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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봉ㆍ박덕규ㆍ안재찬이 원년 멤버인 시운동 동인은 1980년 12월 6일, 제1집『시운동』(한국문학사, 1980)을 냈다. 이들은 현실비판과 사회학적 문법을 거부했기에 80년대 문학계의 주류였던 민중문학 진영의 비방과 조소를 면치 못했다. 민중문학의 독전관으로 통했던 평론가 채광석은 이들에게 “신비한 신통술”, “거세된 개별적 존재”, “두더쥐의 꿈”, “자폐증”, “꿈장이”, “외계인 내지 도망자”라는 딱지를 붙였고, 민중문학의 진정한 대타 역할을 수행했던 ‘문지’ 소속의 신예 평론가 정과리 또한 채광석과 교감하는 “몽상적 자아”, “죽음으로의 충동”, “안주의 본능적 충동” 등의 언사로 시운동을 내리깎았다. 하지만 1980년대에 태동했던 시운동은 이후의 한국 시단이 ‘잃어버린 고리’이자, 2000년 중반에 도래한 미래파보다 먼저 도착한 미래파였다.
박덕규의『아름다운 사냥』(문학과지성사, 1983)은 시운동 원년 동인의 첫 개인 시집이다. 이 시집의 중심에는 공(球)이 있다.「공」ㆍ「검은 공」ㆍ「멀리 더 멀리」ㆍ「탄력성」ㆍ「튐에 대하여」에는 공이나 공의 특성이 돌출한다. 또 공은 아니지만 “아내는 사과만 보면 굴리고 싶어지는 모양/ 아내는 사과만 보면/ 그처럼 통통 구르고 싶은 모양”이라는 첫 연으로 시작하는「사과」역시 공의 운동을 흉내냈다. 공은 본래 잘 튀고, 잘 구르고, 잘 날아다니도록 만들어졌다. 하지만 각종 구기 경기에서 보듯이 공은 아무리 튀고, 구르고, 날아다녀봤자 A팀과 B팀 사이를 왕복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공의 한(恨)이 아니고 무엇일까? “내 경쾌한/ 공의 운동. 실은/ 도약을 위해 근육을 모으는 때, 바로/ 그 순간, 이미 돌아올 것을 예감함. 태어나면서/ 죽음을 본 끔찍함./ 끔찍함!/ !!”(「튐에 대하여」)
이념과 투쟁의 시대였던 80년대 상황에서 개인은 흑과 백이라는 어느 진영에 속하거나, 기회주의자처럼 두 진영을 왕복할 수는 있지만, 흑도 백도 아닌 회색지대에 머물 수는 없었다. 공이 무한 왕복 속에 자신의 자유와 탄력을 잃어가듯이 개인도 진영 논리 사이에서 자유와 개성을 상실하기는 마찬가지다. 정현종 시인의「섬」을 패러디한 것으로 유명한「사이」는 그러한 상황에 대한 토로다. “사람들 사이에/ 사이가 있었다 그/ 사이에 있고 싶었다// 양편에서 돌이 날아왔다”
공이 튀어 달아나지 못하고 “반복 행위”(「공」)만 보여주거나 “사이에 있고 싶”어 했기에 평자들은 거기서 역사적 전망을 상실한 거세된 정념을 보았다. 하지만 그런 공에게도 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은 “더 멀리”(「멀리 더 멀리」ㆍ「물과 함께」), “어디론가 멀리멀리”(「순정은 물결처럼) 가고 싶었고, “인력 이전의 곳”(「낙하산」), “끝없는 진공 상태”(「나무」)에 다다르기를 바랐다. 거기에 “우리의 금”(「금」)이 있을 것이기에. 하지만, 이런 공식적인 설명은 시 읽기를 재미없게 한다. 시가 항상 실천을 지시하거나 해방의 지도를 그려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소중한 것은, 누구인가는「탄력성」 나오는 공에서 비로소 자신을 내리누르는 유무형의 억압을 느끼고, 자유를 꿈꾸기 시작하였을 거라는 사실이다.
표제작 「아름다운 사냥」은 포수와 새의 관계를 뒤집었다. 새는 포수의 총탄에 “못박히고 싶어” 포수의 머리 위를 배회한다. 박남수의「새 1」에 나오는 포수는 겨냥에 성공해봤자 고작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를 얻을 뿐이지만,「아름다운 사냥」에 나오는 포수는 예수를 연상시키는 “황금의 새”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새의 매저키스틱한 열망은 포수에 의해 거부된다(쏘지 않는다!). 이 시집에는 “나는 의처증”(「데탕트 ’80」)이라느니, “밤마다 나는/ 죽음을 당하고 새벽이면/ 빈 가슴으로 버려진다.”(「새벽 강도」)는 식의 자기 격하가 자주 나온다. 이 증상은 ‘사이 존재’의 부채의식이 병적으로 발현한 것이다.
시의 기본은 상징과 생략이다. 10연 23행으로 된「몽롱한 청준」에는 한 행 마다 “몽롱”이라는 단어가 한 번 이상씩 나와서 총 26번이나 등장한다. 가히 파천황이 아닌가. 새로운 이미지와 기본의 파괴는 닫힌 사회와 시학, 양 쪽에 숨구멍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