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플라톤 추방] 섬세한 파동의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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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렬의 시에는 ‘시적인 번득임’이 있다. 소금이 짜고 설탕이 단 것처럼 시가 시적인 번득임을 뿜어내는 일도 당연하다. 하지만 모든 시가 시적인 번득임을 간직하고 있지도 않은 데다가 모든 시인이 시적인 번득임의 획득을 시작의 목표로 삼고 있지도 않다. 시는 별의 숫자와도 같은 개성을 가졌다. 그런 뜻에서 구광렬은 몇몇 시는 ‘시적인 번득임’을 발견하고 추구하는 일에 의식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네 번째 시집 <불맛>(실천문학사, 2009)에 나오는 ‘부의(賻儀)’를 전문 감상해보자.

“편지 봉투와 돈 봉투 크기 같음을 친구 놈 죽고서 안다 그 시절 우리 대신 눅눅한 지폐 밀어 넣는 내 손바닥이 그 크기 같음에 소스라친 것이다 // 마술 같은 인생이다 봉투를 여는 내 입김 여전히 뜨거운데 나 몰래 깊이 파인 손금의 손바닥은 싸늘한 네 입술 같은 지폐 몇 장을 애간장 태우던 지난 편지 대신 집어넣고 있다 // 무작정 마시고 돈 없어 시계 잡히던 그 옛날 막걸리 됫박값 종이돈이 답장도 못 받아볼 글 없고 끝없는 편지가 된다”

시인은 죽은 친구의 초상집에 낼 부의 봉투에 돈을 넣다가, 젊었던 시절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던 추억을 떠올린다. 편지와 부의는 모두 봉투를 사용한다는 점, 무엇인가를 넣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편지는 답신을 고대할 수도 있고 실제로 답신을 받을 수도 있는 반면, 부의는 친구의 반응을 기대할 수 없다. 같지만 똑같지는 않고, 다르지만 공유하는 속성을 가진 이종(異種)끼리의 접합과 충돌은 그가 자주 활용하는 기법이다. 이를테면 “지난밤 술이 과했다”라는 1행 1연으로 시작하는 ‘간(間) 5’에서 시인은 인간과 원숭이의 결합을 시도한다. 이어지는 두 번째 연을 보자, “옆에서 쿨쿨 자고 있는 원숭이를 깨워 몇몇 주의사항을 알려준 뒤 대리 출근시킨다 / 도심의 빌딩숲을 정글처럼 헤쳐나가는 그는 상상 외로 빠른 출근을 한다 게다가 평소 냉담한 직장 상사들까지 그의 곡예에 탄복한 나머지 바나나를 자루째 던져주기도 한다 /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후식으로 뒷산에서 산딸기를 따 먹었으며 저녁엔 보신탕을 안주로 폭탄주, 거기에 나도 못해본 연애까지 하는 등, 대리 출근은 성공적이다”

이종끼리의 접합과 충돌은 삶이라는 “조각조각 퍼즐”(‘메르세데스 소사’)을 맞추기 위해 시인이 선택한 기법이면서, 그의 세계관으로까지 이어져 있다. 다섯 번째 시집 <슬프다 할 뻔했다>(문학과지성사, 2013)에 실려 있는 ‘슬쁨’은 슬픔과 기쁨을 조합한 합성어로, 분별하고 세분(細分)하는 것이 기본인 근대적 이성으로는 삶도 세계도 해석할 수 없다는 시인의 세계관이 만들어낸 조어다. 이 시는 새와 나무와 산의 반쪽은 그림 속에 들어 있고 반쪽은 그림 밖으로 나가 있는 현실과 몽환의 접합을 묘사한다. 같은 시의 화자 역시 몸은 그림 속에 붙들려 있고, 그의 그림자는 그림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인간은 완전한 현실의 존재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절대적인 초월의 존재도 아니다.

오늘의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약 15만~25만 년 전에 처음 나타나 4만~5만 년 전부터 지구상에 널리 분포되었다고 한다. 지구를 정복한 호모 사피엔스는 자신의 생존과 안락을 위해 지구상의 어떤 생물체도 마음대로 죽일 수 있다. 시인은 첫 시집인 <자해하는 원숭이>(미래문화사, 1997)에서부터 인간중심주의와 인간의 자연 침탈을 강하게 비판해 왔다. 그런데 네 번째 시집에 실려 있는‘오, 아프리카’·‘뉴욕 브롱크스 동물원–오다 벵가를 기리며’·‘마다카스카르’·‘까만 오닉스’가 잘 보여주듯, 인간의 자연 침탈은 항상 인간이 인간을 침탈하는 제국주의를 동반한다.

베르너 슈피스는 막스 에른스트에 관한 길지 않은 평론에서 의외성과 이질적 요소로 가득한 에른스트의 콜라주 작업에 ‘시적인 번득임’이라는 결정적인 찬사를 바쳤다. 이종의 접합과 충돌은 역사·문화·사회적 결정론으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해주는 동시에 지배적 현실에 대한 이의와 저항을 표시한다. 현실과 몽환 또는 이질적인 두 세계 사이에 퍼즐 맞추기를 하는 ‘간(間)’ 연작은 44번까지 나왔다.

장정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