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변의 헤어질 결심] 외도 증거 수집도 적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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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간녀가 저를 고소했다네요 변호사님!”

▲의뢰인은 남편의 외도를 짐작하고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제일 먼저 남편 차량의 블랙박스를 확인했습니다. (이미지=Microsoft designer)

남편의 외도를 이유로 이혼 소송을 제기한 의뢰인이 저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해왔습니다. 남편의 상간녀가 의뢰인을 스토킹으로 고소했다는 것입니다. 의뢰인의 남편은 몇 달 전부터 아무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 보였고, 한 번도 잠그지 않았던 휴대전화에 비밀번호를 설정하여 잠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의뢰인은 평소엔 보지 못했던 남편의 기분 좋은 표정에서 외도를 짐작하고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제일 먼저 남편 차량의 블랙박스를 확인했습니다.

블랙박스는 이미 남편이 모두 삭제를 한 것인지 남아있는 영상이라곤 남편과 상간녀가 함께 골프장으로 들어가는 모습밖에 없었습니다. 의뢰인은 남편 차량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하여 남편의 뒤를 밟아 남편이 상간녀와 함께 골프를 치고 나온 뒤 식사를 하고 모텔로 들어가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했습니다.

남편 휴대전화 비밀번호도 몇 차례의 시도 결과 풀 수 있게 되면서 상간녀의 연락처도 확인하고, 스파이앱을 설치해 남편과 상간녀의 통화도 녹음했습니다. 의뢰인은 상간녀로 추정되는 여성에게 차량 블랙박스 영상과 자신이 촬영한 동영상을 전송하면서 “가정이 있는 남자를 건들지 말라”는 경고 문자 메시지도 전송했습니다.

의뢰인은 혼자서 외도 증거를 수집한 뒤 저를 찾아와 이혼 소송을 의뢰했는데 의뢰인의 행위는 형법 제321조의 자동차 수색죄, 위치정보보호법 위반, 스토킹처벌법 위반, 정보통신망법 위반,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에 해당할 수 있는 행위였습니다. 증거 대부분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수집된 것이어서 저는 의뢰인에게 형사고소를 당할 위험성이 있다고 알려드린 뒤 증거의 적법성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하던 중이었습니다. 배우자의 외도로 심한 충격을 받았을 의뢰인이 증거 수집까지 혼자하며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를 생각하니 못내 마음이 아팠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최근 대법원이 판례를 통해 민사나 가사 소송에서도 불법적으로 수집된 증거의 증거능력을 부인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대법원 ‘24.4.16. 선고 2023므16593 판결). 종전에는 형사소송에서 위법수집증거의 증거능력 배제 법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과 달리 민사나 가사 소송에서는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도 형사처벌 문제는 차치하고 그 증거 능력을 대부분 인정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제까지는 외도 증거를 잡으려는 많은 사람들이 형사처벌의 위험성을 감수하고서라도 불법적인 방법으로 증거를 수집해 법원에 제출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불법적인 수집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도 받고, 그 증거는 소송에서 증거로 인정받지도 못하게 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배우자의 외도를 발견하는 순간의 충격과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황하고 화가 난 나머지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르게 되면 오히려 역으로 고소를 당하고 애써 수집한 증거도 인정받지 못하는 억울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증거 수집부터 적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박경연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가사·형사 전문변호사 / 법무법인 YK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