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초점] 우리가 놓친 아동학대 생존자들 /이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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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청년초점은 청년 예비언론인의 눈으로 본 우리 사회에 대한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아는 동생의 부탁으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 동행한 적이 있다. 상담실 앞 대기실에서 그는 “같이 들어가서 내 상황 설명해 주고, 의사 선생님 말씀도 정리해 주면 안 돼?”라고 물었다. 우울과 불안 증세로 인해 명확하게 의사소통하기 힘든 상태였던 것이다. 하지만 법적 보호자가 아닌 사람이 상담실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같이 있어주지도 못하는 내가 동행자로 선택된 이유는 그에게 실질적인 보호자가 없기 때문이었다. 법적 보호자인 부모는 각각 그가 겪었던 폭력의 가해자, 방관자다.

그의 가정 상황을 알게 된 건 작년 가을이었다. 비가 많이 내리던 날 새벽 3시쯤, 그의 전화에 잠이 깼다. 그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자신의 과거를 두서없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자신의 목에 칼을 대서 상처가 난 경험’과 ‘엄마가 자신의 머리채를 붙잡고 끌고 다니며 휘둘렀던 경험’ 등을 이야기하던 그는 지금 집에 들어가면 맞을 거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겨우 그를 진정시키고 대화를 나눠보니, 그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그를 정서적·육체적으로 학대해왔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행위를 두둔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장 당혹스러웠던 점은 성인인 그가 어머니의 폭력을 체벌 정도로 표현했다는 것과 아버지를 양측의 상황을 다 이해하려는 조정자로 옹호했다는 것이었다.

젊은 성인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대부분은 아동학대의 생존자들이다. 어린 시절부터 학대당한 피해자들은 끊임없이 부모의 행위에 면죄부를 준다. 부모의 행위가 틀린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면, 이 세상에서 홀로 생존해야 한다는 공포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미지의 영역인 독립 대신 익숙한 폭력을 선택하고, 자신이 학대당할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학대당할 이유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없는 것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피해자는 본인의 언행에 끊임없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여하고, 끝내 내면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내 지인의 경우에는 심각한 우울장애로 발현되었으며, 그로 인한 무기력증은 부모의 폭력을 수용하게 했다. 그리고 빈번한 자해와 약물 남용, 수차례의 자살 시도로 이어졌다.

문제는 그들이 성인이라는 이유로 방치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동학대에 관심을 기울이고, 학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피해자와 가해자를 격리하거나 피해자를 보호시설에 인도하는 등 적극적인 개입 조치 체제를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공감과 지원이 성인 가정폭력 피해자에게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19세가 넘어 법적 성인이 되었으니,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책임지라고 요구할 뿐이다. 우리는 그들이 아동학대를 당하던 시절, 우리 사회가 그들을 포착하고 도와주는 데 실패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그들이 폭력에 저항하는 주체적인 성인으로 성장하지 못한 것에 우리 사회의 책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저항 능력이 부족한 아이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이유로 아동학대 방지를 우리의 의무로 받아들인다면, 성인 피해자에 대한 보호 역시 우리의 의무가 되어야 한다.

그들이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는 우리 사회가 다른 선택지를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가정폭력의 문제를 인지하더라도, 가정 외 대안이 마땅치 않다. 젊은 성인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대부분은 경제적 자립을 이루지 못한 상태이기에, 폭력에서 해방된 새로운 보금자리 지원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2022년 ‘여성가족부 가정폭력피해자 지원시설 운영 실적’을 보면, 가정폭력 상담 건수는 45만 4,704건으로 2018년 대비 15% 증가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시설 입소 연계 조치 내용은 약 47.6%가 줄어들어 1,303건을 기록했고, 가정폭력 쉼터 입소 현원은 2018년 말 749명에서 2022년 말 573명으로 줄어들었다. 쉼터를 선택한 이들이 편하게 쉬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2022년 쉼터에 입소했던 1,598명 중 22%가 일주일 안에 쉼터를 나갔고, 43.1%가 한 달 안에 쉼터를 나갔다.

우리가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주어야 한다. 시민들이 나서서, 피해자들이 기존 가정 밖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요구해야 한다. 가족의 문제라는 표현으로, 성인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나는 지인의 상황을 처음 알게 된 새벽, 통화를 하면서 “한국 사회가 가족 간 사법적 분쟁 이후의 일들을 얼마나 잘 해결해 주는지, 나는 알지 못해”라고 말했고,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으며, “언제까지고 도와줄 테니 같이 이겨내자”라고 약속하는 게 전부였다. 언젠가 “방법을 찾았어. 더 이상 아파할 필요가 없어”라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꿈꾼다. 이 꿈이 꿈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시민 사회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