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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세대주택 소유권을 신탁회사에 넘기고도 본인이 소유자인 것처럼 속여 보증금 15억 원을 받아 가로챈 40대 남성 A 씨에게 징역 5년형이 선고됐다. 피해자들은 선고 직후 “가해임대인의 고의성을 인정하지 않아 검찰 구형 7년형보다 낮은 5년형을 선고한 재판부에 유감을 표명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23일 대구지방법원 형사1단독(재판장 박성인)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A 씨(47)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징역 7년을 구형했다. A 씨는 지난 2월부터 구속 수감된 채 재판을 받았다.
A 씨는 2018년 12월부터 2022년 9월까지 대구 북구에 무자본으로 다세대주택을 지은 뒤 채무 담보를 위해 소유권을 신탁사에 넘긴 뒤에도 본인이 소유자인 것처럼 17가구 39명과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 A 씨에게는 전세보증금 15억 5,000만 원가량을 편취한 혐의가 적용됐다. 임차인은 대부분 청년과 신혼부부들이다.
현행법상 부동산등기부등본에 신탁회사 소유로 등기된 부동산은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때 반드시 신탁회사와 우선수익자(금융기관) 등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세입자가 동의 절차를 진행할 수 없고, 신탁원부에 위탁자(집주인)의 대출 정보 등도 의무기재 사항이 아니라서 누락되어도 세입자가 알 길이 없다는 제도의 허점이 있다. (관련기사=대구 북구에서도 부동산 담보신탁 전세 피해···허술한 제도 피해 키워(‘23.05.30.))
재판부는 양형 이유를 “사건 범행이 불특정 다수 피해자를 상대로 상당한 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이뤄졌고 피해가 회복되지 않았다”면서도 “피고인에 확정적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들이 있어 참작했다”라고 밝혔다.
판결 직후 전세사기·깡통전세피해 대구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 대구피해자모임은 대구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A 씨 사기 피해 당사자이기도 한 정태운 대구대책위원장은 “검찰 구형이 7년 나왔음에도 재판부는 그보다 낮은 5년을 선고했다. 15억 원을 가로채 징역 5년을 선고 받았으면 1년 연봉이 3억 원인 셈”이라며 “다시는 피해자로 살고 싶지 않다. 지난 1년 매일을 어둠 속에 살며 당장이라도 집을 나가고 싶었다. 재판 결과가 만족스럽진 않지만 다음 재판부턴 피해자의 마음을 반영해 가해자를 엄벌하는 판결이 내려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피해자 변호를 맡은 김승진 변호사(법무법인 맑은뜻)도 “이 사건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임차인들은 각자 1건씩 총 13건, 주택인도소송의 피고이기도 하다. 결국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건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이라며 “특별법이 21대 국회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로 폐기됐는데, 이후 어떠한 개정안도 입법되지 않았다”며 신속한 입법을 촉구했다.
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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