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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대구에서 태어난 홍영철은 1978년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와 같은 해 『문학사상』신인 발굴에 각각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가 등단을 한 해는 계명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던 해와 얼추 겹친다. 등단과 졸업을 동시에 마친 시인은 밥벌이를 찾아 서울로 가게 된다. 『작아지는 너에게』(문학과지성사,1982)는 등단 4년 만에 나온 첫 시집이다.
이 시집에서는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면 누구나 피해가기 어려웠던 정치ㆍ사회적 정의감이나 울분 또는 저항의 정념(pathos)을 찾아볼 수 없다. 시인이 자신의 시대에 대해 보인 반응은 “나는 늘 벽 속에 누워 있어요.”라는 첫 줄로 시작하는「우울증」이라는 시 제목에 함축되어 있다. 시집 전체를 통해 시인이 외부에 보였던 관심은 같은 시에 나오는 “오늘부터 뉴스위크지를 보기로 했어요.”라는 정도다. 1980년대의 식자층은 국내 언론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해외 언론에 나온 한국 기사를 통해 한국의 정치 정세를 분석했다. 『뉴스위크』지를 보기로 했다는 시인의 결심이 그런 목적에서 나온 것인지, 어학 실력을 늘리기 위해서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래의 구절들은 그것이 어느 쪽이든 이 시집에서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듯하다.
“내가 그의 집에 갔을 때 그곳 새들은 모두 죽어 있었고”(「풍경」), “어디에도 불빛은 보이지 않는다.”(「작아지는 너에게」), “이따금 열린 창틈으로 새털구름이 지나가고 지금 내 귀에는 어둠 소리만 가득해요.”(「바다 一部」), “저녁별이 조각조각 꽃으로 내리는/ 저문 들판에 서서/ 부러져 뒹구는 내 꿈을 본다.”(「겨울 들판에서」), “눈을 떠도, 구만리까지 보이도록 눈을 떠도/ 없는 희망이 보일 리 없지.”(「한낮에는」), “길 위에는 아무 것도 없다”(「언덕 위의 追想」)
욕정ㆍ분노ㆍ공포ㆍ기쁨ㆍ증오심ㆍ연민 같은 쾌락과 고통의 감정을 아우르는 정념은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 김수영의 시 「눈」에 빗대어 말하자면, 정념은 하다못해 기침이라도 하게 만든다. 그런 뜻에서 이 시인이 사로잡혀 있는 상실ㆍ결핍ㆍ낙담은 정념도 되지 못한 정념이다. 바뤼흐 스피노자의 코나투스(conatus: 자기 보존 역량) 개념을 빌리자면, 시인의 그것은 가산보다 감산을 지향한다.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작아지는 너에게」의 마지막 세 줄을 보면, 시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너는/ 왜 자꾸 작아지느냐./ 왜 자꾸만 작아지느냐.” 시인은「언덕 위의 追想」이라는 시에서 활동을 멈춘(숨긴) 자신의 정념을 바람이 잔뜩 들었지만, 튈 줄 모르는 공[球], 또는 빈 벌판에 버려진 공에 비유한다.
1980년대 전후에 등단한 시인들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폭압적인 정권을 마주하게 되었지만, 그 모두가 온전한 ‘80년대 시인’ 곧 민중시인이 된 것은 아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홍영철에게서 ‘80년대 시’에 흔전만전이었던 그 어떤 정념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 것은 그가 김춘수를 사숙(私淑)했기 때문이다. 이 시집의 제2부에 실려 있는 시들에서 김춘수가 끈질기게 천착했던 소재와 그 특유의 묘사법을 다시 감상할 수 있다.
이 시집의 제3부를 보면, 시인은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생활의 비애를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오, 이 낡고 진부한 우리들의 아침 식사/ 나는 또 매어달릴 준비를 한다.”(「매달려서」), “죽은 버스를 타고/ 죽은 거리에서 죽은 버스를 내리고/ 죽은 사람들과 악수를 한다./ 죽은 백화점에서 죽은 사물들을 사고/ 죽은 저녁을 먹고/ 죽은 잠을 잔다./ 죽은 꿈을 꿀 것이다.”(「시내 버스」) 똑같은 상실ㆍ결핍ㆍ낙담이지만 제3부에 드러난 코나투스는 ‘밟으면 지렁이도 꿈틀거린다’라고 할 때에 느껴지는 구체적 실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시인의 이런 실감이 정의감이나 울분 또는 저항으로 커가지는 않는다. 「나는 참 바보라예」와 함께, 이 시집에서 가장 홍영철다운 시라고 할 수 있는「겨울 꽃밭의 대화」를 보면, 시인은 정념과 대적한 스토아주의자에 가깝다. 김수영의 ‘풀’이 정념을 주체하지 못해 분열적으로 되어버렸다면 홍영철의 풀은 분열증도 우울증도 이겨낸 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