 여전히 미등록 상태다.

응옥 씨는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딸과 단둘이 있을 때도 한국말만 쓴다. 딸이 한국에서 적응해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앞으로 소송을 통해 친권 변경도 하고, 딸이 성장할 때까지만이라도 한국에서 함께 살고 싶다. 언젠가 베트남으로 돌아가야 하더라도, 한국에서 좀 더 생활비를 마련해 딸과 함께 돌어가고 싶다.

▲응옥 씨와 딸

미등록 이주아동 보살피며 일도 병행해야
복지·의료 제도 사각지대

응옥 씨 딸은 결과적으로 미등록 상태는 벗어났다. 엄마가 미등록 신분이더라도 한국 국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병원비나 교육비에서 다소나마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부모와 마찬가지로 아이도 미등록인 상태가 길어지면 보육부터 생활까지 어려움도 배가가 된다.

필리핀에서 와 한국에서 일하던 이주여성 마리아(32, 가명)는 한국 남성과 동거를 하던 중 2018년 아이를 가졌다. 남성은 임신을 알고도 마리아 씨에게 폭언을 했고, 폭행도 휘둘렀다. 마리아 씨는 임신 상태에서 폭력 피해 이주 여성을 돕는 이주와가치의 도움을 받아 대구에 와 정착했다.

남성의 폭력으로부턴 벗어났지만 생활비 마련이 문제였다. 임신 상태에서 냄새나는 성서공단의 플라스틱 공장에서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일했다. 하루 일당 12만 원을 받았다. 2019년 5월 아들을 출산한 뒤에는 정기적인 일을 하지 못해 지금까지 하루 9만 원 받는 의류 판매점에서 일한다.

아들 이름은 한국어로 바다(5, 가명)라고 지었다. 바다의 병원비 내는 게 그토록 힘들었다. 한 달 약 180만 원을 버는 마리아 씨는 그저 먹고사는 것조차 버겁다. 월세 41만 원, 식비 30만 원. 바다가 자라며 어린이집에 보낼 나이가 되면서는 보육료도 월 33만 원 지출됐다. 바다에게 방문 학습지 수업이라도 받아보게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비용을 부담할 수 없었다. 마리아 씨가 일을 계속해야 해서 어린이집이 끝난 바다는 마리아 씨를 도와주는 필리핀 언니 집으로 간다.

마리아 씨와 바다 모두 가벼운 감기만 걸려도 기본 3~5만 원이 지출된다.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서다. 병원에 따라 국제 수가를 적용하는 경우 10만 원을 넘기기도 한다. 출산 병원비만 200만 원을 넘게 썼다. 응급실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웬만큼 아파도 병원은 가지 않는다.

“바다는 한국에 계속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걱정은 많아요. 앞으로 학교에 갈 건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요. 학교에 가끔 가서 챙겨줄 수도 없고, 공부를 가르쳐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필리핀에 갈 수도 없어요. 바다는 필리핀 말을 몰라요. 필리핀 월급도 적어서 거기서는 기를 수가 없어요.” (마리아 씨)

마리아 씨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바다도 말했다. “집에 있는 게 제일 좋아요. 엄마랑 있는 게 제일 좋아요. 엄마랑 같이 사는 게 제일 좋아요.”

▲마리아 씨와 바다

미등록 이주여성 체류자격 획득 ‘좁은 길’
배우자 협조 없인 어려워
이주아동 인권 위해 제도 개선 필요

법무부에 따르면, 만 19세 이하 미등록 이주아동은 2024년 10월 기준 6,080명이다. 21년 기준 3,704명에서 2배가까이 늘었다. 파악되지 않는 미등록 이주아동을 합하면 2만 명에 달한다는 추정도 있다.

이주아동의 체류자격은 부모의 체류자격에 달려 있다. 아버지가 한국인인 경우, 아동은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협조하지 않으면 아동의 국적 취득이나 이주여성의 체류 자격 유지는 어렵다. 아버지가 협조하지 않는 경우, 아버지를 상대로 인지소송을 제기해 유전자 검사 등을 거쳐야 한다. 이주여성이 미등록 상태라면 이 과정도 수행하기는 쉽지 않다.

부모가 모두 외국인일 경우, 부모가 체류자격이 있다면 아동도 비자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부모가 미등록일 경우, 자녀에게도 미등록 신분은 대물림된다. 이주아동도 미등록으로 체류자격이 없으면, 우선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기 어려워진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건강보험이 없고, 그래서 진료 시 보험수가가 아닌 일반수가, 국제수가가 적용되곤 한다. 국제수가는 병원이 주로 외국인 의료 관광객에게 적용하는 수가로, 보험수가 대비 1.5배~2배가량 비싸다.

그탓에 이주아동의 병원 이용 실태는 한국 아동에 비해 외래 이용률은 낮은데, 입원율이나 응급실 이용률은 높게 나온다. 아름다운재단이 이주와인권연구소, 사단법인 이주민과함께와 함께 발간한 ‘2024이주민 영유아 건강권 실태조사 보고서’는 이주아동이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지 못하다가 상태가 악화되어서야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한다.

이주아동 보호에는 이주여성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주아동이 방치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주여성이 안정적 체류 자격1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도 있다. 국적을 구분하지 않는 아동의 출생등록제 시행 등 제도개선과 함께, 응옥 씨, 마리아 씨가 미등록 상태에서 각종 증빙이 어려운 문제를 겪었듯 현장에서는 미등록 이주여성의 경우에도 필요한 서류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대한 요청도 나온다.

고명숙 이주와가치 대표는 “부모의 불안정한 체류자격이 아동 또한 불안정한 상태로 만든다. 유아기에 필요한 각종 돌봄, 의료, 교육 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렵고 이는 장기적으로 아동의 발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결혼이주 가정의 경우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가 육아와 돌봄의 의무를 전담하다시피 한다. 가정폭력 문제를 포함해, 결혼이주여성이 배우자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태가 돼도 사회안전망은 이들이 미등록이기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고 대표는 미등록 상태에서도 행정기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적어도 이주아동 육아, 보호를 위한 범위내에서는 미등록 체류에 따른 범칙금 유예, 안정적 체류 자격 부여, 체류 시 경제활동 자격 부여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외국인아동출생등록법안’의 통과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당 법안은 국내에서 태어난 외국인 아동도 부모의 법적 신분과 관계없이 출생등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고 대표는 “실제로 이주여성을 지원하면 출생등록부터 각종 서류발급 문제에 있어 일선 공무원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려고 해도 제도가 없어 절차를 수행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또는 담당자나 관할청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며 “이주여성과 이주아동의 인권을 우선순위에 둔 행정이 될 수 있도록 방침 마련이 필요하고, 장기적으로는 외국인 아동도 법적 신분과 관계없이 출생등록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법무부는 미등록 이주아동 구제 정책과 관련해 ‘국내 장기체류 아동 교육권 보장을 위한 체류자격 부여방안’ 제도(한시적 체류 허가제도)를 시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아동출생등록법안과 관련해 법무부는 “김남희 의원 대표발의안에 대해 검토 중이며, 향후 국회 논의에 충실히 대응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

  1. 아동이 한국 국적을 취득한 경우 미등록 이주민 배우자도 결혼이민(F-6) 비자로 자격을 변경할 수 있는데 이 절차가 매우 복잡하다. 체류자격 변경의 경우 필요한 서류 종류가 19가지다. 여권 사본 같은 간단한 서류도 있지만, 한국인 배우자가 제출해야 하는 신원보증서, 기본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등본, 건강진단서 등 서류도 있다. 이주여성이 미등록 상태인 경우 기본적 서류조차 발급하기 어려워 이주민 단체의 도움을 받거나 행정사를 고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