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플라톤 추방] 나그네가 당도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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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계성중학교에 다니던 때부터 동시를 써온 박목월(1916~1978)은 1939년 <문장>에 시를 발표하며 시인이 되었다. 조지훈·박두진과 3인 시집 <청록집>(을유문화사, 1946)을 냈고, 1948년 서울로 이주하고서 첫 시집 <산도화>(영웅출판사, 1955)를 출간했다. 정지용은 그를 <문장>에 추천하면서 “북에 김소월이 있었거니, 남에 박목월이가 날만하다”라는 추천사를 썼는데, 참말로 같잖은 말이다. 박목월은 김소월이 가진 정한의 깊이도 절망도 따라가지 못한다. 박목월은 되다가 만 이미지스트였다.

박목월의 시 50편을 골라 각 편마다 원고지 10매 이상의 감상문을 쓴 어느 평론가는 시를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누었다. 하나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의 시’이고, 다른 하나는 언어를 매개로 하여 순수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존재의 시’. 그러면서 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짜 아름다운 시에서는 의미가 오히려 희미하고 존재성이 매우 강하다. 박목월의 ‘나그네’ 같은 시가 바로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나그네’에는 의미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 이 작품은 그냥 음악이나 그림처럼 어떤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이미지 또는 정서 또는 분위기를 지닌 언어적 조형물일 따름이다.” 같은 시의 전문을 보자.

“강나루 건너서 / 밀밭길을 //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 길은 외줄기 / 남도 삼백리 // 술 익는 마을마다 / 타는 저녁 놀 //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3음보 2행으로 된 이 다섯 연의 시는 극히 절약된 시어와 조탁된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는 박목월 초기시에서 쉽게 찾아지는 특징으로 이 작품과 함께 <청록집>에 실려 있는 ‘윤사월’·’청노루’가 그러하고, <산도화>에 실려 있는 ‘산도화’ 연작이 그러하다. 특히 첫 시집에 실려 있는 ‘산도화1’에서 시인은 3연으로 된 시를 삼각형으로 보이게 시행을 조절하여 산을 연상케하는 형태주의적 효과를 연출했으며, ‘불국사’에서는 조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색과 소리만의 대비로 마음의 풍경을 그렸다.

한국의 문학 교육은 ‘나그네’가 어두운 시대의 불안과 공허를 이기기 위해서 시인이 마음속으로 그려본 상상의 안식처였다는 것까지만 가르치지, 나그네가 어디에 당도했는지는 가르치지 않는다. 답은<청록집>과 <산도화>에 흔전만전이다. “가난한 살림살이 / 자근자근 속삭이며 / 박꽃 아가씨야 / 박꽃 아가씨야 / 짧은 저녁답을 / 말없이 울자”(‘박꽃’ 부분) “백양 잘라 집을 지어 / 초가삼간 집을 지어 / 꾸륵꾸륵 비둘기야 // 대를 심어 바람 막고 / 대를 쩌서 퉁소 뚫고 / 꾸륵꾸륵 비둘기야 // 장독 뒤에 더덕 심고 / 장독 앞에 모란 심고 / 꾸륵꾸륵 비둘기야”(‘밭을 갈아’ 부분)

간혹 초기시와 같은 자기복제를 낳기도 했지만, 박목월의 이미지스트적인 면모는 두 번째 시집<난·기타>(신구문화사, 1959)부터 급격히 사라졌다. 언어로 그리는 산수화 같았던 그의 시는 집안으로 들어와 가족 이야기가 되었다. 이를테면 이층의 서재에서 밤이 깊도록 글을 쓰다가 아래층에 내려와 보니 어린 자식들이 “날무처럼 포름족쪽하게 얼어 있”더라는 것, 그래서 다시 “층층계를 밟고 / 이층으로 올라”가 원고지를 메꾸었다는 것. “그 이층에서 / 나는 밤이 깊도록 글을 쓴다. / 써도 써도 가랑잎처럼 쌓이는 / 공허감. / 이것은 내일이면 / 지폐가 된다. / 어느 것은 어린것의 공납금. / 어느 것은 가난한 시양대(柴糧代). / 어느 것은 늘 가벼운 나의 용전(用錢).”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는 대통령 직선제를 간선제로 바꾸는 헌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박목월은 유신헌법을 국민투표에 부친 정부 편에서 찬성 유도 홍보 활동을 펼쳤다(국민투표 지도계몽요원으로 위촉되었다). 그는 1972년 11월 18일 <서울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유신헌법 개정안이 발표된 10월 17일이 1960년 4월 19일과 같은 화요일이라는 사실을 귀신처럼 잡아챘다. “4·19와는 다른 뜻에서 불로써 상징되는 화요일에 우리는 다시 불로써 정신의 세례를 받는 듯한 충격을 받게 된 것이다.” 구름에 달가듯했던 나그네가 당도한 자리였다. 대구 시인들은 박정희 동상을 좋아한다.

장정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