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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중반으로 들어서니 청첩장이 하나둘 쌓이고 마냥 어린 줄만 알았던 친구들이 가정을 꾸리고 엄마가 된다. 별나라 이야기였던 결혼과 출산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지만 야속하게도 그 현실을 알면 알수록 ‘내’ 결혼과 ‘내’ 출산은 점점 멀어져 간다. 2024년 결혼, 출산, 양육 인식 조사에 따르면 미혼여성 3명 중 1명이 결혼 생각이 없다고 응답하였고 출생률은 0.65명으로 끝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다. ‘아이 한 명 낳으면 1억 원’과 같은 정책이 거론되는 것만 보아도 확실히 비혼, 비출산은 이제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국가적 문제가 되고 있다는 걸 느낀다.
하지만 국가 소멸 위기에 처했다며 떠들썩한 것에 비해 나오는 정책은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단순 현금성 지원뿐이다. 신혼부부 대출 혜택, 출산지원금이 물론 결혼과 출산에 도움을 주겠지만 그게 근본적인 해결책과 확실한 동기부여가 될 순 없다. 왜냐하면, 나와 내 친구들이 처한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육아 휴직 쓴다는 건 승진 포기한다고 회사에 선언하는 거거든. 근데 남편은 이제 승진 앞두고 있지. 난 승진한다고 해도 남편이 버는 돈만큼 못 벌 텐데. 그냥 어쩔 수 없이 내가 일을 쉬어야 하는 거야. 이렇게 나처럼 출산 휴가부터 육아 휴직까지 쓰는 사람이 많아지니까 출산이 회사에서 민폐 취급 받나 봐.” 출산으로 끊긴 커리어를 고민하는 친구의 푸념, 이게 바로 현실이다.
최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서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절반이 육아휴직 제도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또 육아휴직이나 육아기 근로 시간 단축제도를 사용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 10명 중 2명 이상은 ‘육아휴직 제도 사용으로 불이익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불이익 유형에는 ‘직무 재배치 등 본인 의사에 반하는 인사 조처’와 ‘승진 제한 등 부당한 인사 조처’가 가장 많았다. 또한, 한국은 OECD 국가 중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높은 곳이다. OECD 평균인 12.1%보다 2배 이상 많은 31.2%가 차이 난다. 육아휴직도 제대로 쓸 수 없고 임금 불평등이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서 여성은 육아를, 남성은 일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여성은 독박 육아와 경단녀라는 악순환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결혼과 출산을 선택한 여성은 일과 가정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현실에서 여성들에게 ‘아기 낳으면 돈 준다.’는 말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즉, 저출생은 육아휴직 제도와 남녀 임금 격차에 대한 해결 없이 풀 수 없는 문제라는 거다. 하지만, 꾸준히 정부와 국회는 헛다리를 짚고 있다. 그 결과, 육아휴직 기간을 1년 6개월로 확대하는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과 출산휴가 10일 동안 휴가비 지원을 골자로 한 고용보험법 개정안, 임신기간 ‘근로시간 단축제도’ 사용 가능 시점을 32주 이후로 확대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포함된 ‘모성보호 3법’이 폐기될 위기에 놓여있다.
물론, 저출생 문제는 제도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사내 분위기부터 남녀평등 육아 참여 문화까지 탄탄하게 자리잡혀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노동, 성평등, 돌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알맞은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렇듯, 저출생 문제는 폭넓은 원인 분석과 다양한 해결책이 필요한 복잡한 문제이다. 단순히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손 안 대고 코 풀 생각을 고치고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현실적인 대책을 고민해야 할 때다.
장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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