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는 진짜 결집했을까. 보수의 아성이라 불리는 대구·경북에선 국민의힘이 모든 선거구를 석권했다. 전석 석권의 가장 걸림돌로 거론된 경북 경산마저 국민의힘이 가지면서 막판 ‘보수 결집’의 성과라는 평도 나온다. 하지만 대구·경북 전체 득표 현황을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나눠 살펴보면, TK에서 보수 결집이 미완에 그쳤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오히려 세간에 떠돌던 ‘지국비조(지역구는 국민의힘, 비례는 조국혁신당)’이나 ‘지국비개(지역구는 국민의힘, 비례는 개혁신당)’ 투표 경향이 실제로 적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약 20만 명의 대구·경북 유권자는 지역구에선 국민의힘 후보를 선택했지만, 비례대표는 보수정당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는 지난 20대 총선과 21대 총선 당시 국민의힘 계열 후보의 득표와 정당 득표 간 차이 보다도 큰 폭으로 늘어난 수치다. 점점 보수정당 자체에 대한 지지세가 약해지거나, 보수 유권자들도 정당 투표를 다른 곳에 함으로 해서 보수정당에 경고의 메시지를 남기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국민의힘-국민의미래 득표 현황 살펴보니
대구, 정당 득표에서 지역구보다 15만여 표 감소
경북, 정당 득표에서 지역구보다 12만여 표 감소
이번 선거에서 대구는 12개 선거구 국민의힘 후보들이 합계 90만 3,723표를 얻었다. 전체 득표의 70.2%를 국민의힘 후보가 가져갔다. 그런데 비례대표 투표는 달랐다. 국민의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는 대구에서 75만 3,250표를 얻어 60.2%를 득표하는데 그쳤다. 15만 473명, 비율로는 10% 가량의 유권자가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해 놓고도 국민의미래를 뽑지 않은 거다.
경북도 마찬가지다. 경북 13개 선거구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얻은 득표 합은 95만 6,070표(67.2%)다. 하지만 국민의미래가 경북에서 얻은 득표는 82만 6,749표(60.2%)에 그쳤다. 12만 9,321명, 비율로는 7% 가량이 차이를 보인다. 대구와 경북 합계 약 28만 명이 국민의힘 지역구 후보에게 표를 주고도, 국민의미래를 지지하지 않은 셈이다.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우선 먼저 고려되는 정당은 국민의미래 보다 더 보수적인 정당으로, ‘지민비조’에 버금갈 정도로 장년층을 중심으로 호응을 얻었다는 ‘2·8청춘(지역구는 2번, 비례는 8번)’의 대상 자유통일당이다.
하지만 자유통일당이 대구와 경북에서 얻은 득표는 각 3만 8,085표(3.0%), 4만 2,538표(3.1%)에 그쳤다. 합계 8만 623표다. 즉 대구, 경북에서 20만 명 가량이 국민의미래도, 자유통일당도 아닌 정당을 선택했다는 의미다. 이들은 어느 정당을, 무슨 이유로 선택했을까?
흥미로운 사실은 같은 셈법으로 더불어민주당 지역구 득표와 민주당 비례연합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조국혁신당, 새로운미래, 그리고 녹색정의당 등 4개 정당 득표의 합을 비교하면, 대구·경북에서 모두 정당 득표가 더 많다는 점이다. 지역구에서 민주당이나 민주당과 연합한 후보를 지지하지 않더라도, 더불어민주연합·조국혁신당·새로운미래·녹색정의당 등 야 4당을 지지한 유권자가 있다는 의미다.
더불어민주당은 반대로 정당 득표 많아
대구, 야4당 정당 득표가 6만여 표 더 많아
경북, 야4당 정당 득표가 8만여 표 더 많아
대구에선 민주당 후보 8명과 민주당과 연대해 단일후보를 낸 진보당, 새진보연합 후보 3명의 득표합은 29만 6,404표(23.0%)에 그쳤지만, 더불어민주연합 17만 1,363표(13.7%), 조국혁신당 14만 7,740(11.8%), 새로운미래 1만 4,736표(1.2%), 녹색정의당 2만 3,838표(1.9%) 등 야4당 정당 득표 합계는 35만 7,677표(28.6%)다. 지역구에서 민주당과 연합 후보를 선택하지 않은 유권자 6만 1,273명, 비율로는 5.6% 가량이 정당은 선택했다는 의미다.
경북도 13개 선거구 중 민주당 후보 11명과 진보당 후보 1명이 얻은 득표 합은 31만 8,219표(22.4%)에 그쳤지만, 야4당은 40만 3,553표(29.4%)를 얻었다. 역시 8만 5,334명, 7% 가량이 더 정당 지지에 나섰다.
공교롭게도 대구에서 국민의미래를 선택하지 않은 약 15만 명 중 자유통일당을 선택한 3만여 명을 제외한 유권자는 11만 2,388명인데, 이는 야4당을 추가로 지지한 6만여 명에 개혁신당에 표를 준 5만 9,237명(4.7%)를 더한 숫자(12만 510명)와 큰 차이(8,122명)가 없다.
경북도 대구보다 좀 더 차이가 있지만, 경향성을 유사하다. 경북에서 국민의미래를 선택하지 않은 약 13만 명 중 자유통일당을 선택한 4만여 명을 제외한 유권자는 8만 6,783명인데, 야 4당을 추가로 지지한 8만여 명과 비슷한 숫자다.
여기에 개혁신당을 선택한 4만 4,468명이 있는데, 경북에선 대구에 비해 국민의힘 탈당 무소속 후보가 여럿 출마해 적지 않은 득표를 한 것을 고려하면,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무소속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도 상당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돼 보정 가능한 범위로 보인다.
실제로 경북에서 무소속이 가장 선전한 경산의 경우 경북 22개 시·군 중 국민의힘 후보 득표가 정당 득표보다 적은 유일한 도시다. 경북 13개 선거구 중 포항(울릉)과 구미처럼 1개 도시가 2개 선거구로 나뉜 4개 선거구를 제외한 9개 선거구 중 경산만 빼면, 모두 국민의힘 지역구 후보가 국민의미래 정당보다 더 많은 득표를 했다. 포항과 구미도 도시 득표로 합산하면 후보자 2명이 얻은 득표가 국민의미래가 도시 전체에서 얻은 득표보다 많다.
경산에선 국민의힘 조지연 후보는 6만 2,411표(43.4%)를 얻었지만, 국민의미래는 이곳에서 8만 894(58.1%)를 얻었다. 탈당한 무소속 최경환 후보가 6만 746(42.3%)를 얻은 걸 고려하면 지역구에선 최 후보를 지지하고 정당은 국민의미래를 지지한 이가 적어도 1만 여명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대구와 경북의 유권자 약 20만 명은 왜 국민의힘 후보에게 표를 줬으면서 국민의미래와 보수정당에 표를 주는 건 망설였을까. 분명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실제로 이들이 야4당이나 개혁신당에 표를 줬다면, 윤석열 대통령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남기기 위함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개혁신당을 포함한 5개 정당이 뚜렷하게 공유하는 가치가 ‘윤석열 심판’이기 때문이다.
국민의미래에서 이탈한 27만 명은 어디로?
‘윤석열 심판’ 기조 뚜렷한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으로?
20대 총선, 21대 총선, 22대 총선까지 지역구-정당 분리 투표 증가세
다른 한축에선 대구·경북에서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의 견고함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징후로도 해석할 수 있다. 20대 총선과 21대 총선 그리고 이번 선거까지 살펴보면, 국민의힘을 위시한 보수정당 후보를 지역구에서 선택하고 정당 투표는 보수정당을 선택하지 않은 유권자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대구에서 11명이 출마해서 52만 263표(47.9%)를 득표했는데, 정당 득표는 57만 1,775표(53.1%)로 후보 득표보다 많았다. 기독자유당 2만 7,850명을 더하면 55.7%까지 늘어난다. 21대 총선에선 미래통합당 후보 12명이 출마해서 82만 3,722표(60.2%)를 얻었지만, 비례위성 정당인 미래한국당은 73만 775명(54.8%)를 얻었다. 후보자 득표가 더 많았는데, 보수정당인 우리공화당 2만 3,828표(1.8%), 기독자유통일당 2만 7,418표(2.1%)를 더하면 차이는 4만여 명으로 줄어든다.
경북은 20대 총선에선 13명이 출마해서 74만 9,927표(60.9%)를 득표했고, 정당 득표는 70만 3,928표(58.1%)에 그쳤다. 하지만 기독자유당 4만 4,001표(3.6%)를 더하면 큰 차이가 없다. 21대 총선도 후보 13명이 나서 91만 3,389표(61.3%)를 득표했지만 미래한국당 정당 득표는 81만 8,952표(56.8%)에 그쳤다. 대구와 마찬가지로 우리공화당 1만 9,419표(1.3%), 기독자유통일당 3만 2,821표(2.3%)를 더하면, 차이는 4만여 명으로 줄어든다.
20대는 지역구와 정당 후보 득표 간 차이가 대구·경북 모두 거의 없었지만, 21대에서 대구·경북에서 합계 8만여 명 가량이 분리 투표를 했고, 이번 선거는 그 규모가 20만 명까지 늘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는 점점 보수 정당 후보를 지지하더라도 정당은 분리해 선택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여서, 그만큼 보수정당에 대한 견고한 지지가 무너지고 있는 징후로 해석할 수 있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