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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총선이 ‘대구경북 국민의힘 석권’으로 끝났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경북 경산)와 도태우 변호사(대구 중구·남구)의 낙선으로 ‘친박의 독자세력화’가 좌절되었다는 것 이외에 ‘유일 정당 독점’의 현실을 그대로 확인했다. 물론 소선거구제 때문에 국민의힘이 지역민 지지에 비해 많은 의석을 차지한 측면은 있지만, 국민의힘이 아닌 정당 소속 의원이 나온 2016년 총선이나 그러한 의원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은 있었던 여느 총선과는 크게 다른 결과이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대구경북 지역에서 압승한 국민의힘과 대패한 야당이 전국적으로 거둔 성적표다. 국민의힘은 사상 초유의 ‘여당 참패’, 그것도 정권 전반기에 참패를 당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권 전반기의 야당으로서는 최초로 압승했다. 국민의힘의 대구경북 전승은 전국적 대패 앞에 무색해졌고, 당이 대승하는 동안에도 거둔 게 없는 대구경북 민주당은 초라해졌다. 다른 군소 야당의 경우도 대구경북에서 유의미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2년 내내 중도 확장에 실패했다. 국민의힘에 지지 기반이 없던 윤석열 대통령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대구경북을 찾았다. 심지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기대기까지 했다. 상대적으로 젊은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이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나서도 국민의힘은 달라지지 않았다. 한동훈 비대위의 민생경제 정책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를 세운다)와 그리 나을 바 없다. ’86운동권 청산론‘과 ’이재명-조국 심판론‘은 고정 지지층을 고무하고 영남 지역에 높은 성을 쌓아올리는 데만 도움이 되었지, 중부권 무당층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종합상황실에는 대구경북 인사들이 즐비했다. 이만희 의원(경북 영천·청도)이 종합상황실장을 맡았고, 홍석준 의원(대구 달서갑)과 정희용 의원(경북 고령·성주·칠곡)은 부실장을 맡았다. 결과를 놓고 보면 이들은 비영남권 민심에 무지했다. 대구경북에서의 자신감을 토대로 국민의힘의 변모를 이끌 실력이 못 되었다. 윤 대통령, 한 전 장관 등 아웃사이더 출신들은 영남 지지층에 더욱 골몰하고, 영남 출신 인사들도 여유를 갖고 확장을 모색하지 못하는 것이 국민의힘이다.
민주당은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 지지층이 두터워지는 동안에도 대구경북에서의 확장에 실패했다. 수도권에서 정치를 하다 돌아온 김부겸 전 국무총리와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낸 홍의락, 김현권 전 의원이라도 없었으면 더욱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민주당 소속 지방의원들은 조직화에 성공하기는커녕 온갖 사건사고를 일으켰다. 문재인 정부 들어 민주당이 한창 기세를 올리던 동안에도 대구경북 민주당의 내리막은 확실해보였다.
이 가운데 지역 민주당 지지층 일각은 얕은 전통과 부실한 풀뿌리 때문인지 더더욱 중앙 담론으로 빠져들었다. 2022년 대선의 후보를 뽑는 민주당 경선에서, 추미애 후보가 대구 지역에서 선전한 것도 이와 같은 결과다. 팟캐스트와 유튜브를 따르는 ‘깨시민’, ‘대깨문’, ‘개딸’류의 강성 지지층의 비중이 커졌다. 그런 한편으로 민주당을 지지할 수 있지만 이런 류의 지지층과는 구분되는 사람들은 부동층으로 새면서 평소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역 지지율을 떨어트렸다. 이번 선거 막판의 김준혁-양문석 논란은 안 그래도 취약한 민주당 지지층의 연결고리들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국민의힘은 두터운 지역 지지층 믿고 개혁적 보수로 뻗어나가고
민주당과 진보정당은 ‘나 아니면 없다’ 자신감 갖고 원칙 세워야
이번 선거가 지역에 주는 교훈은 간명하다. 국민의힘은 이대로면 개혁적 보수가 되지 못한다. 윤 대통령-한 전 장관 같은 아웃사이더 출신도, 흐름에 이끌려가던 수도권 인사들도 국민의힘을 바꿔놓을 수 없다. 결국 국민의힘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지지층이 튼튼한 대구경북에서 당선된 인물들이다. 제 한 몸의 재선이 목표인 협소한 정치인이라면 모를까, 당의 체질을 바꾸고 자신도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도약하려면, 대구경북 정치인이 개혁 보수의 선봉에 나서야 한다.
민주당은 현재 당의 주류 흐름으로는 대구경북 지역에서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안 그래도 지역사회에서 국민의힘을 지지하지 않는 주민들은 ‘선거를 해봤자 소용 없더라’고 낙담을 거듭했다. 이 가운데 민주당에서 벌어지는 ‘내로남불’ 논란이나 사법리스크는 주변의 무당층을 설득하고 국민의힘 지지층의 공세를 이겨내는 데 지장이 된다. 예전 더 불리하던 시절에도 지지자들이 용기있게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할 수 있었던 힘은 명분과 원칙에서 나왔다.
지역 정치인과 정당에게 요구한다. 국민의힘 인사들은 ‘두터운 지역 지지층이 있으니 이를 토대로 더 뻗어나간다’는 각오로, 지난 개발독재-신자유주의 시대를 뛰어넘는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의 인사들은 ‘나 아니면 이 지역을 맡을 사람이 없고, 당은 나를 버릴 자격이 없다’는 자신감으로 진보의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한다. 정치인과 정당 자신, 지역민, 국가와 세계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것 말고 다른 길은 없다.
한국 정치의 원칙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는 대구경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시작될 수 있다. 시작될 것이다. 시작된다.
김수민 전문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