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손에 예초기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배낭을 든 박성현(59, 대구 중구) 씨가 경북 청도군 운문면 대천리에 있는 선착장 입구에 섰다. 1년에 한 차례 열리는 뱃길을 통해 ‘조부모’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한국수자원공사는(수공, K-water) 운문댐 조성 이후 매년 추석을 앞두고 성현 씨와 같은 수몰민을 위한 선박을 운행해 왔다. 올해도 지난 1, 7, 8일 3일에 거쳐 110명이 이 배를 탔다. 수몰 지역으로 들어가는 배는 오전 8시 30분부터 30분 간격으로 운행됐고, 벌초를 마친 후에는 공사 관계자에게 직접 전화를 하면 데리러 가는 방식으로 운행됐다.
수공이 사업을 주관하지만 청도군 상수원관리사무소에도 협조를 구해 청도군 배도 함께 현장에 투입됐다. 수공과 청도군은 각각 동창천과 운문천에서 각기 선박을 운행해서 경로도 2개 코스로 나뉜다. 수공은 동창천 방향 선착장에서 ‘서지리~큰용방리~작은 용방리~가라골~서지리~공수리~개산 앞’으로 운행하고, 청도군은 운문천 방향 선착장에서 ‘순지리~먹방리~방음리~오진리’로 운행한다.
아버지와 찾던 할어버지 산소, 이제 사촌 형제가 함께
서로 도시락 챙기고, 모기퇴치제 챙기며
사람 키만큼 자란 잡초와 산모기 대비
“물속에 잠긴 내가 다닌 학교 어딘가 내 흔적도”
지난 7일 오전, 수공 관계자는 9시 30분 배편 예약 명단에 있는 박성현 씨의 이름을 확인했다. 성현 씨는 주소와 연락처 확보를 위한 개인정보 동의서를 작성하고, 승선 안전수칙 서약서에도 서명했다. 부산에서 온 사촌 형님 박효현(62) 씨 동의서도 대신 작성하려 했지만, 직접 작성·서명해야 한다는 수공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성현 씨는 형님을 불렀다. 동생의 부름에 검은색 비닐봉지를 손에 든 효현 씨도 서약서 작성을 마무리했다.
성현 씨가 형님 손에 들린 검정 비닐봉지에 눈짓을 하자 효현 씨는 “도시락”이라고 말했다. 성현 씨는 “나도 같이 먹을 것 챙겨왔는데”라고 말하며 미소를 보였고, 준비해 온 작은 스티커도 효현 씨 등에 붙였다. 효현 씨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성현 씨는 “모기퇴치제”라고 짧게 답했다. 사촌 형제는 형제 간의 우애를 나누며 배에 오를 준비를 완료했다.
성현 씨와 효현 씨는 운문댐으로 마을이 수몰되면서 조부모 산소가 있는 선산으로 가는 길이 막히자, 수공이 지원하는 배를 타고 매년 벌초를 하고 있다. 과거에는 두 사람의 아버지들이 오가던 길이었지만, 연로한 아버지들이 세상을 떠나거나, 거동이 힘들어지면서 이들이 바톤을 이어받았다. 성현 씨는 아버지가 어릴 때 돌아가셔서 얼굴도 뵌 적 없는 할아버지를 이렇게나마 만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성현 씨는 “배가 아니면 더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으니 이때에 맞춰서 가고 있다”며 “예전에는 자식들도 다같이 성묘 하러 와서 완전 대가족이었다. 아버지 남자 형제들만 5명이라 꽤 형제가 많았는데, 다 이런저런 사정이 있다 보니 이제는 이렇게 형님하고 나랑 둘이서 온다. 우리 애들에게까진 못 넘겨줄 거 같다. 예초기는커녕 낫도 못 쓰는 애들. 벌초는 다른 사람한테 시켜서 하게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1년에 딱 하루만 사람 발길이 닿는 곳을 가다 보니 벌초는 더 녹록치 않다. 성현 씨는 혹시나 해서 보유하고 있는 예초기에 추가로 한 대 더 대여해왔다. 성현 씨는 “잡초가 아주 무성하다. 사람 발이 안 닿는 곳이니까 더 그렇다. 잡초가 어느 정도냐면, 기자님 키 만큼 자라있다. 그리고 희안하게 산소 주변에 고사리가 많이 자라있다”고 설명했다.
세 살 차이에 불과하지만, 형님 효현 씨는 성현 씨보다 수몰된 마을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효현 씨는 “나는 여기서 고등학교까지 나왔다. 내가 다닌 학교들, 그러니까 지촌초등학교와 문명중학교, 고등학교가 모두 저기 물속에 있다”며 “군대를 다녀온 후 직장 때문에 부산으로 거주지를 옮겼고, 부모님들은 여기 대천리에 아직 살고 계신다. 나는 고향 잃은 실향민”이라고 말했다.
효현 씨는 취수탑 100m쯤 위로 가면 자신이 다녔던 학교가 있다면서 대략적인 위치를 손으로 가리켰다. 효현 씨는 “나뿐만 아니라 수몰 지역민들 마음이 다 똑같지 않을까. 고향 잃은 설움이 있다. 한 번이라도 더 가고 싶다. 지금은 물에 잠겼지만, 학교와 집을 오가며 마을에 다녔던 길 어딘가에 그때 내가 신은 고무신 가루가 남아있지 않을까. 내 흔적이 저곳에 조금이라도 있지 않을까”라며 깊이를 알 수 없는 운문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산소로
아버지 손 잡고, 대가족이 함께 성묘하던 옛일 떠올라
“나중엔 벌초가 없어지지 않을까”
이들과 같은 배에 탄 박경현(62) 씨도 가락골로 향한다고 했다. 대전에서 온 경현 씨는 “1년에 한 번 들어올 수 있는 날짜가 한정돼 있다 보니 자주 오고 싶어도 못 오고, 몇 년에 한 번 정도 오는 것 같다”며 “사촌 형님들은 먼저 들어가고, 나는 멀리 사니까 형님들이 배려해 줘서 이 시간대 배를 예약해 줬다”고 말했다.
경현 씨도 물에 잠긴 옛 고향을 회상하며, 수몰민의 애환에 공감했다. 그는 “댐 입구로부터 깊숙이 있는 곳인데, 이 동네는 옛날부터 물이 좋기로 유명한 오지여서 교통편도 불편했다. 박 씨들이 많이 살았고, 가락골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먼 친척이라 보면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잘 모르는 이들이 많아졌지만 이름이 다 비슷하다”고 말했다.
경현 씨는 “할아버지는 얼굴도 모르지만, 예전부터 아버지랑 같이 벌초를 다녔다. 말하자면 아버지의 고향이지만, 이렇게 제공된 배가 아니면 이 안으로 들어가기가 어려우니까 이게 바로 수몰민의 애환”이라고 설명했다.
수몰 이후 경현 씨 아버지 친지들은 대부분 운문댐 아래에 형성된 새로운 대천리로 이주했고, 밀양으로도 많이들 이주했다고 한다. 경현 씨는 “수몰민은 일종의 대구시 상수도 조성의 피해자 아닐까. 혜택은 없고, 선산이 있어도 관리를 못하니까”라며 “예전에는 성묘하러 가면 가족들 전체가 와서 단체로 도시락도 주문하고, 벌초하고 댐 아래에 어디가서 같이 시간을 보냈는데, 지금은 이렇게 단출해졌다. 나중엔 벌초 문화도 없어질 것 같다”고 전했다.
다음 배를 타고 가락골로 향한 박운현(51) 씨는 부산 해운대에서 벌초를 위해 왔다. 운현 씨는 “얼굴도 모르는 고조·증조 할아버지들이고, 수몰 전 마을 모습도 어릴 때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계속 아버지 따라 벌초에 왔으니까, 아버지 돌아가시고도 계속 벌초를 하러 온다”고 말했다.
공암리가 고향이라는 운현 씨도 “사촌들이 먼저 들어가서 벌초를 하고 있고, 뒤따라 들어가는 길”이라며 “그래도 수자원공사에서 배편이라도 마련해주니 이렇게 사촌들이랑 할아버지들 산소 벌초를 하며 인사도 하고, 고향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수공 운문권지사에 따르면 수몰민 벌초객 선박 운행 안내 현수막을 게시하고, 과거 이용자를 대상으로 목록을 만들어 문자메시지도 보낸다. 수몰민 벌초객 명단은 220명이다. 김덕근 운문권지사 관리부장은 “작년 이용객도 올해와 비슷한 100여 명”이라며 “매년 숫자가 줄어드는 것 같다. 연령대도 높아지고 있다. 오시는 분들은 거의 60~70대다. 예전에 오셨던 분은 돌아가시고 그 자녀가 오기도 하고 그렇다. 갈수록 줄어드는 게 당연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수몰민 벌초객 매년 줄어들고
올라가는 벌초객 연령대···대부분 60~70대
낮아진 운문호 수심 한눈에 확인
“내릴 때 집중 호우, 아니면 가뭄···기후변화 영향”
선착장에서 10여 분쯤 물길을 가르자 성현, 효현 두 사촌 형제가 탄 배가 가락골 우측에 도착했다. 이들의 선산은 좌측에 있어서 원래라면 좌측에 내려야 했지만, 수심이 80cm밖에 되지 않아 선박 접안이 불가능했다. 성현 씨는 “좌측까지 둘러 가야 하지만, 그래도 작년에는 수심이 더 낮아서 더 멀리 접안을 해야해서 애를 먹었다. 그땐 산소까지 30분을 걸어야 했다. 그때보단 그나마 낫다”면서 짐을 챙겨 배에서 내렸다.
김준화 수공 낙동강보관리단 소속 선장은 “여기 우측도 수심이 깊은 건 아니다. 최소 2m는 되어야 안정적으로 접안을 하는데 여기 선박 수심계를 보면 1.2m 밖에 되지 않는다”며 “배 엔진을 들고 겨우 접안을 했다. 최근 날이 많이 가물어서 그런 것 같다. 저기 보면 물이 들어왔다가 빠진 흔적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함께 배에 동승한 김덕근 관리부장은 “이번 여름에 비가 많이 안 와서 운문댐 수위가 현재 많이 낮아졌다. 비가 올 때 많이 오고, 안 내릴 때는 안 내리고 한다. 기후변화의 영향이라고 본다”며 “댐 수위는 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덧붙였다.
선착장에서 간단한 다과를 준비해 벌초객들을 맞이하던 박춘애(75) 운문면 정상리 부녀회장도 수몰 전 마을에 대한 추억을 회상했다. 그는 “상류인 지촌리 쪽이 물이 좋아서 애들 데리고 물놀이 가고 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어디쯤 버스 매표소가 있었고, 어디서 수영을 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그게 벌써 30~40년 전”이라면서 “수몰민들이 이곳을 떠날 때 아무 때나 선산을 오갈 수 있도록 다리를 놔달라는 요구도 했는데, 협상이 잘 안됐다. 매년 이렇게 제공해주는 배를 타고만 들어가야 해서 조상묘에 마음대로 찾아오기도 힘들어서 아쉽고 불만도 있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이어 “곳곳마다 사연 없는 마을이 없을 테지만 수몰이 돼서 더 그런 것 같다. 좀 있으면 벌초하는 것도 없어지지 않을까”라며 “수몰된 마을을 기억하는 사람도 더 적어질 것 같다. 매년 벌초객을 맞이하는데, 해가 지날수록 예전보다 찾는 사람이 줄어든다. 특히 젊은 사람 보기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환경부, 7월 기후대응댐 후보지 발표
“기후위기로 인한 극한 홍수와 가뭄에 대응”
청도 운문댐도 후보지에 포함
운문댐은 경북 청도군 운문면 대천리와 방지리, 순지리에 걸친 용수전용댐이다. 대구 동구·수성구·북구와 경북 청도군, 경산시, 영천시 일대에 용수를 공급한다. 저수용량은 1억 6,000만 톤(계획홍수위 기준)이다. 운문댐은 1985년 착공돼 1996년 완공됐고, 주민들은 91년부터 6년에 걸쳐 이주했다. 당시 대천리(221호), 순지리(113호), 방음리(63호), 오진리(35호), 서지리(85호), 공암리(74호), 지촌리(66호) 등 657호가 수몰됐다.
최근 정부가 기후위기로 인한 극한 홍수와 가뭄에 대응한다는 목표로 기후대응댐을 추진하고 있어서 실제로 기후대응댐 건설이 이어지면 이들 같은 수몰민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 7월 환경부는 기후대응댐 후보지 14곳을 발표했는데, 저수용량 660만 m2의 청도 운문댐도 포함됐다. 현재 운문댐 위에 추가로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환경부는 기후대응댐 추진 배경으로 “경기 파주(873mm), 충남 부여(809mm) 등에서는 올해 7월 한 달 강수량이 연 강수량의 절반을 초과했다. 짧은 시간에 매우 강한 비가 집중되는 강우의 패턴 특성을 보인다”며 “반대로 2022년 남부지방에는 기상관측 이래 가장 긴 227일 동안의 가뭄이 발생하는 등 생활용수 부족과 함께 국가산단의 공장 가동이 중단될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후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음에도, 근원적인 대응을 위한 다목적댐 건설은 지난 2010년 착공된 보현산 다목적댐 이후로 14년간 단 한 곳도 새롭게 추진되지 못했다”며 “홍수뿐 아니라 극한 가뭄과 장래 신규 물 수요를 감당하고, 국가 전략 산업 지원에 필요한 미래 물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새로운 물그릇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후대응댐은 다목적댐(3곳)·홍수조절댐(7곳)·용수전용댐(4곳)으로 나뉜다. 한강 권역에는 강원 양구군 수입천 다목적댐 등 4곳, 낙동강 권역은 경북 예천군 용두천 홍수조절댐 등 6곳, 금강 권역은 충남 청양군 지천 다목적댐 1곳, 영산강·섬진강 권역에는 전남 화순군 동복천 용수전용댐 등 3곳이다.
환경부는 댐 건설로 인한 상수원 규제를 추가하지 않거나 필요한 경우에도 최소화하고, 수몰로 인한 이주 가구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8월 지역 설명회, 공청회 등이 열렸고,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수자원의 조사·계획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18조에 따른 하천유역수자원관리계획에 댐 후보지를 반영할 예정이다. 이후 댐별로 기본구상, 타당성 조사, 기본계획 수립 등의 후속 절차 진행과 댐의 위치, 규모, 용도 등이 확정된다고 전했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