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초점] 연애, ‘인간 구실’의 상징 /이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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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고도 연애 못 하면 그건 그 사람한테 문제가 있는 거지. 이런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리곤 한다. 어린 나이에는 학업이나 취업 준비 등과 같이 연애를 하지 못할 이유가 있지만, 그 후로는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있어 ‘연애하기 좋은데’ 왜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때로는 학생 때 연애를 했다고 하면 바쁜 와중에도 할 건 다 했다며 치켜세워주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연애를 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못’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결국 그 사람 자체에 하자가 있다는 의미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사랑이라는 낭만보다는 시장 원리가 앞서고 있다. 예컨대 결혼정보회사는 개인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점수를 매긴다. 흔히 스펙이라 불리는 학력이나 직업 같은 것들은 물론 집안 재산이나 키, 탈모 여부, 집안 분위기 등 평가하기 어려운 것마저 수치화하여 등급을 산정한다. 일명 N포 세대라며 청년들이 결혼이나 연애, 출산 등을 포기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연애’라는, 타인과 사랑이나 친밀감을 나누는 행위 자체가 치열한 경쟁의 영역이 되고 자본이 되는 상황에 피로감과 심지어 좌절감까지 느끼기 때문이다.

‘연애’가 스펙이 되었다. 그렇기에 연애를 하지 않으면 사람 구실 못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1910~1920년대 자유연애가 시작되고, 1997년 IMF구제금융사태를 기점으로 신자유주의가 전면화되면서 ‘자유연애’는 일종의 자유연애‘시장’이 되었다. 연애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돈을 버는 사람들과 연애를 통해 자신의 탁월함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그 반대로 연애를 하지 못해 사회경제적으로 하자가 있다는 관점이 탄생했다. 싱글과 커플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 아래에서 혼자는 초라하기에, 싱글은 자신이 초라하지 않다는 것을 늘 역설해야 하고, 그렇게 역설하더라도 ‘부러워서 그러지?’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러한 연애 불가능 상황 속에 모순적이게도 연애 프로그램은 호황을 이루고 있다. 하트시그널(채널A), 커플 팰리스(Mnet), 환승연애(티빙), 연애남매(웨이브) 등 TV나 OTT 너나 할 것 없이 수많은 연애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온다. 연애와 결혼이 기정사실화된 채 스토리가 전개되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드라마도 인기를 끌고 있다. 노골적으로 연애에 대한 욕구를 드러내는데, 이는 ‘대리만족’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타인이 연애에 도전하고 성공해 내는 모습을 보면서, 경쟁으로 인해 친밀성의 영역을 포기한 청년들이 연애 예능이나 로맨틱코미디 드라마 등을 통해 친밀성을 대신 만족하는 것이다.

최근 흥미로운 설문 조사를 봤다. 한 데이트 컨설팅 기업이 실시한 설문조사였는데, 2030 세대의 57.3%가 연애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연애를 하지 않는 비율 또한 응답자의 75.8%였다. 그 이유로는 경제적 원인이 1위였지만, 그 다음 이유가 바로 ‘별 다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 과거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설문조사(2020 한국 1인가구 보고서)가 떠오른다. 결혼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다수의 여성이 ‘그냥’이라 말한 것이다. ‘그냥’과 ‘별 다른 이유가 없다’는 것에는 도리어 수많은 이유가 있다. 연애라는 스펙 경쟁에서 벗어나 타인과 또 다른 형태로 친밀성을 쌓고 상호작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성을 인정해줄 때, 우리는 더 많은 사람과 어울리고 함께 하는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이현수
mglaqh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