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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김현정 감독의 ‘첫 번째 영화’로 오래도록 기억될 테다. 2000년대 초반의 기운과 배경을 담아낸 본 작업은, 그야말로 아날로그적인 정서로 가득 차 있다.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혹시나 하고 한구석에 남아 있던 미련을 어느덧 시류의 변화와 함께 사양길에 접어든 비디오 대여점의 운명과 교차시켜낸 영화는 보는 이들에게 애틋함과 아련함을 동시에 선사해 줄 테다.
<은하비디오>는 ‘외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홀로 변두리 비디오 대여점을 운영하는 ‘은하’는 폐업을 앞둔 상태다. 일정 기간 비디오를 판매하고, 나머지 분량은 수거업자에게 일괄 처분을 맡겼다. 오늘이 지나면 이제 ‘은하비디오’는 (혹시 있다면) 몇 명의 기억과 보관된 사진으로만 남을 테다. 주인공은 연체 목록을 뒤적거리다 헤어진 연인이 반납하지 않은 테이프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그에게 문자를 보낸다. 이윽고 답신이 온다. 오늘 중에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살짝 들떴지만 까먹었는지 겉치레였는지 그는 끝내 오지 않는다.
애초 은하에게 테이프 반납은 명분에 불과하긴 했다. 반납을 핑계로 그리운 사람을 만날 기회였지만, 그의 소박한 희망은 이뤄지지 않는다. 가게 문을 닫은 뒤에 집 앞까지 찾아가지만 만날 순 없었다. 그런 회한을 품은 채 다음날 시간과 추억이 깃든 비디오 대여점은 간판이 철거되고 작은 역사는 일단락된다. 그런 쓸쓸한 기억이 가득 깃든 영화다. 여기까지만 보면 <은하비디오>는 독특한 로맨스/멜로 계열의 소품으로 분류될 작업이다.
‘비디오 백일야화’가 저물어가던 영화 속 시간대
하지만 <은하비디오>에서 겉으로 드러낸 장르 구분과 별개로 ‘비디오 대여점’으로 상징되는 물리적 공간의 흥망성쇠를 중심에 놓고 본다면, 개별적 연애담과는 궤를 달리하는 어떤 사회적 흐름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그것도 꽤나 본격적으로다. 영화는 2010년대 중반에 공개되었지만, 작품 속에 담긴 시공간은 (최신 비디오 제목으로 추정할 때) 거의 10년 전 시간대를 담고 있다. 즉 200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삼았다. 영상저장매체의 주도권이 급격하게 변화를 겪던 시절이다.
은하의 대여점에 오랜만에 손님이 붐빈다. 대여를 위한 손님보다는 폐업을 앞두고 보유 비디오테이프를 판매한다는 홍보에 이끌려온 이들이 더 많다. 이들은 각자 소장하고 싶은 영화 테이프를 골라 구매한다. 주인공은 개당 2,000~3,000원대로 테이프 가격을 책정하고, 비닐 ‘봉다리’에 담아 값을 치른 테이프를 건넨다. 물론 그렇게 해도 수천 개의 비디오가 남는다. 폐업하는 대여점에서 일괄 재고를 인수해 신규 창업 대여점에 납품하는 걸 업으로 삼던 전문 수거업자와 흥정해 ‘은하’는 통으로 남은 재고를 판매한다. 그 가격은 불과 500만 원이다. 7,500개 정도 테이프가 남았으니 개당 700원도 안 되는 셈이다. 하지만 불꽃 튀기는 가격 흥정은 일어나지 않는다.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이게 시장가 적정가격이라는 데 별 이견이 없어 보인다.
1990년대 초중반, 동네마다 비디오 대여점이 골목에 들어서고, 체인화된 대형 대여점도 속속 출현한다. 목 좋은 데마다 그런 제대로 된 대여점들, ‘영화마을’ 같은 이름을 단 공간이 자리를 잡았고, 비디오는 물론 소설과 만화책도 취급하기 시작한다. 요즘엔 드물어졌지만, 한때 학교 앞이나 아파트 단지 등 일정 규모 수요가 보장되는 동네엔 반드시 들어서던 대여점 전성시대의 시작이다.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요로운 문화생활이 가능해지던 시절이다.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거나 시내 극장에 나가지 않고도 독서를 하고 영화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여점이 돈을 벌 수 있고, 집마다 비디오플레이어가 구비되었기에 가능한 변화였다.
그렇게 시장이 형성되고 유지될 조건과 궤를 함께한 것은 검열의 약화와 다양한 선택권의 보장이었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터무니없던 온갖 검열기준이 사회적 민주화와 함께 조금씩 약화되기 시작했다. 물론 1990년대 중반까지도 검열에 맞선 항거는 이어졌다. 민주화가 거저 이뤄진 게 아닌 것처럼 문화예술계의 투쟁이 끈질기게 이뤄졌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게 개방된 공간에 (‘방화’라 불리던) 한국상업영화와 할리우드 직접 배급 블록버스터 외에도 풍성한 선택지가 활짝 열렸다.
이미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소개되던 유럽과 3세계 영화들이 수입 개봉을 맞았고, 극장 개봉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저비용으로 제작 및 홍보가 가능해진 비디오 시장은 조금 더 모험적인 목록을 가능케 했다. 물론 제작사의 ‘끼워팔기’ 술책 덕분에 인기 작품 1개당 비인기 작품 2, 3개는 기본 따라오던 풍조도 한몫하긴 했지만.
여러 가지 지형 변화 덕분에 갑자기 선택지가 광활해졌다. 마치 동네 슈퍼에서 중대형 마트 진열장을 보는 것처럼 천지개벽한 셈이다. 말로만 듣던 고전 명작부터 중국영화, 일본영화, 프랑스영화, 심지어 러시아와 이란영화까지 간간이 볼 수 있게 됐다. 아직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인지라 정보를 찾기 위해 사람들은 여러 인쇄 매체를 구하러 나섰다. 대여점엔 업계에서 제작한 홍보회지도 여러 종 있었고, 영화전문잡지나 매체가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야말로 풍요롭고 좋았던 옛 시절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이 남다름을 자랑했고, 서로 간에 경쟁이 불붙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곳곳에서 영화퀴즈(’영퀴‘)방이 열리기 시작했다. 열대야가, 혹한의 추위 속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면 어두운 방에서 비디오를 틀었다. 그야말로 ‘백일야화’의 시대다.
비디오에서 DVD로, 그 다음은?
20세기 말을 전후해 아날로그 형태를 취하던 비디오테이프를 대체하려는 다양한 디지털 저장양식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미 LD(레이저 디스크) 같은 저장매체는 1990년대 초입부터 소개되었지만, 본격적인 대체주자는 역시 DVD였다. DVD는 컴퓨터에도 (이제는 거의 사장되다시피 한) ODD(대개 DVD-ROM으로 명명되던)를 통해 재생할 수 있었고, 아직 비디오와 DVD가 시장에서 경합하던 시절의 과도기적 산물로 ‘콤보’라 불리며 두 매체 모두 재생할 수 있던 기기가 등장해 선택지를 넓혀주기도 했다. 그렇게 CD와 유사한 형태를 가진 DVD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과도기엔 아주 잠깐 CD에 조금 향상된 비디오 수준 영상을 넣은 VCD가 유통되기도 했다)
1인 거주가 확산되면서 이것저것 오디오/비디오 시스템을 갖추기 힘들던 이들은 거주공간에 대형 LCD 모니터와 DVD 재생기능을 가진 PC, 그리고 약간의 음질 향상이 가능한 멀티채널 스피커 혹은 고사양 헤드폰을 갖추기 시작했다. DVD는 대여보다는 소장/수집에 특화된 매체였다. 비디오 대여점은 재빨리 변화된 양상에 맞춰나가려 했고, 책 대여점 병행과 함께 DVD 대여도 시작했다. 당시 DVD 제작사들은 그래서 대여점용으로 (비디오 테이프 케이스를 압축한 형태의) ‘민짜’ DVD와 소장용으로 좀 더 디자인에 신경을 쓴 DVD를 이중으로 출시하는 게 기본 구도가 되었다. 하지만 DVD는 비디오를 대체하는 시장을 형성하는 데엔 도달하지 못하고 만다.
그렇게 정체된 DVD 시장이지만 사용자의 사양 개선 요구는 높았고, 21세기 초반 몇 년에 걸쳐 DVD의 차세대 형식을 놓고 오랜 시간 두 진영이 대립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블루레이’ VS ‘HD-DVD’의 경합은 블루레이의 승리로 사실상 종결되었다. 하지만 그 다년간의 혼란 덕분에 블루레이도 결국 DVD 시장을 온전히 장악하지는 못했다. 차세대 포맷이 빨리 확정되지 않고 혼선을 겪는 데다, 디지털 형식이지만 물리적 저장매체에 머물던 DVD 확장 형식 대신에 물리적 제약을 초월한 FILE이 순식간에 ‘판’을 장악하고 만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전송 환경으로 하룻밤 내내 다운로드를 받지 않아도 되고, 영화 1편을 물고 뜯으며 맛보기보다는 여러 편을 빨리 보는 게 더 유행을 타면서 굳이 DVD의 강점이던 여러 형태의 부가 영상을 요구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DVD 시장은 기대와는 정반대로 빠르게 축소되었다. 이와 함께 물리적 저장매체를 대여하는 서비스도 사양길을 걸게 된다. 그 빈 자리는 온라인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서비스가 차지한다.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약간의 차이는 있다. 구매 방식의 변화다. 개별 영화를 건별로 일시/영구적으로 구매하는 게 아니라, 구독형 서비스가 주류가 된 것이다. 온라인 내에서 거대한 ‘규모의 경제’를 완성한 OTT 가입을 통한 월정액 구독 서비스가 성가시게 검색하고 일일이 구매하지 않아도 되는 극한의 편의성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그 결과 다운로드 서비스도 양지에선 사양길을 걷게 된다. 그 빈자리는 각자 취사 선택한 OTT가 제공하는 신작 공개일정 목록과 (웹하드 및 토렌트 등으로 구분된) 어둠의 경로를 통한 FILE 소장이라는 형태로 양분된다. (물론 전자가 압도적 주류이고 후자는 음지에 머물 운명이다) 그렇게 물리적 저장매체를 통한 ‘소장’은 잊힌 개념이 되어간다.
물론 일각에선 FILE 형태로 외장 하드를 가득 채우고 끊임없이 카테고리를 구분해가며 업그레이드하며 디지털 시대의 ‘소장’을 이어가는 중이다. 하지만 서재에 가득 꽂힌 책이나 비디오/DVD도 절대적으로 ‘인테리어’ 소품에 머물던 데 비해, 이런 디지털 ‘소장’은 더 현저히 이용률이 떨어지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애초 시각적으로 그 물질성이 밟힐 수밖에 없던 물리적 저장매체도 그러할 진데, 눈에 보이지 않는 디지털 파일 형태가 이보다 사정이 낫기를 기대하는 건 몽상에 가까운 일이다. 그렇게 어찌 보면 더없이 영상물을 소장 및 보관하기에 편리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아날로그 시대의 물리적 소유욕은 빠른 속도로 휘발되고 만다. 그 빈자리는 너무나 쉬워진 접속 및 재생이란 행위가 메운다.
어떻게 보면 과거에 수동적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였던) 극장을 찾아 산 넘고 물 건너 이동하던 행위가 생략된 채로 모두가 휴대용 전자기기에 극장으로 향하는 비밀 통로를 소지한 격이다. 하지만 너무 편해지면 그만큼 소중함과 간절함은 반비례하듯 휘발되고 만다. 양적으로, 외부 전시용으로 무수한 영상물을 시청하지만, 과거의 완결성보다는 파편화된 찰나적 체험에 가까운 게 현실이다. 그렇게 EASY COME, EASY GO 세태가 도래하던 시절에 <은하비디오>가 탄생한 것이다.
서정적 분위기 이면에 가려져 있던 시대적 향수의 발견
영화 속에서 은하의 가게를 찾는 이들의 찰나는 그 시절의 향수를 상기하는 데 모자람이 없다. 이제는 거장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로스엔젤레스에서 비디오 대여점 점원으로 일하면서 해박한 영화 상식으로 자기만의 추천작 목록을 공개하고, 수다를 떨어가며 단골 손님들에게 영화를 소개하던 일화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당시 대여점 곳곳에서 그런 비슷한 상황은 만국 공통이던 시절이다. 현재 독립예술영화 제작 및 유통에 종사하는 이들 중에도 대여점을 운영하거나 그곳에서 일했던 경력자가 적지 않다. ‘한국판’ 타란티노는 그렇게 도처에서 암약하고 있다.
거창하게 미래의 거장 탄생 설화처럼 들리지만, 사실 출발점은 지극히 소박한 것이다. 지금처럼 스마트 기기로 궁금한 걸 바로 검색할 수 있던 게 아니기에, 그런 아날로그적 전승을 통한 정보와 지식은 중요하게 취급되고 인정받을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 대구 독립영화의 시조새 중 한 명인 김홍완 감독이 능청을 부리며 멜 깁슨이 나온 전쟁영화 그 뭐지? 하며 너스레를 떨자 은하가 스무고개 넘듯 맞춰낸 것처럼, 그 시절엔 그런 지식인이 여기저기 출몰하곤 했다. 그들은 각자의 취향을 타인과 공유를 통해 가다듬고 정돈해 개인의 취향을 넘어 다양한 ‘목록’을 제공하는 작업을 일상적으로 수행했다. 그런 문화적 체험은 오늘날 영화를 사랑하고 관여하는 이들이라면 대개 하나쯤 가질 성질과 형태의 것들이다.
은하의 대여점에 테이프를 구매하러 온 손님 중 한 명은 비매품인 오승욱 감독의 2000년 데뷔작 <킬리만자로>를 발견하고 너무 좋아하는 영화라며 팔라고 억지를 한참 부린다. 하지만 이 영화는 주인장에게도 무척 애착이 가는 작품이기에, 은하는 그 손님의 끈덕진 요구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 짜증을 내며 나머지 골라낸 테이프만 구매하는 손님을 거의 마지막으로 ‘은하비디오’의 짧은 역사는 종막을 맞는다. 그리고 은하는 전 남자친구의 집으로 향한다. 그가 연체한 테이프를 핑계로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서다. 그 테이프는 아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비디오 대여점 직원이던 이의 대표작인 <펄프 픽션>이다. 그리고 은하는 끝내 <펄프 픽션>을 돌려받지 못한다. 비디오 시대의 명암이 묘하게 엇갈리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대여점을 가득 채우던 테이프와 기타 대여품목들은 일괄 매입되어 사라진다. 텅 빈 매장을 뒤로 한 채 은하 역시 얼마 안 되는, 하지만 홀로 옮기기엔 많은 이삿짐을 추려 트럭에 오른다. 그렇게 한 시대가 주인공에게도,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시대의 황혼과 함께 저물어간다. 이제 영화 속에서 향수를 자극하던 비디오테이프 되감기 장비도 잊힐 운명이다. 처분하지 않고 지켜낸 <킬리만자로> 테이프는 너무 많이 재생했는지 그 시절 용어대로라면 ‘씹히고’ 만다. 아날로그 재생장치 특성상 디지털 복제와 달리 많이 쓰면 쓸수록 조금씩, 마치 풍화되듯 닳고 마는 것이다. 돌돌돌 헤드를 돌려서 다시 맞출 수 있지만 열화되는 건 피할 수 없다. 영화에선 주인공의 미련이 더는 지속할 수 없다는 걸 표상하지만, 단순하게 물리적 결과론으로만 봐도 한 시대의 종언을 상징하는 자체로 기능한다.
‘출발’의 영화이자 어느 감독의 영화적 기원
물론 이후로도 끈질기게 좋아하는 영화를 소장하려는 욕망은 시대를 초월해 이어지는 중이다. <은하비디오> 속 정서 역시 여러 독립 단편영화에서 심심찮게 목격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기대감보다는 스산한 회한의 정서가 지배하는 것이 사실이다. <은하비디오>로부터 3년 후 공개된 이승주 감독의 그해 가장 주목을 받았던 단편영화 <시체들의 아침>이 그 대표적 사례일 테다. 동시대를 다루기에 <은하비디오>와는 약 10여 년의 시차를 둔 해당 작품에선 영화감독의 꿈을 접으려는 주인공이 소장하고 있던 DVD 수천 장을 처분하려는 중에 한정판 수입 DVD 세트를 구매하려는 공포영화 열혈팬 고등학생과 부대끼는 사연을 소개한다.
해당 작품은 <은하비디오>와 비슷한 맥락과 사연을 다루긴 하지만 세월의 흐름과 함께 저장매체가 받는 대접은 더 악화일로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과거엔 그래도 새 대여점 창업 때 상품으로 이용될 여지를 남기지만 (물론 끝물이라 처분하기 만만찮다는 업자의 우울한 분석이 따르지만 말이다) <시체들의 아침> 속 구매자는 아예 DVD를 재생용이 아니라 자신의 매장 손님들에게 인테리어 용도로 전시하는 것 외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저 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그는 내용물에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이는 요즘 카페 소품으로 예전처럼 북카페 분위기가 나도록 책을 중고로 구매하거나, (미용실에서 잡지를 대여하듯) 렌탈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벽지 디자인으로 때우는 것과 통하는 사고방식이다. 그야말로 분야를 초월하는 시대적 징후인 셈이다.
은하는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그는 굳이 자신을 급변하는 세태를 따라 변신하고자 도전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여전히 주인공은 자신의 영화적 기호를 고수하고, 어디론가 새로운 정착할 땅을 찾아 떠날지라도 그런 태도를 지키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비록 상업적으로 처참하게 실패한 <킬리만자로>이지만, 소수의 그 영화적 가치를 인지한 이들에겐 대중적 성공과 별개로 소중한 영화일 수 있다는 웅변을 소리 없는 사자후로 각인시켰던 작품 속 정서는 견고하고 비타협적이다. 이는 창작자 본인의 일관된 믿음일 것이다. 그렇게 <은하비디오>는 감독의 자전적 체험담과 취향을 초월한 어떤 영화적 태도의 출발점으로 자신의 온전한 자리를 점유한다.
<작품정보>
은하비디오 Eun-ha Video
2015 | 한국 | 드라마/로맨스/멜로 | 20분 | 전체관람가
감독/각본 김현정
주연 김예은(은하 역)
출연 서인수(처분업자 역), 김소연(유정 역), 윤주찬(남자손님 역)
제작 오성호
촬영 최창환
음악 김채은
미술 황영2015 충무로 단편,독립영화제 (청년,대학생 부문) 여자연기상(김예은)
2015 대구단편영화제 애플시네마 우수상
2015 대한민국국제청소년영화제 장려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