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변의 헤어질 결심] 을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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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제가 절대 이혼 소송 같은 건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혼인 기간이 40년도 더 된 의뢰인이 이혼 소송을 하고 싶다고 찾아 오셨습니다. 혼인 기간 동안 남편이 지속적으로 외도를 했으나 자녀들이 어리기도 하고, 남편이 벌어 주는 생활비로 경제적 안정도 누릴 수 있고, 다니는 교회에서의 평판도 두려워 행복한 척하며 참고 살아왔다고 하셨습니다.

자녀들이 다 장성하여 여유가 생길 무렵 의뢰인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남편이 위로는커녕 병원비를 내준다는 이유로 생색을 내며 여전히 외도를 하였고, 평생 남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순종적으로 살아왔던 의뢰인은 홀로 힘겹게 암과 싸워야 했습니다.

암 완치 판정을 받던 날 의뢰인은 이혼을 결심하였습니다. 남편 몰래 이혼 전문 변호사를 찾아와 상담을 받으며 차근차근 이혼 소송을 준비했습니다. 거의 모든 부부 공동재산이 남편의 명의로 되어 있어 남편 명의 부동산에는 가압류 신청을 하고 남편의 외도와 폭언에 대한 증거를 수집했습니다.

의뢰인의 남편은 의뢰인이 평생 가정주부로 살면서 순종적이고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먼저 이혼 소송을 제기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의뢰인의 남편은 가압류 결정문과 이혼 소장을 받은 후에도 의뢰인에게 “니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재산의 50%를 달라고 하냐”, “너는 나를 절대 못 이긴다”고 큰 소리 치며 의뢰인에게 소를 취하하라고 종용했습니다.

평생 자신이 갑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남편에게 의뢰인의 이혼 소송 제기는 큰 충격이었던 것입니다. 의뢰인의 남편은 이혼을 반대했으나 이미 오래전 닫혀버린 의뢰인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우리나라의 이혼 소송 제도 역시 오랜 시간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뢰인의 편이었습니다. 결국 의뢰인은 재산 분할로 부부 공동재산의 50%를 취득하게 되었고, 남편의 사과까지 받아내게 되었습니다.

간혹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거나 물리적으로 힘이 세다는 이유로 자신이 갑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며 배우자를 을로 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부는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평등한 관계입니다. 만약 평등한 관계가 아니라고 느껴진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적극적으로 상황을 개선할 방법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박경연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가사·형사 전문변호사 / 법무법인 YK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