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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때는 세상을 바꿔보겠다며 사회운동에 나선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운동가라고 지칭하는 사람은 줄어듭니다. 사회운동을 하는 운동가들은 오늘도 사람을 만나고, 제도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려고 애를 씁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운동권 특권 세력 청산은 시대정신”이라며 자신과 대립하는 정치인과 싸우기 위해 운동가들을 몽땅 폄훼하기도 합니다. 운동권이라는 어원은 독재정권 시기 민주화운동에 나선 학생운동가를 고립시키기 위해 만든 용어였습니다. 그들 중 대다수는 기득권으로 살아가지 않았고, 또 일부는 1987년 민주항쟁 이후 오늘날까지 사회운동을 이어가는 운동가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2020년대 사회운동을 시작한 운동가들도 있습니다. 2024년, <뉴스민>은 매달 1980년대 사회운동을 시작한 운동가,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운동가들의 삶과 더 나은 공동체를 바라는 운동가의 고민을 듣기로 했습니다.
단언컨대 대구지역 장애인운동은 노금호(42)의 등장 전후로 나눌 수 있다. 노금호가 뛰어난 운동가여서만은 아니다. 병아리와 어미닭이 알의 안과 밖에서 부리를 모아 동시에 껍질을 깨고나온다는 줄탁동시라는 사자성어처럼 노금호의 삶은 장애인 이동권, 활동지원 서비스 제도화, 탈시설 자립생활 제도화 운동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노금호의 삶을 촘촘하게 알고 싶다면 비마이너에 연재된 글([기획연재] 장애해방운동가 생애기록-전사들의 노래, 운동은 내 삶을 구할 수 있을까)을 읽어보는 게 좋다. 이 글은 운동가 노금호 개인이 마주한 고민과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로서 갖는 고민을 주로 담았다.
노금호는 어떻게 장애인운동을 시작했을까
노금호는 1982년 포항에서 태어났다. 네 살 때 근육이 퇴화하는 근이영양증 진단을 받았다. 기독교 신자였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경기도 포천의 한 기도원에서 생활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다시 포항으로 돌아왔다. 중학생이 되고는 걷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공부를 곧잘하던, 욕심많은 노금호는 부모님을 떠나고 싶었다. 입학할 때는 재수할 생각으로 2001년 대구대학교 유아특수교육과에 입학했다. 사학과, 북한학과를 가고 싶었던 노금호는 왜 대학생 시절부터 운동을 시작했을까. 운동을 시작한 결정적인 순간은 언제였는지 물었다.
“대학에 들어와 전국특수교육과학생회연합(전특련) 수련회 때 김형수라는 사람을 강연장에서 만났어요. 대구대 대명동 캠퍼스에서는 내가 제일 중증인 장애인이었어요. 그런데 형수 형은 뇌병변장애인이었어요. 무대에 앉기 전에는 보잘 것 없는 존재였는데, 형이 그런 말을 했어요. ‘장애인으로 살기 어려운 것은 장애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고 했을 때 후광이 비쳤어요. 내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만든 환경 때문에 힘든 것이라는 이야기였죠. 그때 뭔가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그 뒤로 그 양반을 쫓아다녔죠.”
1학년 2학기 경산캠퍼스로 옮기면서 기숙사에 들어갔다. 사회가 문제라는 관점의 전환과 함께 장애 학생이 많다는 대구대 캠퍼스에서 마주한 장면이 노금호를 흔들었다.
“기숙사 복도를 지나다가 쓰레기장 같은 느낌의 방을 봤어요. 하루 이틀이 지나도 똑같은 상황인 거예요. 룸메이트였던 과 동기형이랑 방이라도 치워주자고 들어갔어요. 비장애인 룸메이트가 도망가서 치워줄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장애학생 지원을 잘 한다는 학교에 왔는데 이 정도라니…그때부터 무장애대학교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활동을 본격적으로 했어요.”
대구대에 장애인권동아리 레츠(Let`s)를 만들고, ‘대구대학교 장애인학생 교육권확보를 위한 연대회의(대장교연)’도 결성해 교육권 확보를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 4학년이 된 2004년에는 사범대 학생회 장애인권부장을 맡았다. 2006년 2월 대학을 졸업한 노금호는 대구지역에서 장애인 운동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무렵 대학생이던 기자는 노금호를 처음 만났다. 스물다섯, 노금호는 동료들과 장애인단체를 만들 준비를 했다. 80~90년대 학생운동을 한 이들은 선배들과 함께 사회운동을 시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때 노금호는 앞서서 나가는 이가 없었음에도 앞으로 나갈 궁리를 했다.
“저는 자생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역사의 큰 흐름 안에서는 영향을 받았을 거예요. 김형수 형이 대학생교육권 운동을 했고, 그를 통해 운동을 시작한 거죠. 전특련 활동의 영향도 받았고요. 특수교육과 출신 선배들이 만든 초기 장애인지역공동체와 연결되기도 했어요. 대구DPI(대구장애인연맹)를 만들 때 공동발기인 중 한 명이었어요. 긴밀하거나 지원을 받지는 않았지만, 지역의 420장애인의날 행사에도 함께 하기도 했죠. 여러 운동단체와 만나고 같이 했지만 함께 뭔가를 도모하기 어렵다는 경험을 하게 됐죠.”
끊임없는 불화하는 노금호의 힘
대구에서 진보적 장애인운동을 고민하고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결성에 20년 가까운 시간을 보낸 이들 상당수는 노금호가 운동을 시작한 이후 대구대에 입학했다. 노금호보다 나이가 많지만 함께 장애인권동아리 레츠(Let`s)와 사람센터를 만든 김봉조를 포함해 이연희, 조민제, 김시형, 김선득, 전근배 등은 좋든 싫든 노금호와 영향을 주고받았다. 노금호는 끊임없이 이전 세대와 불화했다. 불화의 배경은 학생운동, 장애인운동 내부가 가진 한계이기도 했다.
“특수교육과에 입학해서 보니 장애를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삼는 봉사동아리가 많았어요. 장애인을 대상화시키는 거였죠. 또, 대학 선배들은 기합을 주기도 했어요. 나는 저런 선배가 되지 말아야지 생각했어요.”
특수교육과에서 벗어나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하는 친구들과 만나서도 노금호의 불화는 이어졌다. 노금호와 사범대 학생회 활동을 같이했던 이들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사회당 활동가들이었다.
“통일운동, 노동운동 현장도 다닌 경험은 좋았어요. 그런데 한 번은 한총련 간부가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통일되면 장애 문제도 모두 다 해결된다고 이야기 했어요. 아, 그때부터 NL(National Liberation 민족해방)과 선을 그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노금호가 NL 분파와만 불화했던 것은 아니다. 노금호는 사회당, 대학생사람연대, 전국학생행진 등 PD(People’s Democracy 민중민주) 분파와도 불화했다.
“사회당에서 진보적 장애운동을 함께 만들자고 했어요. 대학 졸업하고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만들고 활동을 시작했는데, 대구대에서는 사회당 활동가들이 고구마학교라는 이름으로 봉사모임을 확산시키는 거예요. 불만을 이야기 했는데, ‘조직하는 과정이다’, ‘단순히 시혜적인 장애를 대상화하는 식으로 가지 않는다’고 답을 했어요. 그런데 대학생사람연대가 만들어지고 봉사조직으로 가는 거예요. 5년 내내 학생운동을 하면서 그걸 없애자고 운동을 했는데…”
정치적 권리,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부재한 질서, 체제, 환경이라면 이것과 불화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며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노금호는 운동을 체화하고 있다. 혹자는 장애인과 접촉면을 넓히고,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도우면서 장애인의 권리를 옹호하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노금호는 시혜적 질서를 재생산하는 ‘운동’을 가만히 두는 게 탐탁지 않았던 탓이다. 200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학생운동 조직들은 세력이 줄면서 출혈적인 내부 경쟁을 벌였고, 장애운동은 많은 의제 중 하나일 뿐이었다.
“나의 꿈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당사자가 전 세계에 빨간 깃발을 흔들자는 거였어요. 그래서 다른 사회운동 조직과도 함께하는데 큰 거리낌이 없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장애인운동 조직이 흡수되거나 사라지는 걸 경험했죠. 학생행진 활동가들이 들어와서 대장교연을 휘젓는 것도 봤죠. 후배들에게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그때는 이미 내 선을 넘어선 일이 되어버려서 손을 털었어요.”
2006년,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만들다
학생운동을 더 하고 싶지 않았던 노금호는 지역에 기반을 갖고자 생각했다. 사람센터와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두 가지를 모두 만들겠다는 욕심을 가졌다. 지금보다는 몸이 말을 잘 들을 때였다. 스물다섯 패기는 넘쳤지만, 처음부터 벽에 부딪혔다. 단체를 만들어 회원을 모집하고 활동하려면 살 집이 필요했다. 노금호, 김봉조 두 사람이 살 집을 구하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
“사실 중구 남산동에 정착한 것은 집을 구하면서였어요. 중증장애인 둘이 살 집 구할 여건이 안 돼서 아버지에게 부탁했어요. 집 얻는 것만 도와 달라, 안 되면 공무원 시험치겠다고 했어요. 남산동 까치아파트에 들어왔죠. 마침 사회당 대구시당 사무실도 중구에 있었고, 한 켠에 사람센터 자리를 만들었어요.”
노금호는 당시 사람센터를 두고 “형식미가 아예 없었다”고 표현했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대구에서도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연대가 꾸려질 예정이었다. 문화제 행사로 끝나는 활동에 불만이었던 금호는 그때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 투쟁을 대구에서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서울에서 대중투쟁 하는 걸 보고 왔잖아요. 거리를 점거하고 정말 끝까지 싸우는 걸 보고 대구를 보니 문화제로 끝나는 게 아쉬웠죠. 때마침 장애인 당사자들이 서울시를 상대로 활동지원제도화 노숙 투쟁을 하였고, 그 투쟁의 성과로 서울시가 활동지원제도를 마련하기로 하였어요. 저를 포함한 많은 중증의 장애인이 밥을 먹고, 화장실를 가는 일상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이를 지원하는 지원인 제도가 절실하게 필요했어요. 그래서 이 제도를 대구에도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어요. 박경석, 남병준 동지가 서울에서 내려와서 설명회도 열었어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름으로 할 수는 없으니 중증장애인생존권연대를 만들었어요. 일단 5월 18일 집회는 합시다고 했죠. 동의하는 이들이 많지 않아서 학교 후배들, 서울에도 도와달라고 했어요. 집회를 시작하고, 판을 벌였죠.”
2006년 5월 18일 집회와 대구시 면담 직후 노금호와 중증장애인생존권확보연대는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를 요구하며 노숙 농성을 시작했다. 대구에서 중증장애인들이 요구를 내걸고 농성을 벌일 거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많지 않았다. 대구 내 다른 운동단체들도 강고한 장애인운동을 처음 목격한 것이 이때다.
“2004년 이동권연대에서 사회복지실습을 하면서 각종 농성, 집회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 일정을 참여하면서 투쟁을 기획하고 조직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 경험이 있었기에 대구시청 앞에 판을 펼치기만 한다면 투쟁을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5월 18일 투쟁 판을 펼치기까지 의견이 분분했지만 분명 장애인 당사자들은 활동지원제도가 너무나 절실히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었어요. 이 요구를 분노로 조직할 수 있다면 서울이 성공한 투쟁이 대구에서도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때는 제 신체 상황도 됐던 것 같아요. 바닥에 누워서 자거나, 휠체어에 앉아서 자거나 다 가능했기에 농성장은 혼자라도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어요. 투쟁판이 만들어지자 사람들이 박스떼기도 구해 오고, 화구도 들여오고, 심지어 노래방 기계도 가지고 왔어요. 그러면서 하나의 생활 공동체를 만들었어요. 5.18을, 광주를 경험 못 했지만 광주혁명 영상 속 광주시민들이 함께 군부탄압을 대항하고 서로 돕고 나눴던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저희는 절실했고, 절박했어요. 그 절실한 대중적인 요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43일간 노숙투쟁인 것 같아요.”
2006년 투쟁을 거치면서 활동보조서비스 시범 사업을 대구에도 도입하기로 합의를 끌어냈다. 여전히 가난했지만, 학창 시절 만났던 친구, 선배들의 후원으로 버텼다. 후원으로 2년을 버텼고, 2008년 독자적인 사무실을 갖추고, 국비 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공모사업과 활동지원서비스 중계기관도 운영하게 됐다. 이 부분에서 노금호는 늘 생각이 많아진다. 투쟁으로 이뤄낸 성과지만, 정부사업을 운동단체가 해야 하느냐는 문제 때문이다.
“공공부문 민영화, 시장화 문제의식은 있었죠. 하지만 이 흐름을 엎을 수는 없었고, 참여해서 문제점을 발굴하는 정책적인 역할을 하자고 생각했어요. 또, 장애인 당사자를 만날 수 있는 조직 사업의 일환이기도 했어요. 여전히 의미는 있는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고민이 많아요. 활동지원서비스 초기 수가는 활동지원사에게 당시 기준으로 최저임금보다 다소 높은 수준으로 인금을 지급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활동지원서비스 수가가 최저임금 인상 수준을 못 따라 가면서 겨우 최저임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일개 작은 단위에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사회서비스기관과 장애인운동단체 그 사이
정부 지원 사업이 가진 한계도 문제지만,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규모가 커지면서 사회서비스기관과 운동단체로서의 성격 사이에서 적절한 위치를 찾는 것도 고민이다. 결국, 운동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센터는 활동가를 만들고 활동 기반을 만드는 도구였습니다. 그런데 현재 사람센터에 들어오는 사람을 활동가라고 붙이기에는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습니다. 스스로 정의한 용어는 상근자예요. 그렇다고 직원이라는 표현은 입에 잘 안 붙어요. 운동가로서 고민도 필요하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고 있는 사회서비스 중계기관이기도 하잖아요. 장애인 자립생활 실현을 지원하는 일을 한다면 당사자 의견을 경청하고, 당사자 입장에서 고민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너무나 중요합니다. 제도와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 거리에 팔뚝질과 급진적인 싸움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복지 전달 체계 역할도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센터 상근자들이 어떻게 인식할지 모르지만, 노금호는 자신이 겪었던 불화를 잊지 않고 있다. 위계적이지 않은 곳으로, 담당자들이 주도성을 갖고 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때문에 교육도 계속 배치한다. 사회운동가가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장애인 당사자를 지원하는 지원자로써 가져야 하는 태도와 역량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중증장애인 당사자 운동가를 조직하는 것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분노의 원인을 찾고 의지를 모아야 하는데 당사자를 조직하기가 점점 어려워진 것 같아요. 최근 집회에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많이 나오거든요. 상대적으로 지원이 더 열악하니까 분노가 더 커지는 거죠. 신체장애인은 지금의 정책과 제도로 여전히 커버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어느 정도 조건이 나아지면서 급진적인 운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당사자들의 조직이 잘 이뤄지지 않는 측면도 있어요. 물론, 최근 장애인 당사자들이 스스로를 부정적인 존재로 인식하여 장애를 감추려고 하는 삶의 태도에서 본인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드러내기를 시작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여전히 구조적으로 장애인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사회를 근본의 사회를 변화 시키기 위해서 분노를 조직하고 연대하여 싸워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지난 2023년 4월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상근활동가를 뽑았다. 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지 않고 온전하게 진보적 장애인 운동을 고민하는 활동가를 두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제 1년을 갓 넘긴 대구장차연 박동균 활동가는 노금호의 표현대로라면 ‘순수한 운동체 조직의 첫 상근활동가’다. 새로운 활동가와 만남은 어땠는지 물었다.
“부담이 컸어요. 우리 조직(사람센터)의 정체성은 사회서비스를 하는 기관이면서 운동성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잖아요. 자립생활센터를 처음 만들 때는 운동을 위한 도구였는데, 도구가 운동을 압도하는 상황이 있어요. 장차연 활동가가 운동을 하는데 있어 벽을 느끼지는 않을까 하는 거죠. 그리고 활동가의 월급도 책임져야 하니까요. 장차연 활동가의 연차가 쌓이면 자립생활센터에 활동하는 사람만큼의 급여를 만들어줘야 되고요. 하지만 박동균 활동가와 조직에 들어오고 나서 2달 정도 활동을 같이 하면서 잘 했다고 생각했어요. 달성군청을 상대로 시설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농성같은 수위 높은 투쟁을 해야 하는데 주저함이 있었습니다. 그때 동균에게 물었어요. 대구장차연 구성원 대다수가 그간 투쟁의 역사 속에서서 투쟁의 피로감이 있어서 진행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고요. 동균이 ‘그냥 넘어가도 되겠습니까?’, ‘본인이 책임지고 농성장 사수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동균이 장차연에 농성 투쟁을 제안을 했습니다. 그리고 동균이 결의한대로 농성장 당번이 빌 때마다 동균이 다 채웠어요.”
지난해 6월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는 달성군의 한 시설에서 벌어진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행정적인 대응을 강력하게 할 것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시설장 교체라는 합의안을 이끌어내면서 50여 일 동안의 농성을 마무리했다. 진보적 장애인 운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활동가의 의지와 노력은 노금호가 운동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운동이 나를 구원할 수 있을까
개인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
노금호는 전신 근육이 점점 약화되는 희귀질환 척수성근위축증(SMA, Spinal Muscular Atrophy)을 겪고 있다. 2016년 최초 치료제인 스핀라자가 개발돼 2019년부터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 보험 급여적용 기준에는 인공호흡기를 사용하고 있거나 만 3세 이전에 진단 기록이 없는 환자는 제외된다. 스핀라자는 보통 1년에 3~4번 주사를 맞아야 하는 치료제로, 주사 1회당 비용은 약 9,235만 원이고, 급여 적용을 받아도 건강보험 부담금은 첫 해 투약때 598만 원에서 매년 올라 지금은 1,050만 원이다. 노금호는 스핀라자에 대한 급여 적용 기준 확대 투쟁을 2022년부터 벌여왔고, 2023년 10월부터 기준이 확대됐다.
함께 활동하는 전근배의 말처럼 ‘장애운동에서 본인의 신체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건강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던 문화’를 흔든 것도 노금호였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노금호를 장애인운동으로 당긴 명제 ‘내가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문제’와 치료를 요구하는 것이 마치 충돌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장애운동은 손상에 대한 의료적 치료 보다 손상으로 인한 사회적 차별 해소와 지원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고민이 컸어요. 동균도 인터뷰에서 점점 시력을 잃어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 했듯이, 진행성 장애인은 사고로 장애를 얻게 된 비장애인이 받는 심리적 충격을 질환의 진행 과정에서 여러 번 겪게 되요. 오른손과 오른팔이 조금은 자유웠는데 몇해 전부터 힘이 빠지고 있다고 느끼게 됐죠. 아무리 열심히 투쟁해서 제도를 만들어도 내 몸의 진행 속도에 맞는 사회적 차별 해소와 제도적인 변화는 따라오지 못하고 이전에 느끼지 못한 통증도 생기니 위축되고 절망감이 수시로 다가 오더라고요. 그리고 코로나 시기에 한국사회와 정부가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를 격리하고 배제하며 포기하는 모습에서 존엄을 지키며 생존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 치료라도 해서 진행을 늦춰야 현재 조건에서 사회적 존재로서 노금호가 유지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죠. 어릴 때 첫 근이영양증 진단을 받을 때 병원에서 스무 살을 못 넘긴다고 들었고, 스스로도 서른 살을 못 넘기겠거니 했는데 그때로 치면 지금은 장수한 거긴 하죠. 여전히 치료라기보다는 내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인데, 치료에 목매다는 것처럼 하는 게 맞는 것인가 생각했죠. 아직 우리 사회가 현재의 나도 수용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나 스스로가 에너지나 역동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야 하니까요.”
치료가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제도를 지적하는 것도 운동이 아니겠냐고 슬쩍 의견을 보탰다. 그럼에도 노금호가 겪을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불안하고, 때때로는 절망적인 순간을 마주하는 노금호가 운동을 지속하는 힘의 원천이 궁금했다. 노금호는 답했다.
“운동이 우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냐는 물음은 여전히 있어요. 그때마다 운동이 우리를 구제해야 한다, (강력한 어조로) 해야만 한다,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다짐해요. 시시때때로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하는 건, 활동지원서비스 투쟁, 이동권 투쟁, 탈시설 투쟁, 최근 치료제 건강보험 급여 적용 투쟁 할 때도 거대한 차별과 배제의 벽 앞에서도 절망할 때마다 기꺼이 함께 싸우자고 싸우겠다는 연대의 손을 내민 사람들 덕분이었어요. 물론 함께 연대의 손을 내민 사람들도 제가 가진 고통과 정말감을 모두 공감하지 못합니다. 같은 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도 여건이 다를 때는 공감하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매번 제가 가진 고통과 고민을 설명하기 어렵고, 반복적으로 같은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에 지치기도 해요. 그럼에도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적어도 운동은 소외되고 절망하는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들으려는 자세는 갖고 있습니다.”
천용길 기자
droadb@newsmi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