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국어 교과서가 말하기.듣기.쓰기인 적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2007년 교육과정을 개정하면서 듣기.말하기.쓰기로 변경됐다가, 2009년 국어와 국어활동으로 바뀌었다. 순서를 보면 ‘쓰기’는 말하기와 듣기 다음 차례인데, 기록에 남기는 일보다 수집하는 일을 중히 여긴 것이라 짐작해본다. 또, 앞 순위가 바뀐 것은 말하기 전에 듣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대구시청 앞에는 억울한 상황에 처한 이들이 종종 1인 시위를 한다. 시청사를 지나는 시장님, 관할 부서 공무원, 언론이 살펴봐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장님이 시정을 결정하기 전이나 직후 다시 한 번 재고해주길 바라는 이들이 종종 기자회견을 연다. 역시 시장님과 공무원, 언론이 살펴봐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는 어땠을까. 먼저 상소(上疏)가 있다. 그런데 상소는 한자로 써야 했으므로 사대부들의 전유물일 수밖에 없다. 신문고(申聞鼓)를 두드리기도 했다. 태종 때 설치된 신문고는 연산군 때 없어졌다가 영조 때 다시 설치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자신에 관한 일, 자손이 조상을 위하는 일, 아내가 남편을 위하는 일, 아우가 형을 위하는 일, 노비가 주인을 위하는 일에만 신문고를 사용하도록 제한됐다. 그러다보니 한양의 관리들만 주로 이용했다.
그렇다면 한자를 쓰지 못하는 백성들은 어떻게 억울함을 호소했을까? 임금이 지날만한 곳에서 꽹과리를 치는 격쟁(擊錚)과 관청 문에 글을 써서 붙이는 괘서(掛書)나 투서(投書) 등이 있었다. 상소와 달리 한글로 쓴 것도 많았던 걸 보면, 백성들이 활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연산군 10년(1504년) 폭정을 비판하는 한글 투서 사건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후 연산군은 ‘언문금압(諺文禁壓)’이란 이름으로 한글 사용 탄압에 나섰다.
재미있는 사실은 신문고 제도 폐지, 한글 사용 탄압이 모두 연산군 대에 있었다. 이를 보면 폭군은 자신에게 거슬리는 이야기는 듣기 싫어하고, 언로 차단에 나선다는 공통점이 있다.
얼마 전 권영진 대구시장님은 시청 앞 광장을 ‘집회시위 청정구역’으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전임 김범일 시장님이 광장 앞에 대형 화분을 설치하는 바람에 시민 통행과 1인 시위, 기자회견이 불편해졌다. 무엇보다 이를 취재하는 사진기자에게는 적잖은 장애물이었다. 불만스러웠지만, 참고 지냈던 찰나 권 시장님의 발표에 무릎을 탁 쳤다. 맑고 깨끗하게 한다는 청정(淸淨). 1인 시위와 기자회견 장소를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구나.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1인 시위와 기자회견을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시민과 소통을 강조하던 시장님의 처사로는 믿기 어려웠다. 이틀 만에 1인 시위와 기자회견 금지 구역 지정은 취소됐다. 시민단체의 항의 기자회견과 이 자리에 소통하러 나온 권 시장님의 면담 끝에 내려진 결론이었다. 역시 권 시장님은 그러실 분이 아니다. 대구시민원탁회의도 열고, 시민소통과도 신설한 분이다. 또, 시청 앞 1인 시위를 금지할 수 없다는 법률을 모를리도 없다. 표현의 자유를 중하게 여기는 헌법을 부정하는 분도 아니다. 무엇보다 듣기 싫어하고, 언로를 차단하는 연산군 같은 폭군일리 없다.
아마도 ‘집회시위(를 위한) 청정구역’을 지시했는데, 이를 ‘집회시위(로부터) 청정구역’으로 잘못 해석한 담당 공무원 잘못이리라. 청정(淸定:나라가 깨끗하게 다스려져서 세상이 태평함)을 고민하며 청정(聽政:정사에 관하여 신하가 아뢰는 말을 임금이 듣고 처리함)하는 시장님이라면 분명 오류를 바로잡아 ‘집회시위(를 위한) 청정구역’ 지정을 해 주실 것이다. 구미시청까지 전파한 대형화단으로 오염된 시청광장을 시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청정구역으로 지정해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