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053] 상상 속의 ‘용’이 아닌, 우리 곁의 ‘악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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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잃은 세대’라는 표현은 요즘 젊은 세대를 수식할 때 따라붙는 흔한 언급이다.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라는 굵직한 상징을 획득한 위 세대와 비교하면 그저 무색무취한 집단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이 세대는 도전정신도 없고 참여의식도 약하며 사회 구성원으로 의무 수행보다는 앞 세대가 분투해 성취한 과실에 그저 안주하며 향유만 할 뿐이라는 비판이 자주 붙곤 한다. 미디어는 이 후속 세대에 대해 ‘MZ세대’란 근거 박약한 개념을 붙이며 서로 다른 두 세대를 도매금으로 강제 통합시킨다. 지독히 편의적이자 의도성 다분한 발상이다.

소모적으로 ‘구별 짓기’에만 치중된 세대론의 명암

반면에 그 세대와 동기화되는 독립영화 주요 창작그룹의 표현은 이와 상반되는 형태를 취하곤 한다. 물론 다양한 개별의 작업을 뭉뚱그릴 순 없지만, 자신들이 포함된 세대에 대한 선험적 규격화에 대해 반대하며 자신들의 세대가 처한 고충을 항변하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는 경향이 짙은 작업에선 주로 그들이 감당해야 하는 여러 현실의 제약과 환경의 열악함을, 조금 더 개별적인 유형 작업은 종종 자기연민이 과도하다 할 정도로 본인들이 처한 고충과 그에 따른 심리를 강조하곤 한다.

이런 경향에 대한 주요 비판 지점은 전자의 경우, 사회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청년세대가 바라보는 시선의 협소함을, 후자의 경우엔 개인의 브이로그 작업과 대중을 상대로 한 문화예술 창작의 혼선을 지적하는 것으로 나뉜다. 물론 대개 이 둘은 혼재된 상태로 언급되는 편이다. 이런 비판에 관한 입장은 개별로 상이하지만, 주로 본인의 정체성을 해당 세대냐 아니냐 규정하는 여부에 따라 갈리곤 한다. 즉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보다 ‘구별 짓기’에 초점이 간 모양새다. 출발부터 소모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런 논쟁 양상에서 논리와 근거는 힘을 잃고, 직접 경험하지 않은 대상에 대한 선입견과 단정, 그리고 ‘나(우리)는 다르다!’ 우월감이 팽배하기 마련이다. 기성세대의 편견은 수천 년 전, 수메르 점토판이나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벽화에 휘갈긴 낙서와 매한가지 레퍼토리로 답습되고, 청년세대는 감정적 항변과 자기연민에 치중하며 방어하는 패턴이다. 어느 한쪽이 객관적으로 개인이 아닌 집단적 양상을 고찰해 설득하는 사례를 찾기 점점 드물다. 기성세대가 억지로 집단화하는 반면, 청년세대는 끊임없는 개별화로 치닫는다. 그런 가운데 동 세대의 보편적 이야기를 현실감 있게 그려내는 작업은 귀하다. 이번에 소개할 작업은 바로 그런 예외에 속하는 반가움으로 다가온다.

연애 6주년 커플 앞에 펼쳐진 세계

여기 연애한 지 6년, 함께 산 지 3년이 된 30대 초반 커플, ‘소양’과 ‘충현’이 있다. 이쯤이면 볼 것 안 볼 것 다 본 사이, 말하지 않고 표정만 봐도 상대의 속내를 짐작하는 것쯤 어렵지 않을 테다. 이제 그들의 연애에서 누구나 겪었을 초반의 콩깍지는 휘발된 지 오래다. 그 공백을 채운 것은 유독 한국 사회에서 기승을 부리는 근거 불명의 ‘현실’이다. 그 ‘남들 평균치’ 잣대로 본다면 이들 커플은 낙제점을 넘어 당장 헤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둘은 자취방에서 6주년 기념으로 그들만의 조촐한 이벤트를 여는 중이다. 이것저것 빈한한 살림에도 자축하고자 신경 쓴 티가 역력하지만, 하필 비는 줄줄 내리고 둘은 뭔가 순탄치 않음을 직감한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 법, 그들은 결국 한판 격돌하기에 이른다. 충현은 둘이 함께 겪고 있는 생활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학원 진학 의사를 밝힌다. 소양은 지금 형편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냐며 급발진한다. 아마 그들의 다툼은 소재만 바뀔 뿐 주기적으로 이어졌을 법하다. 그래도 이번엔 꽤 심각한 분위기다.

소양은 가구점에서 일하며 강인한 생활력으로 동거생활에서 많은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반면에 충현은 펫숍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연애하는 동안에도 몇 번의 실패와 좌절을 겪었음이 대화 과정에서 드러난다. 우리 처지에 지금 꿈을 찾을 수 있냐며 항의하는 소양과 이대로 어차피 답이 없다는 충현의 대립은 대화로 해결될 차원이 아니다. 그런 둘의 언쟁은 충현에게 급하게 걸려온 전화가 아니었다면 밤을 지새웠을지도 모른다.

펫숍 사장에게서 온 전화는 충현이 돌보던 악어 ‘나비’가 자물쇠가 걸리지 않은 틈을 타 탈출했다는 것이다. 과실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사장은 충현의 책임으로 몰아붙이며 거액의 변상금을 물린다. 충현은 소양과 파국을 맞이할 위기에서 파트너가 대출받은 전세보증금을 갚기 위해 엄마에게 빌린 1,000만 원을 고스란히 헌납하고 만다. 보증금을 해결하기 위해 대책을 궁리하던 그는 탈출한 악어를 포획하는데 걸린 현상금을 위해 만사 팽개치고 수색에 나선다.

다툼 뒤 헤어지긴 했지만, 아직 미련이 남은 것인지 소양은 퇴근 후 충현이 수색하며 머무는 천변으로 향한다. 과연 둘의 진심은 무엇일까? 그들은 악어를 포획해 자신들이 처한 난관을 일단 벗어날 수 있을까?

장르물의 ‘크리쳐’가 아닌, ‘크립티드’로 악어를 활용하다

2023년 6월 13일에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무섬마을에 소재한 무섬교 주위에서 악어를 봤다는 목격담이 신고된다. 저녁 7시경 1m가 넘는 악어로 추정되는 동물을 지역 주민과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이 봤다는 내용이다. 마침 해당 지역은 내성천이 경유하는 일대인 데다, 그 외에도 희귀동물 관측이 집중되던 중이라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두 달 가까이 진행되던 수색작업은 동년 7월 말, 인근에서 비슷한 크기의 사바나왕도마뱀이 포획되면서 일단락되는 듯 보였지만, 당국에선 두 생물 종의 생태가 차이나는 이유 등으로 여전히 경계를 진행 중이다. ‘잡으러 가자’의 기본 소재는 지역에서 벌어진 해당 사건에 착안했을 테다.

대개 ‘악어’는 공포 장르에서 ‘괴물’로 형상화되곤 한다. 하지만 국내 장르 영화에선 주로 아열대 지방에서 서식하는 악어가 등장할 일은 지금껏 거의 없었다. 호랑이나 멧돼지, 아니면 ‘괴수’에 해당하는 변이종이 등장할지언정, 악어는 뜬금없는 설정으로 치부될 만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효시가 된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가 낳은 수많은 아류작 중 돋보이는 작업인 <앨리게이터>는 도시 전설 ‘하수구의 악어’에서 유래한 설정이지만, 국내에서 이런 부류의 설정이 그럴듯하게 여겨지지 않는 조건인 것이다.

‘잡으러 가자’의 출발점이 되었을 경북 악어 출몰 뉴스는 기존 장르 영화의 법칙보다는 기후변화로 인한 외래종의 토착화 가능성과 맞물려 설득력을 구사한다. 지역의 한여름 무더위, 게다가 기후위기를 체감하게 해주는 아열대화는 우연히 탈출한 아열대 생물이 정착할 수 있겠다는 개연성을 부여하는데 한몫 톡톡히 해낸다. 게다가 여러 경로로 금지된 종 밀반입과 ‘방생’이란 명목으로 무단 유기가 이뤄지는 상황은 영화의 설정이 ‘그럴싸한데?’ 싶게 만든다.

하지만 관객은 이내 주인공들의 악어 포획 프로젝트가 그다지 현실 고증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충현이 찾는 ‘나비’는 검정 카이만 악어다. 같은 종 중에서도 가장 큰 종이기에 성장하면 2.5~4m에 달하는 대형 악어다. 물론 악어라는 종의 위협이 과장되는 감이 있긴 해도 영화 속에서 둘이 어찌해볼 상대가 아니다. 인명사고라도 안 나면 다행이다. 그런데 정작 영화 속에선 반려묘 병원 데려갈 때 사용하는 이동장과 그물이 전부다. 아성체 악어라도 저기 들어갈지 의문이다. 즉 겉으로 전개되는 악어 포획과 실제 이야기가 의도하는 방향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는 단순히 저예산 단편영화의 한계로 벌어지는 상황이 아니다. 제작진은 애초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더라도 악어를 등장시킬 계획은 없었을 테다. 장르 영화에서 긴장을 극대화하는 ‘크리쳐’를 출현시키기 위한 특수효과나 모형 활용을 배제한 대신, 이 영화는 마치 전설 속의 용이나 미확인 ‘크립티드’처럼 탈출한 악어의 이미지를 조성한다. 오히려 악어가 희미한 윤곽으로라도 실제 이미지화되지 않아야 더 이야기의 함의와 통하는 셈이다. 철썩철썩 소리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의 울음소리로만 충현이 애지중지하던 ‘나비’는 관객에게 상상된다. 그런 ‘나비’를 소양은 질투한다. 둘은 알고 보니 경쟁자 관계이던 셈이다.

커플이 위기를 극복하는 법, 군더더기 덜어내고 대면하기

충현에게 ‘나비’는 현재의 답답한 처지를 돌파하기 위한 동아줄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몇 년 동안 펫숍에서 일개 아르바이트로 전문성을 인정받지도, 넉넉한 보수를 받지도 못한 채 권태로운 노동에 종사해 왔다. 악어가 탈출한 변상을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행태로 볼 때, 사장 역시 그리 좋은 고용주는 아니다. 어떻게든 악어를 제대로 관리하고 성장시켜 자신의 초라한 경력에 한 줄이라도 덧붙이려는 충현의 수고는 나비의 탈출로 물거품이 되고 만다. 지난 세월 막연하게 의지해온 것들의 총체적인 파산인 셈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관객의 시선에서도 너무나 허접하지만 다른 대책 없이 수색에만 몰두한다. 아마 본인 역시 다른 방책을 찾지 못했기에 벌이는 집착일 테다.

소양은 그런 충현이 답답하고 안타깝다. 그들이 처음 연애하던 6년 전도 꿈과 희망에 가득 차 있지는 않아 보인다. 그는 남자친구 곁에 있고 싶어서 직장 경력에 보탬이 될 타지 근무도 마다해 왔다. 지방에서 단순 영업직 근무가 크게 비전이 있지도 않으니, 막막하긴 해도 소박하게 현실적인 시야를 견지해 왔기에 가능했던 시간이다. 때로 팍팍한 삶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종종 티격태격하다 욱하고 칼로 물 베기 다툼을 벌인 뒤, 하이네켄 500mm 맥주캔으로 화해하는 일상이 아쉽긴 해도 큰 욕심은 없었다. 그런 일상이 전대미문의 위기에 봉착했다.

나비를 수색하는 천변에서의 며칠은 그들 커플에게 평소보다 좀 더 긴 냉각과 화해의 기회로 작용한다. 너무 익숙해진 다세대 빌라에서의 하루는 그들이 처한 질박한 현실을 극대화하기에 그곳을 일단 벗어날 필요가 있다. 서로 의지해야 할 컴컴한 강가, 텐트에서의 밤은 각자가 서로 함께하길 결심하던 순간을 떠올리게 해줄테다. 물론 이 뜻밖의 캠핑이 만사형통은 아니다. 둘은 고슴도치가 겨울잠을 위해 비좁은 굴에 모여들 때 달라붙다 떨어지길 반복하듯 밀고 당기는 과정을 이어간다. 서로 찌르고 찔리면 거리를 벌리다 추위가 스며들면 다시 근접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소양과 충현은 티격태격하면서도 간격을 조금씩 좁혀간다. 빤히 각자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지만, 그래도 확인하고 싶던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밥 사 먹으라고 살포시 돈을 올려둔 마음을 외면하는 상대에게 화가 난다. 굳이 안 쓴 이유를 이해하기에 더 열이 받는다. 관객의 뇌리에는 배려와 자존심 사이에서 일어나는 연애 관계의 숱한 레퍼토리가 절로 떠오를 테다. 이 진저리나는 각축의 시간을 통과해야 비로소 둘은 관계의 위기와 감정의 앙금을 해소하고 배출할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어쩌면 초심, 혹은 진화에 도달하고 만다.

한국 독립영화에 대해 부정적 논자들은, 근래 창작 경향이 그저 자신들이 처한 개별 상황을 일반화시킨 다음, 극단적인 설정과 표현으로 도배하는 데 그친다고 비판하곤 한다. SNS 배설과 성공을 향한 욕망의 기이한 혼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자기애에 빠져 있고, 주변 세상에 관한 관심이 희박하다는 문제제기도 덧붙인다. 그런 지적에 대해 ‘잡으러 가자’는 여러모로 내세울 미덕이 많은 작업이다.

얼핏 소양과 충현의 처지는 영화가 끝나도 딱히 나아질 기색이 엿보이지 않는다. 혹자는 그들의 선택이 그저 ‘의지의 확인’에 불과하다 치부할 수도 있다. 차라리 정말로 악어를 포획하는 게 더 이 커플이 처한 고단한 상황 해결에 현실적 대안으로 여겨질 정도다. 이들은 다시 현실로 돌아가 그들의 구차한 형편 때문에 툭하면 다툼을 이어갈 테고, 어쩌면 사랑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제약 때문에 끝내 헤어질지도 모른다. 그런 결과가 온다 해도 ‘격’에 맞는 조건 찾기를 선험적으로 재단하는 세태에 갇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조금 더 긍정적인 결말일 테다.

양산형 기성품과 같은 듯 다른 개성을 지닌 이 영화의 미덕

아쉽게도 작품이 지닌 완성도나 효용에 비하면 본 작품은 많은 곳에 호명되지는 못했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테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지만, 우선 ‘잡으러 가자’가 취하는 주제의식을 온전히 포착하려면 30분 가까운 영화의 종막을 목격해야 한다는, 즉 이 영화의 ‘미괄식’ 전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매년 전국의 숱한 영화제들이 ‘역대 최다 출품!’을 강조하며 자화자찬하지만, 정작 각 영화제의 변별력이나 공모 심사위원 그룹의 과부하 문제가 지적되는 문제와 통하는 지점이다. 수백 단위의 작품을 심의하다 보니, 확 띄는 선명한 주제나 대번에 포착되는 ‘두괄식’ 구성이 선호된다.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잡으러 가자’는 실제로 영화를 본 이들의 호평에 비하면, 영화제에서는 번번이 미끄러지는 아쉬움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물론 이 작품이 대단한 걸작이거나 올해의 대표작이라 할 정도의 놀라운 완성도를 지닌 발견은 아닐지언정, ‘영화제용 기성품’이란 악평까지 심심찮게 등장하는 근래 창작 경향의 피해자에 가깝다는 게 소신이다. 작품에 녹아 있는 주제의식과 여러 장치가 코믹한 세태 풍자의 동어반복으로만 치부되는 것도 아쉽다. 첫 작업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었을 제작진으로선 속상할 만하다.

이 영화가 취하는 방법론, 풍자 코미디와 로맨스의 결합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통념상의 ‘리얼리즘’과는 조금 다른 결로, 하지만 그 주제의식에선 명백히 사실주의적 태도로 통하는 우회 접근방식에 속한다. 현실 고증의 엄밀함을 선호한다면, 이 작품은 쉬운 길을 택한 것으로 여길 수 있지만, 시사 풍자 면에서 오히려 더 난이도 있는 경로를 선택한 것에 가까워 보인다. “지역에서 화제가 된 이슈의 활용” + “상향식 경쟁에서 한발 빗겨선 지역 청년들의 생존방식” + “(외적으로) 지역 영화제작 워크숍 창작과정”이 잘 결합한 사례다.

영화 속 ‘맥거핀’에 해당하는 ‘악어’와 주인공들의 생존방식은 제법 흡사한 구석이 있다. 악어는 편견과 달리 지능이 뛰어난 동물이다. 조류와 함께 공룡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기도 하고, 근래 인간과 교감능력이 상당하다는 연구도 속속 발표되는 중이다.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고, 수생동물에 가깝지만 물 밖으로 나와서도 활동력이 상당하다. 게다가 변온동물의 강점을 살려 자주 먹지 않고 오래 웅크린 채로 생명 유지가 가능한 종이다. 지역에서 버티는 나날을 보내는 청년세대의 삶과 비교하면 꽤 흥미로운 연상 효과가 발생하는 셈이다. 제작진이 어디까지 고려했는지 궁금한 대목이다.

보론: ‘지역 독립영화’의 자리 찾기 과정에서 주목할 일례

‘지역영화’ 혹은 ‘로컬영화’가 과연 실재하는가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는다. 혹자는 그저 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명분으로서 지자체별로 구획된 지역 사회 내 영화인들이 가상으로 설정한 허구에 불과하다고 규정하기도 한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딱히 지역의 차별화된 면모가 부재하다는 지적은 흔히 들려온다. 특정한 공간의 각인이나 사투리 구사가 ‘지역영화’라 불리는 모호한 대상의 정체성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경청하고 반성할 지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청년세대가 지역에 그다지 애착을 갖거나, 정착할 의지를 품고 있지 않다는 측면에서 파생한다. 기성세대 주도권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상황에서 뭘 해보려 해도 재량이 없고, 딱히 먹고 살 만한 일자리나 안정된 기반도 마련되지 않는데 동네에 애착을 갖고 관찰하거나 참여하기란 쉽지 않은 몫이다. 청년세대가 굳이 지역에 천착하고 주목할 명분도 이유도 박약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지역에서 만든 영화라 해도 배경이나 상황은 딱히 차별화될 게 없다. 마치 백화점이나 쇼핑몰과 복합된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 풍경이 어딜 가나 비슷한 것처럼.

하지만 원인을 분석하는 것만으로 끝날 순 없는 노릇이다. 제약과 한계를 두루 평가할 순 있지만 어떻게든 돌파 혹은 극복해야만 의미가 남는 법이다. 보편적인 담론을 다루면서도 지역화된 개성을 담아내는 과제는 결코 쉽지 않지만, 반드시 넘어야 할 숙제다. 하지만 대개 청년세대가 처한 답답한 환경 탓에 이 당위를 자주 놓치곤 한다. 그들이 처한 조건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지만 아쉬운 대목이다. 그런 가운데 스테레오 타입으로 양산되는 ‘지역영화’ 사이에서 ‘잡으러 가자’가 보이는 중용과 함께, 현실에 발 딛고 선 풍자와 유머의 매끄러운 조합은 반가운 한 줄기 바람이 아닐 수 없겠다. 가늘지만 제법 오래 언급될만한 영화다.

<작품정보>

잡으러 가자
Let’s go get it
2024 | 한국 | 드라마/코미디/로맨스 | 29분50초
감독/각본 양지은
주연 서하림(소양 역), 문창준(충현 역)
출연 손호석, 김수정, 이미정, 이승재, 최인영
PD 문가원 | 편집 양지은, 박찬우 | 촬영 조외정 |
미술 양지은, 박찬우 | 동시녹음 장일경 | 사운드 최지영
제작 대구영화학교

2023 5기 대구영화학교 졸업작품
2024 25회 대구단편영화제, 개막작 & 애플시네마 경쟁

김상목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