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 대구희망원 부랑인·장애인 강제수용 진실규명···독방감금·시설 ‘뺑뺑이’도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 결정
지역에선 "이제 출발···대구시 사과 있어야"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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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립희망원 부랑인(노숙인)·장애인 강제수용 문제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 조사에서 드러났다. 이번 조사에선 대구시가 직접 운영하던 70년대 사례부터,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위탁받아 운영한 80년대 이후 사례까지 확인됐다. 이번 조사는 희망원을 포함한 전국 4개 집단 수용시설 피해자들의 신청을 받아 당사자와 관련자 등을 조사한 결과다.

9일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이번 조사를 통해 4개 시설에서 피해자 13명이 확인됐다. 이중 희망원 강제수용 피해자는 4명이다. 이 외에도 신청을 하지 않아서 진실규명 대상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참고인 조사를 통해 강제수용 피해 정황이 확인된 피해자도 있다.

여러 시설에 의해 중복 피해를 입으면서 희망원에서도 강제수용 됐으나 희망원이 아닌 다른 시설 피해자로 집계된 이들도 있다. 이들 중에는 소위 ‘수용자 돌려막기’를 통해 시설 필요에 따라 부산 형제복지원, 대구 희망원, 대전 성지원 등 다른 시설에 옮겨 다닌 사례도 있다.

한 강제수용 피해자는 “부산 형제원에서 폭행을 많이 당해 몸이 시퍼렇게 된 사람들이 성혜원에서 한 달 있다가 대구 희망원으로 가고, 희망원에서 있다가 폭행을 심하게 당하면 인천으로 보내는 식으로 뺑뺑이를 돌렸다”고 증언했다.

희망원 강제수용 피해자 중 1명은 70년대에 강제수용된 피해자다. 해당 피해자는 이미 숨진 상황이지만, 고인의 가족이 진실규명을 신청하면서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그는 경북대 농대 2학년이던 75년 학생운동 서클 활동을 마치고 택시에 탔다가 파출소에 잡혀갔고, 일주일 가량을 희망원에서 강제수용 됐다. 희망원 입소 당시 구타를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30여 년간 정신분열증 증세를 보였다고 유족은 전했다.

다른 한 피해자 A(69, 가명) 씨는 98년에 희망원에 강제수용돼 2022년까지 24년간 생활한 장애인 피해자다. A 씨는 고향인 충청도에서 큰 누나와 함께 살다가 거리에서 한 남성이 갑자기 봉고차에 태워 희망원에 데려가면서 오랜 세월 시설 생활을 해야 했다. A 씨는 희망원 생활 중 장애인지역공동체를 통해 탈시설 기회를 접했고 지금은 자립생활을 하고 있다. 탈시설 후 그해 진실화해위를 찾아 피해를 진술하면서, 이번 진실규명 대상에 포함됐다.

A 씨는 진실화해위 조사 과정에서 희망원 입소 전 고향 마을, 부모, 형제 이름을 정확하게 진술했고 이를 확인한 장애인지역공동체 측은 A 씨 가족 찾기에 나섰다. 경찰서에서 조회 결과, A 씨의 누나와 나흘 만에 연락이 닿아 상봉했다.

▲6월 25일,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희망원 강제수용 피해자들이 모여 간담회를 열었다.

부랑인 시설이나 장애인 시설 강제수용 피해자들은 국가폭력 피해자로 인정되고 있다. 군사정권 시절 사회 정화를 명목으로 부랑인이나 장애인 등을 불법적으로 격리하고 감금했기 때문이다. 진실화해위도 70년대 중후반부터는 경범죄처벌법, 내무부 훈령 410호, 구걸행위자보호대책 등 정부 시책 차원의 제도적 기반 위에서 경찰, 공무원에 의한 강제수용, 회전문 입소, 폭행과 가혹행위, 독방감금, 강제노역 등 인권침해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진실화해위는 “이번 조사를 통해 국가의 부랑인 단속 정책 및 시설 운영 지원 전반에 대한 책임을 규명하는 다수의 자료를 최초로 입수했다”며 “정부는 사회정화라는 명목을 내세워 수시로 경찰‧공무원 합동 단속반에 의한 불법적 단속 및 강제수용을 지속했고, 민간 법인에 해당 시설들의 운영을 위탁하면서 감금‧폭행‧강제노역 등 여러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것을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진실화해위는 특히 희망원의 경우 입소자들에 대한 ‘신규동’ 독방 감금 사례가 확인됐다고도 설명했다. 이들은 국가에 대해 ▲피해자에 대한 공식 사과와 실질적 피해 회복 조치 ▲시설수용 인권침해 재발방지책 마련 ▲지속적 피해자 지원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또한 희망원 등 진실화해위가 진실규명한 다른 집단 수용시설 피해까지 아우르는 특별법 제정 등 종합적 피해 회복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한편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결정이 희망원 인권침해 진상규명의 시작점이 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희망원을 포함한 여러 시설의 강제수용 피해자인 손석주 영화숙재생원 피해생존자협의회 대표는 “수많은 피해자 중 극히 일부만 확인됐다. 진실화해위 활동 종료를 앞두고 있어서, 실체를 더 확인하기 위해 진실화해위 존속이 필요하다. 관련 입법을 통해 추가적인 사례 발굴도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손 대표에 따르면 대구에서도 조만간 희망원 강제수용 피해자 모임이 구성될 예정이다.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대구시립 시설에 의한 인권침해가 확인된 만큼 대구시 차원의 사과와 후속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근배 대구장차연 정책국장은 “대구시립 시설에서 일어난 일인 만큼 대구시장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대구시가 희망원 인권침해 사건 이후 발표한 혁신 대책에 따르면 2030년까지 희망원을 수용시설이 아닌 이용시설(통원시설)로 전환하기로 해, 구체적상을 제시하고, 희망원 피해자 사례 추가적 발굴과 피해자 지원을 위한 조례 제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구 희망원 전경. (사진=대구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