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대구지하철참사, 지역사회 함께 고민하는 자리 마련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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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아들을 병으로 잃은 친구가 ‘대구지하철참사 유가족은 매스컴에서 슬픔을 말하고, 추모공원도 만들었지 않냐. 부러우면서 질투가 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추모공원을 명명하고 트라우마에 대한 권리를 찾아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교통사고나 병으로도 가족을 잃을 수 있지만, 한날한시 수백 명이 죽었다는 건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지난 20여 년간 이 슬픔을 변화로 승화시키자고 말해왔지만 정작 내 옆의 친구조차 설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재영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 전 사무국장)

대구지하철참사 이후 2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에 대해 지역사회가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22일 오후 대구 중구 매일가든에서 열린 ‘재난 피해자 권리를 위한 대구지하철참사 해결 과제 공유회’에는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 희생자대책위원회 관계자 20여 명이 참석해 의견을 나눴다.

공유회는 대구416연대,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가 주최하고 사랑의열매가 지원해 마련됐다. 올해 출범한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는 4·16재단의 부설기관으로 국내 최초로 재난피해자들의 권리 증진을 주목적으로 설립됐다.

▲왼쪽부터 박신호 대구416연대 상임대표, 윤근·황순오·전재영·황명애 희생자대책위원회

점심식사 뒤 이어진 간담회에서 박신호 대구416연대 상임대표는 “시민단체, 노동조합, 유가족이 한 자리에 모인 건 2004년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세월호 참사 관련 활동을 하면서도 대구지하철참사가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었다”며 “올해 초 재난피해권리센터가 출범하면서 지역사회, 유가족의 연대활동을 주요 사업으로 배치했다. 센터의 도움으로 이런 자리가 만들어진 걸 환영하며, 앞으로 자주 소통하면서 대구 지역사회가 무엇을 해야 할지 함께 고민하자”고 취지를 설명했다.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 측은 추모사업 미결과제를 전하며, 이런 자리를 자주 마련해 달라 주문했다. 황명애 희생자대책위 사무국장은 “오늘 집을 나오면서 2003년을 떠올렸다. 세상이 무너진 날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뭘 해야 할까’를 가슴에 심어준 분들이 있다. 그중에는 시민사회단체도 있다. 단체마다 우리와 이어진 스토리가 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소원해진 부분도 있다”며  “2.18안전문화재단과 대책위 간 소통이 부족하고, 그에 따라 추모사업도 벽에 부딪힌 상황이다. 오늘 자리에 바뀐 단체 관계자, 젊은 분들도 참석했으니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부분을 다른 방향으로 풀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고 말했다.

참사 초기 7년간 사무국장을 맡은 황순오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은 “우리의 요구는 추모묘역, 추모탑, 추모벽, 안전교육관, 재단 다섯가지다. 시민안전테마파크, 추모탑이 형성됐고 추모벽은 중앙로역 기억공간으로 설립됐다. 재단도 우여곡절 끝에 설립됐다”며 “하지만 추모탑은 ‘안전과 추모를 상징하는 조형물’이라 명명했고, 묘역은 암매장으로 매도되고 있다. 시설은 다 들어섰지만 이걸 대구시가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다. 주민들에게 했던 약속과 우리에게 했던 약속이 배치되기 때문이다. 권영진 전 시장 때에는 이를 조정해 보려 노력했지만 홍준표 시장 취임 후에는 아예 대화가 단절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여성계와 노동계도 대구지하철참사를 재조명하고, 남은 과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이성일 민주노총 대구지하철노조 위원장은 “가장 안전해야 하는 일터가 참사 이후 위험한 곳이 되기도 했다. 우리 일터와 시민의 안전을 지키자는 마음으로 연대하고 있다”며 “추모공원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안심 차량기지에 방치된 전동차 두 량의 보존 방법도 함께 지역사회가 고민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예민 대구여성회 대표는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어떻게 대중에게 가시화할 것인가 두 가지 문제가 핵심인 것 같다. 대구416연대가 중심을 잡고 시민들과 만나고 있다. 이를 더 많은 시민에게 확대하는 게 우리의 과제”라고 말했다. 이정아 민주노총 대구본부 사무처장도 “그동안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이슈를 함께 논의할 자리를 많이 만들지 못했다. 공공운수노조와 함께 방법을 고민하겠다”고 덧붙였다.

장지혁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지금은 ‘우리가 (추모제를) 해도 될까’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틀에 박힌 추모식이 아닌,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크고 작은 추모 형태가 나와야 한다. 이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 고민하겠다”고 조언했다.

황순규 진보당 대구시당 위원장은 “팔공산 추모제를 매년 가고 있지만, 특히 상인들의 반발을 보면 (행정에) 화가 난다. 주민을 설득하는 과정에 왜 손을 놓고 있는지 답답하다. 약속이 이중이었더라도 그 뒤의 과정까지도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며 “정당에서 논평을 내고, 추모식을 다녀오는 방식에서 나오는 파급력과 TV방송에서 다뤄지면서 발생하는 영향력이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