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플라톤 추방] 진창에 뒹구는 알바트로스와 시적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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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철의 첫 시집 <지상의 인간>(문학과지성사, 1983)에는 욕이 많다. “이 좃만한 놈들이”(‘독자놈들 길들이기’), “아부지, 좆나게 밟아! 좆나게! 더!”(‘자유……로운 잡념’), “야 이 새끼야 여길 봐 이 칠판을”, “개애새끼, 죽여버려, 이 주먹으로 ×새끼이···”(‘언젠가 태양의 바다’), “뭐요 니기미이 머 어째 애비 보고 / 니기미라꼬 니기미이 말이 / 그렇다는 거지요”(‘아버지’), “나는 이따금 / 부릅뜬 눈을 들어, 핥 / 야 이 개애새끼들아아”(‘사자 – 모교의 교정에서’), “야 이 개새끼야아 나는 내가 아니라 바로 너이고”(‘이 죽고 싶은 지상에서’)

1980년대에 욕 잘한 시인은 박남철 뿐이 아니었다. 그때 시인들은 누가 얼마나 찰지게 욕을 잘하나 시합하듯이 욕을 했다. 여기엔 성별이 따로 있지 않았다. 박남철보다 두 해 앞서 첫 시집을 낸 최승자는<이 시대의 사랑>(문학과지성사, 1981)에서 낯을 가리듯이 “아 썅!”(‘꿈꿀 수 없는 날이 답답함’)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내뱉었다. 믿거나 말거나한 일설에 따르면, 불쾌함이나 분노를 나타내는 감탄사로도 사용되는 ‘썅’은 욕이 아니라는 항변도 있다. 그러나 두 번째 시집인 <즐거운 일기>(문학과지성사,1984)에서 최승자는 진짜 욕을 구사한다. “개새끼 잘 죽었다, 너 죽을 줄 내 알았다.”(‘고요한 사막의 나라’), “오 개새끼 / 못 잊어!”(‘Y를 의하여’), “도라간다도라간다도라간다 / 에잇, / 돌아와라 이년!”(K를 위하여’)

욕설만큼 <지상의 인간>에 흔한 것은 돈 이야기다. “인생은 어쩌면 슬픈 것 / 평화도 없고 사랑도 없는 이 몸이 / 빚더미 위에 올라앉아 아버님 걱정 마세요 제가 / 이제 곧 대학원만 졸업하게 되면 불티나게 잘 팔리는 / 엽기 소설을 쓰게 되어 아버님 제가 이제 곧 / 기가 막힌 여자도 얻게 되고요 // 아버님 화전놀이 가실 때 / 아버님 이 박카스 잡수세요 / 아버님 이 박카스 잡수세요 아버님 // 걱정 마세요 제가 이제 곧 대학원만 졸업하게 되면”(‘백의환향’), “좌우지간 어쨌든, 6백만원은 있어얄 텐데··· / 6백만원! 6백만원! 6백만원의 사··· / 랑, 내일이면 서른이 되는, 아뿔싸, 내 나이여!”(‘자유……로운 잡념’)

시인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어찌어찌 결혼은 했나본데, “어떤 때 문제는 너무나도 단순하다 / 내가 ‘30만원짜리’라는 것”이라 말하는 걸 보면 대학교 강사로 겨우 풀칠을 하고 있나보다. 또 “그리고 내 아내가 / 아무런 직장도 안 가지고 있다는 것(못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이는 걸 보면, 언젠가 돈을 구하고자 고향에 내려가 박카스 한 병으로 아버지를 구슬리며 “기가 막힌 여자”를 얻어 오겠다던 약속도 공염불이 됐나보다. 이런 비루한 현실이 ‘잠실통신’을 낳았다.

‘잠실통신’은 1980년대 당시 한국인들에게 가장 선망의 대상이었을 서울의 잠실(蠶室) 아파트 단지를 누에가 뽕잎을 갉아 막고 잠을 자는 잠사(蠶舍)에 빗대고, 시인을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갑충으로 변신하는 그레고리 잠자와 같은 운명이 되고 말 ‘그레고리 잠사 누에’로 부른다.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입도 없다 / 그저 몸뚱아리만 있어 다만 꿈틀거릴 뿐이다 / 그래 서로가 사로에 대하여 징그러울 뿐이다”라는 첫 연으로 시작한 이 시에서 시인은 다음과 같은 뼈아픈 각성을 한다. “우리들은 절대로 나방이 되지는 못한다”, “나 같은 누에들은 정말 언제나 용이 될까”, “꿈꾸지 마라 너희들은 절대로 용이 될 수 없다.”

어울리지 않게도 욕과 돈으로 도배된 이 시집에는 “수고하고 짐 진 자들아 다 이젠 내게로 오라”(‘제1성’), “이 밤, 십자가를 등진 나의 산책길”, “주여 기다리소서 제가 가고 있나이다”(‘무서운 계시’)와 같은 기독교적인 이미지가 넘친다. 뿐 아니라‘주기도문’·‘주기도문, 빌어먹을’같은 시가 있는 데다가, 시집을 닫는 마지막 시는 무려‘감사기도’다. 이 시집에 묘사된 빈궁은 “나는 시라는 이름의 병을 앓는 사람”(‘시인의 집·뒤’)이 시를 쓰기 위해 과장한 병일 수 있다. 시인은 기독교 신자가 아니지만, 예수의 순교는 현실에 파산하고 마는 시인과 유비를 이룬다.

장정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