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서 쿠팡 카플렉스 노동자 사망, 특고노동자 안전 문제 수면 위로

16:19
Voiced by Amazon Polly

지난 9일 새벽 5시 10분께 경북 경산 진량읍 평사리에서 택배배송을 하다 급류에 휩쓸린 40대 여성 노동자 A 씨가 사망했다. A 씨는 평사리 소하천 인근에서 차가 물에 잠기자 잠시 차량 밖으로 나와 서 있다가 급류에 휩쓸린 걸로 알려진다. A 씨는 자차로 택배를 배송하고 건당 수수료를 받는 ‘쿠팡 카플렉스’ 노동 중이었으며, 실종되기 전 동료에게 “비가 너무 와 배송을 못 하겠다”고 전화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 지역에는 전날 오후 5시부터 당일 오전 11시까지 180mm가 넘는 폭우가 내렸지만 쿠팡은 배송을 중단시키지 않았다. <한겨레21>에 따르면 A 씨는 급류에 휩쓸리기 2분 전 회사로 연락해 “비가 너무 많이 와 배달을 못 하겠다”는 의사를 현장 사진과 함께 전달했다. 직후 카플렉스 콜센터는 “그 현장은 철수하고 다른 곳부터 하라”고 안내했다.

쿠팡은 2022년부터 쿠팡CLS라는 자회사를 두고 택배기사와 위탁계약을 맺는 형태로 배송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여기에는 쿠팡친구(자회사 직고용), 퀵플렉스(자회사와 위탁계약을 맺은 대리점이 고용) 노동자들이 포함된다. 이 인력으로 소화하지 못하는 물량을 A 씨와 같은 ‘카플렉스’(일용직)가 처리한다.

카플렉스는 쿠팡 본사와 하루치 배송 계약을 맺는 특수고용 노동자다. 쿠팡 앱을 통해 지역, 날짜, 시간 등을 선택해 하루치 일감이 배정되면 자차로 배송하며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사회보험에 가입되지 않는다. 이들에겐 업무(배송)를 중단할 권리인 작업중지권도 없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조 설명에 따르면 카플렉스 노동자는 배송마감 시간을 넘길 경우 다음부터 배송량을 할당받지 못하는 패널티를 적용받는다. 사실상 해고와 다름없는 조치다. 실제 쿠팡이 제공하는 ‘(카)플렉스 배송 유의사항’에는 ‘입차&배송 완료 시간을 미 준수할 경우 배송 위탁 물량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라는 안내가 있다. 반면 ‘카플렉스 안전수칙’에 악천후 날씨 관련 안내는 없다.

▲쿠팡은 플렉스 배송 유의사항에서 입차&배송 완료 시간을 미 준수할 경우 배송 위탁 물량이 줄어들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전국택배노조)

17일 오후 정혜경 국회의원(진보당, 비례)과 전국택배노조는 국회 소통관에서 쿠팡의 로켓배송 시스템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조는 쿠팡에 상시적 구역회수(클렌징) 제도 폐지, 악천우 시 배송기사를 보호할 수 있는 안전메뉴얼 마련 등 로켓배송 제도 개선과 재발방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최근 사망한 고 정슬기 씨(퀵플렉스) 과로사 사건과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당연히 배송을 멈춰야 할 천재지변 상황에도 노동자를 배송업무로 내모는 쿠팡의 로켓배송 시스템이 낳은 참사”라고 비판했다.

원경욱 전국택배노조 대구경북지부장은 <뉴스민>에 “故 장덕준 님, 정슬기 님을 포함해 20명 넘는 쿠팡 노동자가 과로사로 돌아가셨다. 하지만 쿠팡에선 잘못을 인정하고 시스템을 개선하긴커녕 ‘쿠팡 노동자가 아니’라고 한다”며 “자연재해로 인한 변수가 많아지는 상황에서 무조건 서비스 지역을 확대할 게 아니라,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고 사과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