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차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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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1일 대법원은 AGC화인테크노한국(아사히글라스)가 파견법을 위반했고, 노동자 22명을 직접 고용해야 하는 당사자라는 형사·민사 판결을 내렸다. 2015년 5월 29일 노동조합을 만들고, 6월 30일 해고 통지 문자를 받은 지 9년 만이었다. 승소 판결 직후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은 지회장을 들어 올려 헹가래를 했다. 조합원 22명이 서로 지치지 않도록 한 구심점, 지회장 차헌호였다.

▲2015년 아사히사내하청노동조합 결성 직후 차헌호

차헌호는 1973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스물 셋이던 1995년 한국합섬에 입사하면서 구미공단에 발을 디뎠다. 1년 후 1996년 구미공단에 새로 공장을 세운 금강화섬으로 이직했다. 1999년 금강화섬에 노동조합이 결성됐고, 대의원을 맡았다. 2003년 금강화섬노조 지도부 선거에 출마해 사무장으로 당선됐다. 그해 10월 회사의 폐업설이 흘러나왔고, 2004년 3월 공장은 문을 닫았다. 인수업체가 나타났고, 고용과 노동조합 승계를 요구하며 1년 7개월 동안 공장 점거 투쟁을 벌였다. 2005년 12월 화섬연맹 위원장 직권 조인으로 투쟁은 끝났고, 수배 생활을 하다 2006년 9월 29일 구속돼 9개월 간 옥살이를 했다.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2007년 6월 7일 석방됐다. 아사히 계열사에 입사했다가 3개월 만에 잘렸다. 지게차 면허증을 따고 제일모직에서 2년 일했다. 그러다가 2009년 9월 아사히글라스 하청업체인 지티에스에 입사했다. 2015년 5월 29일 아사히사내하청노동조합을 설립하기 전까지 차헌호도 노동조합 활동을 하지 않았다. 지티에스 소속 노동자 160여 명 가운데 138명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차헌호는 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6월 30일 자로 징계해고 통보를 받았고, 7월 1일 아사히글라스는 지티에스에 도급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2015년 7월 21일 파견법 위반, 부당해고, 부당노동행위로 노동청에 진정을 냈다. 그리고 구미시와 시민들을 찾아갔다. 외투기업의 부당한 행위를 바로잡아 달라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허울뿐이지만, 구미시가 노사민정협의회를 열어 의제로 올린 것도 아사히글라스 때문이었다. 2년이 지나도 기소 여부가 나오지 않자, 2017년 8월 대구검찰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그해 12월 불법파견 무혐의 결정이 나오자 항고했고, 2018년 12월에 기소를 촉구하며 대구검찰청 로비 점거 농성을 벌였다. 2019년 2월 13일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기소를 권고하면서 공이 4년 만에 법정으로 넘어갔다.

차헌호는 중요한 결정을 혼자 하지 않았다. 노동조합을 흔들 수 있는 제안은 조합원 모두와 공유했다. 2016년 4월 1일이었다. 하청업체 지티에스의 전 사장이 당시 조합원 49명에게 고소·고발 조치 중단과 위로금 지급 확인서를 우편으로 보냈다. 차헌호는 조합원들과 공유하고, 이 사실을 언론에도 공개했다. 2021년 2월 회사 쪽 법률대리인이 중재한 자리에서 소송 취하와 신규 채용 방식 복직 제안이 들어왔다. 차헌호 지회장을 제외한 복직 제안이 왔음을 조합원들과 공유했고, 조합원 토론을 거쳐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20대 구미공단 섬유업체에 발을 들였고, 30대 섬유산업의 하락세로 폐업과 해고를 겪고, 40대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결성하면서 다시 직장을 잃었던 차헌호는 50대에 다시 공장으로 돌아간다.

천용길 기자
droadb@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