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롭다’는 ‘그러함’ 또는 ‘그럴만함’의 뜻을 더하고 형용사를 만드는 접미사다. ‘기후+롭다’는 기후위기 시대에 기후위기 대응을 고민하며, 기후위기 시대를 대비한다는 의미를 담아 뉴스민이 고안한 말이다.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1.5℃ 상승하는데 남은 시간은 5년 남짓, 이번에 선출되는 22대 국회는 그 5년 중 4년을 쓰는 국회다. 그동안 우리 국회가 기후위기 대응에 무관심하고 무능했다는 걸 고려하면, 이들에게 주어진 4년이란 시간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시간이다. 뉴스민은 22대 국회는 기후국회가 되어야 한다는 대원칙 아래 ‘기후로운 투표생활’ 기획보도를 시작한다.
[뻘건맛 시즌3] 기후로운 투표생활 시작합니다 (‘24.3.6)
[기후로운 투표생활] ① 2.1%, 21대 국회의 한계 (‘24.3.6)
[기후로운 투표생활] ② 기후로운투표생활위원회, “22대 총선 키워드는 기후국회”(‘24.3.6)
[기후로운 투표생활] ③ 지속가능 농·어업 고민 않는 국회(‘24.3.8)
[기후로운 투표생활] ④ 재난에 떠밀려 땜질하는 국회(‘24.3.11)
[기후로운 투표생활] ⑤ ‘탈탄소’ 보다 ‘저탄소’에 머문 국회(‘24.3.13)
[기후로운 투표생활] ⑥ 전국 사과 생산 1위, 경북의 한숨···“기후가 위기” (‘24.3.21)
[기후로운 투표생활] ⑦ 재생에너지 확충, ‘채찍질’ 망설인 국회 (‘24.3.28)
[기후로운 투표생활] ⑧ 탄소배출 악순환, 오늘은 오징어, 돌고 돌아 내게로(‘24.3.29)
[기후로운 투표생활] ⑨ 정당별 기후위기 공약···재생에너지 목표부터 차이 (‘24.3.29)
[기후로운 투표생활] ⑩ 대구·경북 후보 74명 중 21명만 기후위기 공약 (‘24.4.2)
[기후로운 투표생활] ⑪ 면세유만으로 그릴 수 없는 농업의 미래 (‘24.4.3)
[기후로운 투표생활] ⑫ 기후위기 정책 질의도 대구·경북 74명 중 20명만 답 (‘24.4.4)
[기후로운 투표생활] ⑬ 태풍 힌남노의 재난은 여전히 진행중 (‘24.4.4)
[기후로운 투표생활] ⑭ 국회는 언제까지 농어업재해보험만 손질할까 (‘24.4.5)
[기후로운 투표생활] ⑮ 온실가스, 포스코, 그리고 포항 (‘24.4.8)
[기후로운 투표생활] ⑯ 지속가능한 농업, 변화 더딘 국회와 마음 급한 농민들 (‘24.4.9)
장면 1. 3월 25일 정부세종청사 앞에 모인 500여 명의 농민은 “수입농산물이 폭탄이다”라고 외쳤다. 농산물 가격 폭등 현상을 두고 정부는 긴급 농축산물 가격 안정 자금 1,500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론 농산물 납품단가 지원 확대, 농축산물 할인 예산 확대, 관세 인하 수입 과일류 품목·물량 확대 등을 제시했다. 농민단체들은 “수입농산물을 더 싼 값에 들여오면 국내 생산 기반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며 “기후위기에 대응해 국내 공급망 안정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면 2. 올겨울, 경북 곳곳의 사과밭엔 탄저병에 걸려 떨어진 사과들이 쌓였다. 청도, 청송, 의성 등지에서 만난 농민들은 날씨와 생물에 의존해 생업을 유지하고 있는만큼 기후변화, 생태계 변화에 민감했다. 이들은 농약 남발, 쓰레기 불법 소각, 농촌 고령화‧공동화 등 여러 문제를 산발적으로 지적하면서도 “개별 농민의 노력으론 한계가 있으니 정부,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농업, 농촌, 농민의 위기는 모두 긴밀하게 연결돼 있으면서도 각각이 많은 문제를 담고 있다. 한국사회의 중요한 단면이지만 도시와 심리적‧물리적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과값 1만 원’, ‘대파값 875원’이 선거철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는 게 그 방증이다. ‘기후위기로 농업이 어렵다’는 구호보다 도시 마트에서 특상품인 사과 1개가 1만 원에 팔리는 현상이 선거에선 더욱 소음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의 전환, 농민의 삶은 계속해서 얘기되어야 한다. <뉴스민>은 21대 국회에서 논의된 법안을 살펴봄으로써 지난 4년간 농업분야 주요 논의를 정리하고 농민들에게 22대 국회에 바라는 점을 물었다. 농민들은 기후위기를 직접 체감하고 그로 인한 변화에 예민했으며, 농업을 둘러싼 여러 현안과 대안을 제시했다.
#21대 국회는 영농형 태양광 집중 논의, 공은 22대 국회로
21대 국회에서 농업, 기후위기를 키워드로 한 법안 가운데 ‘농업의 전환’과 관련된 내용은 뜬금없이 ‘영농형 태양광 도입’에 집중된다. 농지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태양광 발전을 할 수 있다는 점에 에너지 전환을 위한 대안으로 꼽히지만, 농지 기능이 우선돼야 한다는 쪽에선 여전히 반대 목소리가 나오는 현안이다.
영농형 태양광은 작물에 필요한 햇빛이 투과할 수 있도록 태양광 패널을 듬성듬성 설치해 농사를 지으면서도 전기를 생산할 수 있으며, 일본이나 독일 미국 등 신재생 선진국에선 이미 많이 쓰이는 방식이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은 농지법을 개정해 농업진흥구역으로 지정된 농지를 이용하거나, 그중에서도 마을공동체에서 추진하는 농지를 이용하는 등 설치 장소에 약간의 차이를 갖는다.
이외에도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영농조합법인이 태양광을 이용한 발전사업을 할 수 있도록 사업자의 자격 범위를 확대하거나, ‘농업인 영농형 태양광 발전사업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제정해 농업인이 태양광 발전사업을 할 때 혜택을 부여하는 내용 등이 있다.
법안 대부분은 문재인 정부 재임 중인 2021년 발의됐다. 태양광업계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강도 높게 농어촌 산지 태양광 개발 감사를 진행하면서 논의가 잠잠해졌다. 발의된 법안도 몇 년간 계류된 상황”이라며 “필요성에 대해 현장이나 연구자들 사이에 꾸준히 공감대가 형성돼 왔다. 다음 국회가 이어받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지난 2월 ‘영농형 태양광 보급 활성화를 위한 전략’이라는 보고서를 내며 연구개발과 현장 적용을 계속해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는 영농형 태양광 보급 사업에 대해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면서 식량안보를 확보하여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두 가지 시대적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태양광 시설 설치 농지의 지가 상승으로 농지 소유주의 잦은 변동 우려, 농작물 생산기능의 상실, 20여 년이라는 상대적으로 긴 일시사용 기간에 따른 농지기능의 상실 우려 등의 이유로 여전히 반대 의견도 나온다.
윤금순 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은 “먼저 농민들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 그간 시설 설치 업자들 중심으로 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하려는 시도와 농민들의 반대가 부딪히는 과정이 있었다. 구조물 패널 철거 시 엄청난 쓰레기가 나오는 문제도 있다. 지속가능한 농촌과 농민을 위한 방향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산업·선택형직불제·저탄소농업 확대 법안 발의됐지만, 논의 더뎌
이 외에는 그린바이오산업 육성, 농업바이오매스 에너지 이용‧보급 등 신산업 관련 법안들이 발의됐다. 그린바이오 산업은 농업생명자원 등에 생명공학기술을 적용해 농업 및 전·후방산업 전반에 대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신산업으로,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하다. 올해 1월 제정됐으며 내년부터 시행된다. 농작물, 농작물 부산물 등 탄소 중립의 재생에너지원인 바이오매스를 에너지화해 이용한다는 ‘농업바이오매스 에너지 이용·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농민의 어려움과 기후위기의 관계를 좀 더 직접적으로 명시한 법안도 발의됐다. ‘농업·농촌 공익기능 증진 직접지불제도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위성곤 안)은 ‘농민의 공익적 기여 행위를 규정하는 선택형직불제에 식량안보직접지불제도와 탄소중립직접지불제도를 명시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정희용 안)은 ‘저탄소 농축산물의 생산기반 구축을 지원하며, 저탄소 농업기술 개발 등을 위한 시책을 마련한다’는 내용이며, 같은 법 일부개정법률안(이원택 안)은 ‘온실가스 감축실적의 등록, 관리 등에 관한 근거 규정을 법률에 명시하고 감축사업에 참여하는 농가 등에 배출권거래시장 가격 등을 고려한 인센티브를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농업 분야의 탄소 중립 이행은 꼭 필요하지만, 국회 논의는 더디다. 지난해 3월 발표된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에 따라 농업 분야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7.1% 감축한 1,800만톤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친환경·저탄소 농업 확대, 탄소배출권거래제, 저탄소 농축산물 인증제 등의 실효성은 미미한 상황이다.
참여 농가가 많지 않아 지원 수준이 낮고 연구도 적다. 반대로 지원 수준이 낮고 연구가 적어 소득 보장이 되지 않으니, 새로이 참여하는 농가 수가 늘지 않는 악순환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저탄소 농산물 인증을 받은 농가는 9,085곳이다. 전체 농가 수(2022년 기준 102만 호) 대비 0.009%뿐이다.
성주에서 유기농 참외 농사를 짓는 이재동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도연맹 의장은 “날씨 변동성이 커지면 농사 자체가 힘들어진다. 관행농이라면 살균제나 살충제 같은 약을 쓰지만 친환경 농사를 짓는다면 토양의 흙을 좋게 만들어 저항성을 키우고 천적을 쓰는 식으로 대응한다”고 말했다.
이 의장은 “기후위기가 실제 현장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정부 정책이 거기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 것 같진 않다. 수입 농산물 확대, 농업진흥지역 농지 규제 완화 이야기를 꺼내는 걸 보면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그보단 국내 농업 기반을 탄탄하게 만드는 게 우선”이라며 “기후위기 문제 해결을 위해선 유기농‧친환경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 여전히 유럽이나 선진국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고 지적했다.
청도에서 유기농 복숭아 농사를 짓는 황성현 씨는 인식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씨는 “유기농업은 단순히 농약을 안 뿌린 농산물을 말하는 게 아니다. 본질적으론 무너져 있는 농업 생태계를 복원하고 그 생태계에 속한 풀, 벌레, 균의 힘으로 농사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황 씨는 “대표적인 사례가 관 주도의 광범위한 드론 살포 농약 비산 위험과 개화기의 무분별한 농약 살포로 인한 꿀벌의 죽음이다. 유기농민들은 이런 상황을 마주할때 마다 애써 지키고 있는 생태계에 미칠 악영향이 두렵다. 유기농업에 대한 관의 인식이 먼저 바뀌고 지원이 따라와야 진짜 농업의 전환이 이뤄질 수 있다”고 전했다.
#농민의 삶을 지키는 것에서 기후위기 해결 실마리 찾아야
농민의 삶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해야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관점도 있다. 대표적인 정책이 ‘농민수당’이다. 현재 농촌지역에선 연간 60만 원의 수당을 농가당 지급하고 있다. 농민수당을 기본소득 관점에서 보는 이들은 농민이 농촌의 땅을 보전하고 관리한다는 공익적 측면에 집중한다.
농촌경제, 농촌사회를 연구해 온 박경철 충남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농이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농촌을 지키기 때문이다. 대농은 산업화된 구조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기후위기에 역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소농 중에는 생계형 농민 뿐 아니라 본인과 주변이 나눠 먹기 위한 농사를 짓는 이들도 있다. 이들 수가 많아져야 지역 환경을 보전하고 땅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 농업 전반의 생태적 전환을 위해선 우선 농민의 소득 감소나 전환에 따라오는 불안을 덜어줘야 한다. 그 방법이 농민 기본소득”이라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경기도가 올해 10월부터 추진 예정인 ‘농어민 기회소득’을 예로 들었다. 농어민 기회소득은 영농·영어 활동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지만, 정당한 보상 및 충분한 기회를 받지 못하는 농어민에게 지급되며, 금액은 월 15만 원씩 연간 180만 원이다. 청년(50세 미만), 귀농어민(최근 5년 이내 귀농), 환경농어업인(친환경, 동물복지, 명품수산 등 인증) 등이 지급 대상이다.
박 연구위원은 “농민 기본소득이 농민의 소득을 보편적으로 보장해준다면 기회소득은 공익적 가치에 대해 추가 지급을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농민수당의 3배 규모이기 때문에 실제 농업의 생태적 전환에 효과가 있을 거라 기대한다”며 “직불금은 대체로 규모 있는 농가가 유리하고, 토지를 둘러싼 경쟁 같은 부작용도 있다. 경기도와 같은 시도가 다른 지자체로 확산되고, 금액적으로도 현실화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후로운투표생활 특별취재팀
김보현, 천용길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