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 합동위령제···“잊지 않고, 기억하길”

"남은 유해 발굴도 중요"···예산 확보해 내년 쯤 재개 될듯

17:06
Voiced by Amazon Polly

11일 경북 경산시 평산동 652번지 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 위령탑에서 ‘한국전쟁 전후 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 제74주기 제25회 합동위령제’가 열렸다. 유가족과 관계자들은 위령제를 통해 남은 유해 발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민간인 학살이 역사에 제대로 기억되길 바랐다.

위령제는 (사)한국전쟁전후 경산 코발트광산민간인희생자유족회와 한국전쟁 전(前) 경산유족회가 주최·주관했고, 경상북도·경산시·경산시의회·청도군·경산신문사·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자 전국유족회가 후원했다.

위령제는 평화문화제, 고유제, 합동위령제, 추도사 낭독, 헌화 순으로 진행됐고, 200여 명이 참석했다. 평화문화제를 통해선 ▲대북타고(국악협회경산지부) ▲씻김굿(국악협회 경산지부) ▲우창수와 어린이합창단 ▲추모시(시 천영애, 낭독 한은정) 등을 통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유족을 보듬었다.

▲한국전쟁 전후 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 제74주기 제25회 합동위령제에서 고유제가 진행되고 있다.
▲ 한국전쟁 전후 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 제74주기 제25회 합동위령제 1부 평화문화제에서 ‘우창수와 어린이합창단’이 공연을 하고 있다.    

추모사를 통해선 아직 마무리되지 못한 유해발굴과 추모사업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합동추모제에서 나정태 (사)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유족회 이사장은 “코발트광산은 역사가 증언하는 피해현장으로,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은 진실화해를 위한 대상이지 좌우이념의 갈등 대상이 아니”라면서 “유족분들 한분이라도 살아있을 때까지 뼈 조각 하나라도 발굴해 유족의 한을 풀어드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복영 (사)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전국유족회장은 “오늘은 무고하게 희생되신 민간인 희생자를 마음 속 깊이 기억하고 반성의 마음을 갖는 날”이라며 “반성은 민간인 희생의 실체를 규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여야 의원 12분이 발의한 기간연장법, 소멸시효배제법, 배보상에 관한 법 등이 21대 국회에서 폐기됐고, 22대에서 풀어야 할 숙제가 됐다”고 말했다.

조현일 경산시장의 추모사는 윤희란 부시장이 대독했다. 조 시장은 추모사를 통해 “오랜기간 사실 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유가족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진실은 밝혀지고 피해는 인정되었으나 장기간 진행된 유해 수습 노력에도 아직 수습되지 못한 유해들로 우리는 여전히 가슴 아프고 무겁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리시는 남은 유해가 수습되는 날까지 경상북도와 함께 더욱 노력할 것이며 유가족들의 깊은 아픔을 치유하는 데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이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역사 앞에 서는 우리의 책임”이라고 덧붙였다.

위령제에 참석한 유족들 역시 무고하게 희생당한 가족들의 죽음을 기리면서 서로를 위로했다. 또 코발트광산 민간인 희생자들의 죽음이 역사에 제대로 기록되길 기대했다.

이창희 (사)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유족회 이사는 홀로 남은 어머니를 보며 쓴 추모시 ‘그 어느날에’를 낭독해 애닳은 마음을 전했다.

▲ 한국전쟁 전후 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 제74주기 제25회 합동위령제에서 이창희 (사)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유족회 이사가 홀로 남은 어머니를 보며 쓴 ‘그 어느날에’라는 추모시를 낭독했다.

“··· 조작 은폐 왜곡으로 더러운 올가미 / 덮혀 씌워 생사람 죽여 놓고 / 천년만년 너희들의 악랄한 죄가 묻힐거라 알았더냐 /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 여부 모른채 청상에 과부되어 / 품속에 어린 자식 애비찾는 울음 소리 달래면서 / 눈물 적신 원앙금 움켜쥐고 지새운 밤 그 누가 알리요 (중략)”

위령제에 참석한 유족 박삼태 씨(77, 진량읍)는 아버지 이름과 자신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배롱나무 앞을 함께 온 아내와 서성였다. 박 씨는 “마음이 홀가분하다. 그래도 이렇게 나마 아버지를 모실 수 있어서 다행이다. 3살 때 일이라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40년 전 쯤에야 어머니께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민남주(75) 씨도 “아버님이 나쁜 짓 하다 그렇게 된 것도 아니고, 부끄러울 것이 뭐가 있겠냐. 아무 것도 없이 오라 해서 갔다가 그렇게 학살 당한 건데”라면서 남은 유해 발굴이 잘 마무리되길 바랐다.

▲ 위령제에 참석한 유족 박삼태 씨가 아버지 이름과 자신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배롱나무 앞에 서있다.
▲ 위령제 참석자들이 헌화를 하고있다.

한편, 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 학살 사건은 1950년 7~8월 경산, 청도, 대구 등 지역에서 끌려온 보도연맹원 등을 군경이 재판 없이 집단 학살한 사건으로, 3,5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1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까지 코발트광산 유해발굴을 진행해 420여 구 유해를 발굴했다.

이후 추가 발굴 작업은 이뤄지지 않다가 2020년 2기 진실위가 출범한 뒤 코발트광산을 포함한 국민보도연맹 사건 관련 지역 유해 발굴을 재개했다. 경산시에 따르면 2023년부터 2년에 걸쳐 진행된 유해 사업에선 4,787점이 수습됐다. 추가적인 유해 발굴을 위해 경산시는 경북도에 예산을 요청한 상황이다. 예산이 확보되면 내년에 추가적인 유해발굴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