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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에 하와이의 마우나로아 화산에서 측정된 이산화탄소는 400ppm이었습니다.”
“좀 더 알기 쉽게 말해서,
당신이 의사고, 저희가 환자라고 할 때 어느 정도 가망이 있는 건가요?
천년? 이천년?”“미래에 지구적 기후재앙으로 죽을 사람이 이미 태어난 상황입니다.”
무료하고 어려운 기후 뉴스를 전달하던 앵커가 입을 삐죽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인터뷰를 지켜보던 스탭의 얼굴도 찌푸려진다. 무슨 소리야? 앵커가 다시 묻는다. “자세히 설명해 주신다면요?”
“가장 최근 대기 중에 이렇게 이산화탄소가 많았을 때 해수면이 지금보다 2.4미터 높았습니다. 두 가지를 알아야 하는데, 세계 인구의 절반은 해안선에서 200km 이내에 살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은 물에서 숨을 못 쉰다는 것입니다.”
점입가경이다. 이것도 유머라고 한 건가 싶어진다. 앵커는 다시 묻는다. “상황이 위급하다는 건가요?”, 상대는 다시 유머를 곁들여 절망을 설파한다. “꼭 그렇지도 않아요. 예를 들어 집이 불타고 있다면, 상황이 위급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미 다 타버렸어요. 재만 남은 상태죠.”
가상의 미국 방송국 뉴스룸의 일상을 보여주는 드라마 <뉴스룸>의 한 장면을 글로 옮겼다. 좋아하는 드라마고, 인상 깊게 본 장면 중 하나다. 드라마의 주인공이자 투철한 언론관을 가진 앵커 윌 매커보이가 미국 환경보호청 책임자와 이산화탄소 배출량 분석 보고서를 두고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인터뷰이가 하필이면 ‘종말론자’였나 싶을 정도로 비관적인 이야기만 쏟아냈다.
비관의 반대편에서 윌은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다. 윌은 “사람들에게 경보가 아닌 정보를 전달하고 싶은데요. 좀 희망적인 이야긴 없을까요?”하고 마지막으로 묻는다. 종말론자는 답한다. “우리가 이 문제를 직시하고, 가장 위대한 과학자들의 조언을 듣고, 결단력과 열정을 가지고 행동한다면···그래도 살 길은 없을 겁니다.” 졸지에 주말 저녁 뉴스를 통해 인류의 종말을 공언해버린 스탭들은 할 말을 잊은 채 스크린을 쳐다본다.
드라마가 방영된 시점은 2014년이다. 드라마 속 ‘종말론자’ 환경보호청 책임자가 언급한 것처럼 하와이 마우나로아 화산에서 이산화탄소가 400ppm을 초과해 측정된 건 2013년 5월이다. 마우나로아 화산엔 1958년, 세계에서 처음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하기 시작한 관측소가 있다. 1958년 처음 관측을 시작할 무렵에는 313ppm이었다.
55년 만에 400ppm을 넘어선 건데, 400ppm은 기후과학자들이 말하는 지구를 지킬 마지노선이다. 과학자들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400ppm을 넘어서면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을 1.5°C 이내로 하자는 파리협정 목표를 달성할 수 없고, 현재의 생태계도 유지할 수 없을 거라고 본다.
생태계가 유지되지 않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드라마 속 환경보호청 책임자의 묘사대로면, “난민이 많이 생길 거고요. 식량과 물은 부족하고, 전염병이 창궐하고, 산불이 통제되지 않을 겁니다. 태풍도 강해져서 도시를 갈아버리고 태양 빛은 구경도 못할 상태”다.
마우나로아 관측소에서 400ppm을 넘기고, 두 해 뒤, 2015년에 전 세계 40개 관측소 평균치가 처음 400ppm을 넘어섰다. 450ppm을 넘어서면 세계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2°C 이상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평균 이산화탄소 농도는 425.0ppm. 정보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경보가 되는 위기의 시대다.
위기의 시대를 선두에서 헤쳐 나가야 할 정치 지도자를 뽑는 선거가 끝났다. 뉴스민은 그 지도자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제1의 가치로 해주길 간절히 바라며 미약하나마 일종의 캠페인을 벌였다. 결과는 기대 이하다. 기후위기 의제에 대한 산발적인 관심은 있었지만, 선거는 ‘윤석열 심판’으로 빨려들어 갔다. 기후전문가랄 수 있는 당선인은 4명(이소영, 박지혜, 김소희, 서왕진)에 그쳤지만, 법조인은 역대 가장 많은 61명이 배지를 달게 됐다.
우리의 역량 부족을 인정한다. 하지만 여전히 22대 국회는 기후국회가 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포기할 수 없다.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윌처럼, 대안을 찾고 대안을 이야기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 그것이 뉴스민의 역할이고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갈 언론인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설령 그 끝이 “이미 살 길은 없다”는 종말 선고의 재탕일지라도.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