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뉴스민 기자 12년을 매조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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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기자가 됐어요?” 며칠 전 두 번째를 맞은 ‘대구경북커뮤니티저널리즘스쿨’ 참가자로부터 받은 질문이었습니다. 종종 받는 질문이지만, 대답하기는 늘 어려웠습니다. 왜 기자가 됐는지가 궁금한 건지, 어떤 준비를 해서 기자라는 명함을 갖게 됐는지가 궁금한 건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론사 입사 과정이 궁금한 후자의 질문이라면 저는 도움 줄 수 있는 경험이 별로 없습니다. 다만 전자라면 <뉴스민> 창간 과정부터 상세하게 답을 해주곤 했는데, 이번에는 고민 없이 짧게 답했습니다. “지역을 조금 다른 시선에서 기록하고 싶어서요.”

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2012년 창간부터 만 12년을 <뉴스민> 기자로 일했건만, 지역 사회를 들썩이게 한 기사는 남기지 못했습니다. 두고두고 읽히는 기사를 쓰지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12년을 내가 쓴 기사를 읽어 준 독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글로 전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기자는 결코 혼자 일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작은 사실을 탐색하는데도 취재원의 시간을 빼앗고, 전문 분야라면 며칠의 시간을 빼앗기도 했습니다. 질문하는 게 기자의 일이라지만, 누군가의 시간을 빼앗는데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특권을 누려왔습니다. 어떤 독자들은 시간을 내어 기사를 읽고, 자잘한 오타부터 보도 방향 수정, 후속 취재 제안도 해주었습니다. 그만두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지면에 하는 것도 특권이 아니냐는 생각도 잠깐 해봤습니다. 그래서 마무리 인사와 특권을 저울에 달아봤습니다. 결론은 12년 매조지 인사를 하는 쪽이 더 무거웠습니다. 독자들의 후원으로 운영하는 <뉴스민> 기자이기 때문입니다.

마흔이 되면 기자를 그만두겠다는 이야기를 종종 해왔습니다. 그게 개인과 매체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벌써 마흔이 됐습니다. 언론사 기자가 되어야겠다고 입사 준비를 한 적도 없는 데 기자가 된 건 스무 살 무렵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2년 동안 학교신문을 만들었고, 대학교에서 2년 동안 교지를 만들며 노동권과 인권이 보장된 사회를 만드는 데 대구경북 언론에도 역할이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기자로 20년 더 일할 수 있을지,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또, 아이들이 더 자라기 전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기자가 아니라 다른 일을 해야겠다는 욕심도 있었습니다. 근·현대 대구경북지역 사회운동사 연구입니다.

<뉴스민>은 6명이 일하는 작은 매체입니다. 언론사 이외 회사도 규모나 영향력이 커지려면 새로운 사람이 유입될 수 있어야 합니다. 더불어 처음부터 일을 해온 큰 영향력을 가진 개인에 좌우되지 않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운영될 수 있어야 가치도 확산되기 때문입니다. 공공성을 중시하는 언론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면에서 햇수로 13년 차를 맞이한 <뉴스민>은 중요한 시기입니다. 기존의 성과를 바탕으로 발전하는 게 아니라 과거를 부정하고 절연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만드는 ‘인식론적 단절’이 필요한 때라고 봤습니다. 저는 <뉴스민>에서 기자, 편집장, 대표를 맡으며 의사결정 과정은 물론 정보 접근에 있어서 많은 권력을 가졌습니다. 운영이 쉽지 않은 환경에서 고생한다는 격려들은 제가 가지고 있는 권력을 망각하게 만드는 독이기도 합니다.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이 일하는 언론사에는 있는 권력 통제, 감시 체계도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걸 넘어설 재주가 제겐 없었고, 다행히 하고 싶은 다른 일이 있을 때 그만두는 선택지가 눈앞에 있었습니다.

지난 12년간 기사를 살펴보면서 부끄러움과 부족함이 눈에 밟혔습니다. 조금만 더 깊게 취재했더라면, 다른 각도로 살펴보았더라면, 문장 하나하나에 조금 더 노력을 기울였더라면 문제를 드러내고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사회 변화를 위해 싸우는 이들에게 조금 더 힘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에 표현의 자유와 언론 자유와는 거리가 먼 김태규 씨가 임명되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말입니다. 김태규 씨는 2015년 박근혜 대통령 비판 전단을 제작 및 배포해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성수 씨에게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1심 판사였습니다. 2018년 항소심 재판부는 전단 제작·배포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같은 해 김태규 씨는 청도 송전탑 공사 반대 활동을 벌이던 시민운동가에게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징역 6개월을 판결하고 법정구속했습니다. 그런데 항소심에선 결국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그렇지만, 더 노력했더라도 뭔가를 바꿀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 자체가 오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부끄러움을 덮어봅니다. 복잡한 문제를 푸는 일은 순간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짧은 시간에 사건과 문제의 단면을 잘라 전하는 보도로 뒤바뀌는 것도 아닙니다. 기자는 드러낼 뿐이기 때문입니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분들이 건넨 이야기, 행동, 삶의 지혜를 귀동냥하는 기자로 12년을 보낸 덕분에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의 위험성, 경계를 넘어서며 연대하는 태도, 작은 지역을 들여다보고 살피는 일의 중요성 등을 알려준 취재원, 독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저도 <뉴스민>을 아끼는 한 사람의 독자가 되겠습니다.

얼마 전 뉴스민 박중엽 기자와 한겨레 김규현 기자에게 같은 날 같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만년필이었습니다. 기자가 아니더라도 어디에선가 기록하고 쓰라는 압력입니다. 얼마 전 ‘1970년대 구미지역 여성노동운동:여성노동자의 주체화 과정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석사 논문 계획서를 제출했습니다. 첫 관문 잘 넘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천용길 기자
droadb@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