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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에 신입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OO가 좋아하는 게임! 무슨 게임…” 이런 술게임 소리로 주변 상가가 떠들썩하다. 술게임에 한창인 그들을 보며 ‘빵빵이’로 불리던 동기가 떠올랐다. 2000년에 태어난 빠른년생인데, 생일이 지나기까지 술집에 갈 수 없었다. 3월, 생일인 빵빵이와 과방에서 맥주를 마셨다. 교복만 벗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줄 알았건만, 현실은 과방에서 몰래 맥주를 마시는 신세였다. 나이 때문에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안주거리로 삼던 중, 투표권 이야기가 나왔다.(2018년 6월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가 있었는데, 필자는 8월 출생이고 당시 만 19세부터 투표할 수 있었다) 필자가 투표할 수 없다는 사실이 빵빵이가 술을 마실 수 없는 것에 위로가 되길 바랐지만 역부족이었다. 유치하지만 만약 ‘음주권’과 ‘투표권’ 중 하나를 고르라면 ‘음주권’을 선택했을 것이다.
투표권에 대한 안일한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학교에선 기숙사 건립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 기숙사를 새로 건립하는데, 공실을 염려한 인근 원룸 주인들이 공사를 막아선 것이다. 원룸 주인들은 “인근 주민의 생계를 무시하고 대형 건설사만 배불리는 기숙사 건립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반면 학생들은 기숙사 추가 건립을 필요로 했다. 한정된 시설로 인해 기숙사에 들어가기 힘들었고, 당시 인근 원룸은 보증금 300~500만 원, 월세 30~40만 원으로 상당한 부담이었다. 사건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지역구 의원이 중재에 나섰는데, 이를 통해 기숙사 인원을 감축하는 데에 합의가 이뤄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건물주의 생계를 걱정한 국회의원 감수성에 놀랐고, ‘기숙사를 필요로 하는 학생들에게 투표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투표권의 가치를 실감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인들은 선거철이면 ‘서민과 약자 대변’을 외치며 표를 부탁한다. 건물주의 생계를 걱정한 그 의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의원은 어쩌다 학생보다 건물주를 약자로 보게 됐을까? 그 의원에게 학생들은 처음부터 보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전입신고 없이 지내므로, 해당 지역구에 투표할 일이 없다. 투표할 사람들이 아니며, 따라서 그가 대변해야 할 ‘서민과 약자’의 틀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당시 기숙사 수요자는 약 6천 명이었는데, 이들이 해당 지역구의 유권자였다면 건물주를 우선한 중재안이 나올 수 있었을까? 투표권이 없으면 약자도, 서민도 될 수 없다.
투표하는 유권자가 되자. 정치는 투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2000년 총선부터 2020년 총선까지 통계를 보면, 청년층의 투표율은 지속해서 상승했다. 20~30대는 2000년 대비 2020년 총선에서 10% 넘는 투표율 증가 추세를 보였다. 투표율 상승은 정책변화를 이끌었다. 2020년 이전까지 청년 정책은 중구난방이었다. 지자체마다 청년을 정의하는 기준이 달랐고, 지원 정책이 전무한 지자체도 있었으며, 청년정책 소관 부처라 할 만한 곳도 없었다. 결국 청년 정책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청년층이 최대 투표율을 기록한 2020년, 청년기본법이 제정됐다. 덕분에 청년에 대한 기준이 19~34세로 통일되고, 각종 정책 결정 과정에 청년을 참여시킬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청년세대가 정책적으로 소외된 데에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청년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투표율 상승’이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닐까?
유시민 작가는 100분 토론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관심을 안 가진다. 할 수 없죠, 그거를 어떻게 해요 주권자가 관심을 안 가지는데, 관심 안 가지는 바람에 국회에서 청년들을 위해 신경도 안 써주고 이런다? 그러면 자업자득이에요. 그냥 목마른 사람이 샘 파는 게 그것이 삶의 이치다. 정치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이렇게 그냥 냉정하게 말씀드리죠.” 그의 단호한 어조가 야속하다 못해 화나지만 맞는 말이다. 그러나 관심만 가진다면 청년을 신경 쓴다는 말이기도 하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투표’라는 최소한의 관심도 표하지 않는 이들에 신경 쓸 정치는 없다. 주권을 적극 행사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