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같은 역사] 왕의 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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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들을 감찰하고 옳지 않은 일에 대한 비판을 담당했던 사헌부 지평 권두기權斗紀가 상소를 올렸다. 그는 영남 출신의 인재로, 전 홍문관 수찬 김세흠金世欽이 올린 상소에 대한 숙종의 처사를 비판했다. 홍문관 수찬의 직임이 잘못된 정사를 비판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청직淸職인데, 그가 상소를 올려 왕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관직을 박탈하고 한양 밖으로 추방한 것을 잘못되었다는 비판이다. 1707년 음력 10월 22일의 일이다.

그런데 이 상소가 또다시 숙종의 심기를 건드렸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며칠 전 홍문관 수찬 김세흠의 상소 내용은 이잠李潛의 원통한 죽음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잠은 우리에게 <성호사설>로 잘 알려진 이익李瀷의 형으로, 그 전해인 1706년 향년 47세 나이에 곤장을 맞고 사망했다. 그는 진사 신분으로 당시 권력을 잡고 있었던 서인의 핵심 인물들을 비판하고, 세자의 어머니 희빈 장씨의 복권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역적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조선 역사에서 희빈 장씨, 흔히 장희빈으로 불렸던 인물은 미모로 나라를 흔들었던 요부의 대명사다. 궁중 암투 과정에서 사약을 받고 죽음에 이른 그녀의 일생은 현대에도 드라마 소재가 될 만큼 파란만장했다. 그러나 당시 희빈 장씨는 이후 경종으로 즉위하는 세자의 어머니였고, 영남 남인들의 정치적 후원자이기도 했다. 당연히 희빈 장씨의 죽음은 영남 남인들의 몰락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고, 실제 이후 영남남인은 당파의 이름으로 조정에 존재할 수 없었다. 그리고 경종에게 숙종은 개인적으로 어머니에게 사약을 내린 비정한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사약을 명했던 숙종의 행동은 희빈 장씨가 악하게 받아들여지는 만큼 정당성을 얻을 수 있었다. 아무리 세자의 어머니라 해도 신원을 입에 올리기 힘든 이유였다. 게다가 숙종은 행여라도 희빈 장씨에 대한 신원 청원이 있으면, 이를 정치적 재기를 꿈꾸는 영남 남인의 불순한 의도로 취급했다. 희빈 장씨에 대한 자신의 처결 당위를 공고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당연히 조정의 눈치 있는 신하라면, 희빈 장씨에 대한 언급은 금해야 했다. 이잠의 상소가 결국 자신의 죽음으로 돌아온 이유였다.

그런데 이러한 이잠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숙종의 처사를 비판하고 나섰으니, 아무리 홍문관 수찬이라 도 김세흠이 관직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이러한 김세흠을 삭탈관직하고 한양에서 추방한 일에 대해 권두기가 다시 비판하고 나섰으니, 숙종의 진노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김세흠을 삭탈관직할 때 승정원에서도 거듭 재고를 요청했지만, 이를 물리치고 강하게 자신의 의지를 표출했던 숙종 입장에서는 한 번 더 단호한 처사가 필요했다.

삭탈관직과 한양에서의 추방 정도로 끝낼 일이 아니라는 판단이 있었던 듯했다. 게다가 권두기가 김세흠을 두둔하는 과정에서, 역모로 장살당한 이잠까지 충성스러운 사람이었다고 언급함으로써 숙종의 진노를 키우기까지 했다. 한양에서 가장 먼 곳 가운데 하나인 해남으로 유배형이 내려진 이유다. 당연히 승정원에서는 과한 형벌이라며 재고를 요청했지만, 이번에는 재고를 요청하는 승지까지 파직했다. 심지어 당일 승정원에 입직하고 있었던 승지들까지 다른 부서로 보내 버렸다. 모든 비판을 거부할 터이니, 할테면 해보라는 심사였다.

당시 김세흠이나 권두기인들 조정에서 금해야 할 말을 모를 정도로 최소한의 눈치조차 없는 인사는 아니었을 터였다. 그러나 그들의 자리가 홍문관 수찬이고, 사헌부 지평이었다. 왕에게 바른말 하는 게 직임이고, 왕의 옳지 못한 진노로 바른말 하는 인재를 잃는 상황은 바로 잡아야 했다. 물론 그 진노의 근원은 자신들이 감당할 일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지만, 눈앞에서 행해진 진노로 인한 잘못된 인사만큼은 막아야 했을 터였다. 왕이 진노한다고 해도 조정에서 최소한의 바른말은 필요한 법이고, 바른말 했다고 그 말을 해야 하는 관원을 처벌해서는 그 같은 바른말이 살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고 권력자의 진노는 최소한의 이성적 판단마저 망각하게 만들곤 한다. 자신의 진노가 바른 말하는 사람들을 조정에서 쫓아내고,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들만 남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마저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왕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왕의 귀에만 충성하는 간신이 조정에 넘치게 되는 이유이다. 비록 처음에는 옳은 일로 진노했다 해도, 진노에서 진노로 이어지는 진노의 정치는 그래서 위험할 수밖에 없다.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