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 작가 지우기 나선 대구문화예술회관···예술가들 규탄 나서

예술가 및 시민 등 300여 명 규탄 입장문 서명
김미련, 정종구, 이소진, 이승희 등 올해의 청년작가도 동참 대구문예관, 올해의청년작가전 홍보물에서 안윤기 지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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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논란을 일으키고 담론을 생성하고 질문을 던져야 하고, 원래 청년작가 전시 공간은 그것을 독려하고 후원해야 하는 장소로 알고 있습니다. 공공성이라는 명목으로 공공성이 훼손되는 이 상황은 해석의 여지가 없이, 해석의 여지가 남겨진 작품을 미리 예단해서 작가의 목소리를 배제하고 탈락시키는 엄연한 검열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문화는 정치와 다르게 어느 쪽도 배제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술의 공공성과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 이번 사안을 두고 같은 공간에서 15년 전 전시를 한 동료작가로서 참담한 심정을 말할 길이 없습니다.”

15년 전, 대구문화예술회관(대구문예관)의 2009 올해의 청년작가로 선정돼 대구문예관에서 올해의 청년작가 초대전을 가졌던 김미련 로컬포스트 대표는 참담함을 표현했다.

홍준표 시장 초상화를 재해석하는 작품을 내놨다가 전시실을 폐쇄 당한 안윤기 작가와 연대하기 위한 예술가들의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대구문화예술회관 측은 올해의 청년작가전 홍보물에서도 안 작가 이름을 지우며 검열 사태를 이어가고 있고, 12일 김미련 대표를 포함한 예술가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규탄에 나섰다.

▲12일 대구문화예술회관의 2024 올해의 청년작가전에서 불거진 검열 사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에 앞서 온라인을 통해 진행된 검열 규탄 입장문 발표에는 12일 기준으로 예술인 및 시민, 단체 등 300여 명이 참여했고, 김 대표를 포함해 올해의 청년작가에 선정된 작가 중에서도 정종구(2005년), 이소진(2019년), 이승희(2020년) 등이 동참했다.

김 대표는 기자회견 연대발언에 나서서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예술 행정가 그리고 예술가가 지레 자기 검열을 하고 지역의 극심한 내부 분열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지 않을 수 없고, 실제로 지금 일어나고 있다”며 “대구문화예술회관과 대구시는 예술의 공공성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안윤기 작가의 전시실 문을 조속히 개방하여 주시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최수환 대구민예총 고문(조형예술가)도 연대 발언에 나서서 “이런 일을 겪게 돼서 선배로서 대단히 미안하다. 우리 대구가 이렇게까지 될 수밖에 없는가라는 참담한 심정”이라며 “예술가의 행위가 전시장이나 공연장에서 그대로 보여지고 갈등의 여지가 있거나 문제의 여지가 있다면 관객들에 의해서 판단되어지고 토론되어지고 결과되어져야 된다. 행정의 판단에 의해 전시장에 걸리지 못하는 이런 일은 일어나선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정윤희 블랙리스트 이후 디렉터는 “2017년 대구발 블랙리스트가 있었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가 대구청년아티스트페스티벌 전시회에서 대구시 공무원 개입이 있었음을 밝힌 바 있다”며 “그로부터 7년이 지났다. 블랙리스트 판명이 된 후 대구시 문체국장은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를 위한 가이드를 만들겠다고 언론에 밝혔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다”고 비판했다. [관련기사=블랙리스트 조사위, 예술가 검열 대구시 공무원 3명 징계 권고(‘18.6.28)]

검열 피해 당사자인 안윤기 작가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은 저에게 상당히 비참하다”며 “소통 과정에서 드러난 압박적 형태, 손해배상 언급 이후 공식적인 연락 없이 언론보도와 입장문을 통한 압박은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 침해, 생존권뿐 아니라 나아가 작가로서 본질적 삶에 대한 위협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안 작가는 “문예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청년작가들의 작업은 일종의 실험실과 같으며 청년 세대가 직면한 고민과 감정, 그리고 그들의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을 엿보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며 “하지만 저의 실험실은 폐쇄됐고, 법리를 논하는 장으로 얼룩졌다”고 지적했다.

함께 작업한 연혜원 문화예술기획자도 “전시에 참여한 저의 글은 노중기 관장과 홍준표 시장, 대구미술관 등의 해명하지 않은 낙하산 인사의 배경을 추측해 쓴 글”이라며 “대구문예관은 글에 ‘동성애’가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인격과 성적 정체성 등 개인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성소수자로 추측되기만 해도 개인 명예가 훼손된다는 주장은 대구문예관의 편협한 성평등 인식을 보여주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문예관이 작품 검열을 철회하고 전시실을 개방하도록 하는 활동에 나설 예정이다. 우선 대구문예관의 전시실 폐쇄 처분을 법정에서 다투기 위해 가처분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고, 1인 시위 등을 진행하는 방안도 계획 중이다.

▲지난달 31일 전시실 앞 홍보 조형물에는 안윤기 작가의 이름과 소개글이 포함되어 있지만(위 사진 붉은 박스), 12일 찾은 전시실에선 모두 빠져있다(아래 사진 화살표).

한편, 대구문예관 측은 2024 올해의 청년작가전 관련 홍보물에서 안 작가의 이름을 들어내는 등 ‘안윤기 지우기’를 진행 중이다. 전시가 시작된 지난달 31일까지는 문예관 곳곳에 걸린 전시 홍보물에 안 작가의 이름이 함께 게재됐지만, 12일 다시 찾은 문예관에선 안 작가의 이름이 사라진 홍보물이 관객들을 맞았다.

김희철 대구문예관장은 안 작가에 대한 올해의 청년작가 선정도 취소된 것이냐는 <뉴스민> 물음에 “그건 아니”라면서도 “전시실은 폐쇄가 됐고, 폐쇄에 따라 내부적인 절차는 지금 진행 중이다. 향후 어떻게 할지는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관장은 법률 대응도 검토하는 것이냐는 물음에는 “작가와 관계를 생각을 해서 서로가 불편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답했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