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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폐쇄성폐질환으로 중증장애인 인정을 받은 A 씨(85, 대구 중구)는 최근 장애인 재판정 심사 포기를 고민하고 있다. 폐질환이 악화하며 산소 호흡기를 달았고, 집 밖을 나서기 어렵게 돼 근육 손실까지 이어진 상태다. A 씨는 하루 생활 대부분을 침대 위에서 보내고 있다. A 씨가 재판정을 받기 위해서는 병원에 방문해야 하는데, A 씨는 그 과정을 불가능하다고 느낀다.
2012년 발병 후, 2020년 질환이 심해졌다. 그해부터 A 씨는 중증장애인으로 등록하고 와상 상태로 지냈다. A 씨가 장애 재판정을 위해 병원에 방문한 2022년, 산소호흡기를 달고 이동식 침대에 누워 병원을 찾은 노력에 비해 진료가 간단히 끝나자, A 씨는 허탈했다. 그런데 2년만에 다시 재판정을 받으라는 연락을 받자, 이번에는 병원 방문이 어렵다고 느낀다. 질환이 악화된 데다 어지럼증이 심해 몸을 일으켜 세우기도, 휠체어를 타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근육도 손실돼, A 씨는 식사나 신변처리도 침대에서 하고 있다.
재판정을 받기 위해선 장애정도심사용진단서를 발급받아야 하고, 이를 위해선 필히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와상 상태로 산소호흡기를 지참해 병원에 방문하는 일도 버겁지만, 외출 자체도 감염병 감염 우려 때문에 꺼려지기도 한다. A 씨는 중증장애인 자격을 유지해 산소호흡기 이용료 지원을 받고 싶지만, 건강상의 한계를 느끼며 병원 방문을 단념하게 됐다.
“어지러워서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없어···이 나이에 내 폐가 나아지면 얼마나 나아질까. 누워서 생활하다 보니 근육도 다 빠졌는데. 재판정받으러 억지로라도 병원에 가도, 진료 몇 분이면 끝나. 그거 하러 위험 무릅쓰고, 산소통도 가지고 가야 해. 결과는 뻔한데 왜 위험을 감수하면서 가야 해. 사람을 괴롭히는 제도야. 산소호흡기 지원 받는 게 필요한데, 그래도 나는 못 가겠어···” (A 씨)
A 씨 사례처럼 병원 방문이 어려워 장애 진단이나 재판정을 포기하는 사례는 적잖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장애정도심사를 수행하는 기관인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장애정도심사는 신규, 정도 조정, 재판정으로 나뉜다. 재판정의 경우, 최초 장애 진단 이후 장애 상태에 변동이 예상되는 때에 받게 된다.
장애 상태에 변동이 예상되는지 여부는 2인 이상의 전문의사가 참여하는 의학자문회의가 서류로 판단한다. 자문회의가 영구적 장애가 아닌, 상태 변동이 예상되는 장애로 판정했을 때, 장애 유형별로 차이(유형별 1~9년)는 있으나, 대체적으로 2년 뒤 재판정을 받아야 한다.
A 씨 사례를 예로 보면, A 씨의 질환은 자문회의에서 영구적 손상으로 판정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최초 장애 진단 이후 재판정을 한 차례 받았고, 당시 받은 재판정에서도 영구적 손상으로 판정하지는 않아 다시 재판정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같은 문제는 장애 정도를 경증에서 중증으로 상향해야 하는 조정 사례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생한다.
와상 생활하는 A 씨, 고관절 골절 당한 B 씨
모두 병원 직접 찾아 진단 받기 어려운 처지지만
재판정 서류 마련을 위해선 병원 가야
대구 서구에 거주하는 B(80) 씨는 청각장애를 이유로 경증장애로 등록된 장애인이나, 2006년 중풍, 2023년 고관절 골절로 1년여 기간 침대 밖을 나서지 못하고 있다. 병원에서는 B 씨 연령과 건강 상태를 고려해 골절상에 대한 수술을 하지 않기를 권했기 때문이다. 수술도 받지 않을 B 씨가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같은 청각장애인인 아들이 B 씨를 돌보고 있지만, 힘에 부친다. 장애인 활동지원이라도 더 받고 싶은 마음에, 장애 정도를 중증으로 상향하고 싶지만 여의치 않은 처지다. 중증장애인으로 인정받으면 B 씨가 평소에 지원받는 장애인건강주치의 사업에서도 추가적인 방문진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경증 상태에서는 연 2회(2인 기준)지만, 중증장애인으로서는 연 12회(2인 기준) 방문진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B 씨 역시 진단을 받기 위해 병원으로 향하는 게 크나큰 장벽이다. B 씨가 사는 집은 엘리베이터도 없는 다가구주택이고, B 씨는 2층에 거주한다. 골절 상태의 B 씨를 병원에 옮겨 진단을 받고 다시 복귀하는 일이 버겁게 느껴진다.
A, B 씨에 대한 방문진료를 이어오고 있는 양선희 위드의원 원장은 “A, B 씨 모두 병원 방문을 하지 않고도 장애 상태가 명확하게 판명되며, 장애가 심한 사례에 속한다. A 씨는 재차 재판정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일주일 간격으로 2회 병원에 방문해야 한다고 하자 병원 방문을 포기했다. B 씨도 골절상에 대한 수술을 하지 않아 호전 가능성은 없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양 원장은 “환자 입장에서 중증장애인 인정과 이에 따른 서비스가 절실하다. A, B 씨 사례만이 아니라, 유사한 사례는 충분히 확인된다. 환자 입장에서 의료, 복지 서비스 접근권이 좀더 확보돼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국민연금공단, 편의제공 의무 있으나
장애인 등록, 정도 조정, 재판정 시 병원 방문 필수
“서비스 제공보단 보장 축소에 맞춰져”
“사례별 서비스 제공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공단에 따르면, 와상 상태로 지내는 장애인도 특정한 유형의 경우에만 진단서 발급 절차를 완화하고 있다. 뇌병변장애인이면서 요양병원에 입원을 한 장애인에 한해서만 신경과 의사 등 관련 전문의가 아니라 요양병원 의사가 장애정도심사용 진단서 발급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정도다.
A, B 씨 사례는 와상 상태이지만 뇌병변장애인도 아니고, 요양병원에 입원한 상태도 아니다. 이 탓에 장애인 인정과 정도 조정, 재판정 과정에서 장애나 질환 상태가 명백하고 병원 내원이 어려운 경우,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장애정도심사규정에 따르면 공단은 공단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장애정도심사규정을 위한 편의제공을 해야 한다. 다만 이 편의제공 또한 의료기관 방문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보건복지위원회)이 국민연금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공단은 해당 규정에 따른 편의제공으로 현재 ▲기 실시된 진료에 대한 서류 발급 대행 ▲자료보완시 발급비용, 검진비용 등 지원 희망자 지원 ▲상담, 접수, 동행서비스 지원에 그친다.
서미화 의원은 “의료기관 방문이 필수적인 상황은 공급자 중심으로 제도가 마련된 탓이다. 장애인은 장애유형과 장애정도 외에도 주거환경, 외부적 요인 등으로 의료기관에 접근하기 어려운 집단”이라며 “개인의 건강 및 장애 상태에 맞춰 장애심사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병원 접근이 어렵고, 의사 방문 진료로 장애 진단이 충분히 이뤄질 수 있는 경우 의사 소견을 심사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방문진료-장애진단 모델 도입이 필요하고, 만약 의료장비 활용이 불가피한 경우라면 충분히 이동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연계하는 방안도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은 “장애진단을 위해 병원에 방문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책이 있긴 하지만, 이 또한 지자체마다 다르고, 자부담이 되는 경우도 있다. 장애는 기능이 떨어져서 장애인건데, 구체적 기능을 보지 않고 질병에 해당하느냐 아니냐만 놓고 따지는 건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질병에 기초한 장애유형 분류와 이에 따른 지원은 불필요한 지원까지도 하는 문제도 있다. 그보다 사례별 판정과 지원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며 “장애인 주치의 제도를 시범사업 수준이 아닌 전면적으로 활성화하고, 통합돌봄체계를 통해 촘촘히 관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민연금공단 장애인지원실 관계자는 “서류를 냈음에도 명확하지 않은 경우, 직접 진단을 지원하는 경우는 있다”며 “서류 완화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부분이 많이 있다. 여러모로 불편함 없이 재판정받을 수 있을지 논의도 하고 있다. 기준이 완화하는 쪽으로 가고는 있는데, 서류를 갖추지 않은 문제는 의료계에서도 찬성하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중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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