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림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대가리'(도서출판 삶창, 2016.3) 출판기념회가 29일 대구경북작가회의 주최로 대구YMCA 3층 강당에서 열렸다. 동료 문인, 시민단체 관계자와 시 동호회 회원 등 120여 명이 객석을 메웠다. 이날 고희림 시인은 신작 ‘가창골 학살'(도서출판 사람, 2016.06)도 독자들에게 내놨다.
평소 대구10월항쟁과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에 관심을 두고 있는 작가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벌어진 국가 폭력을 시로 썼다. 세월호 참사와 한국전쟁 시기 학살당한 민간인들, 그 틈바구니에서 어쩌다 살아남은 자들부터 청도 삼평리 송전탑 반대 주민, 스타케미칼 굴뚝에서 싸운 노동자 차광호까지.
홍승용 현대사상연구소 소장은 고희림의 시에 대해 “직설적으로든 우회로를 통해서든 지배질서와 타협 없는 싸움을 벌이며 또 그만큼 해방적이다”고 평했다.
대가리1
국가는 계산적이었다
냉정하게 분류하고 머리 숫자를 중요시했다
명단에 오른 자와 체포된 자
체포된 자와 도라꾸에 실린 자
골에 도착한 자와 구덩이에 엎드린 자
사살된 자와 사진에 찍혀 미군 보고서에 첨부된 자
<하나 예외, 함께 사살한 젖먹이 아이와 미취학 연령대 소녀>
이들은 오직 대가리 숫자였다그가 3대 독자든
그녀가 만삭이든
내일 혼례식을 앞둔 약혼녀든
억울하게 명단에 오른 자든
그가 독립운동을 한 자든 애국자든
그를 죽여 되레 전쟁에 패배하는 한이 있더라도
오로지 명단에 있고 숫자만 맞으면
그 자는 사살되고
생명은 추상 되어 대가리 숫자가 되어
그 골짝 우렁찬 살생의 함성 울릴 때
나무와 숲의 푸른 눈물에
짝짓기에 겨운 여름 귀뚜리조차 감히 울지 못했다그렇게 전쟁이 끝나고도
사람들은 대가리를 갖고 놀았다
대가리는 오직,
1960년
군경에 신병이 인계된 대구형무소 수감자 명단 1402명
구슬치기처럼 숫자로만 의미를 가졌다
여전히
몸이 가진 삼라만상의 가치 중
오로지, 대가리 숫자만 취급하는
그 버르장머리를 숭상했다.
채영희 대구10월항쟁유족회장, 원로운동가 권오봉, 강창덕, 한기명 씨 등도 참석했다. 청도 삼평리에서 온 김춘화 씨와 이은주 씨는 ‘춘화 언니’를 낭송했다. 스타케미칼 노동자 차광호는 인사말에서 굴뚝을 자주 찾아준 고희림을 ‘시인보다는 동지’라고 불렀다.
시인들과 문인들의 축사와 시낭송에 이어진 2부는 축하무대는 가수 이동원이 ‘향수’ ‘이별노래’ 등을 부르며 자리를 빛냈다.
작가는 원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1999년 ‘작가세계’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평화의 속도'(시와반시, 2003), ‘인간의 문제-끝나지 않는 시월'(두엄출판사, 2012)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