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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학교 일반대학원 장애학과에서 첫 박사 학위 취득 연구자가 배출됐다. 2018년 장애학과를 개설한 이후 7년 만이다. 박사 학위를 받은 이는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인 전근배(37) 씨다. 전 씨는 대구대 초등특수교육과를 졸업한 이후 줄곧 장애인 인권운동 현장에서 활동했다. 장애학과가 개설된 2018년 입학해 2020년 2월 석사학위를 받은 후, 바로 박사과정을 진행했고 4년 만에 학위를 취득했다.
“산위에시설에서나와서다시땅굴시설에국가들어가서방콕하고있다”[산 위에 있던 시설에서 나왔더니 다시 땅굴시설(지하철과 아파트를 뜻함)에 구겨 들어가서 박혀있다]-어느 탈시설 장애인의 문자 메시지 (2022년 4월 26일). 전근배 씨의 박사학위 논문 ‘탈시설 장애인의 신체 기능, 시설화 경험, 지원제도 체감도, 사회자본 및 고립감 간의 구조적 관계’의 서문이다.
석사논문으로 ‘시설폐쇄에 따른 장애인의 탈시설과 다른 시설로의 전원 경험’을 쓴 전 씨는 한 탈시설 장애인이 보낸 문자를 받고서 논문 주제를 정했다. 시설에서 나온 당사자도,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활동가도 탈시설 이후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낀다고 여긴다. 전 씨는 고립감을 느끼는 이유가 시설을 벗어나서일까, 시설에 계속 살고 있으면 고립감을 느끼지 않는 것인가, 고립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찾기로 했고, 논문을 쓰게 됐다.
시설화의 경험이 높을수록 탈시설 이후 자립 지원제도에 대한 체감도가 낮아졌고, 지원제도의 체감도가 낮을수록 고립감은 높아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탈시설 장애인 365명이 연구를 위한 설문에 참여했다. 전 씨는 “전업 연구자였으면 불가능한 연구였다. 운동 현장에서 같이 발디딘 활동가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조한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저도 그렇고 장애학을 하는 사람들은 외국에서 공부를 해왔다. 외국 사례만 자꾸 이야기하면 국내 현실에 맞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며 “기본적인 철학이나 원리를 국내 현실에 맞춰서 현실화하려면 국내 장애학 전공자가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앞으로 전근배 박사의 연구와 역할에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박사 논문과 관련해 조한진 교수는 “많은 이들이 장애인이 느끼는 고립감을 탈시설 부작용이라고 해왔다. 탈시설화가 아니라고 해왔는데, 탈시설 반대 논리를 반박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연구”라고 말했다.
장애인권 운동을 하면서 장애학 연구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전 씨는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말했다. 활동이 연구로 이어지고, 연구는 장애인 운동과 연결되는 게 전 씨의 바람이다. 그래서 다음 연구 주제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시위가 갖는 의미라고 한다. 전근배 씨를 만나 박사논문의 의미와 장애학 연구 전망을 물었다.
Q. 박사논문 주제로 탈시설 장애인의 고립감을 선정한 이유는?
한국사회에서 장애인은 시설에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워낙 강해요. 시설에서 나온 뒤에 여러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데 말이죠. 그런데 시설에서 나와서 아픈 것도 탈시설 때문, 죽어도 탈시설 때문이라고 하죠. 그중에 탈시설하면 장애인이 외롭다, 관계망이 부족하다보니 고립된다고들 이야기해요. 그즈음 시설에서 나온 분이 문자를 보냈어요. 시설에서 나왔는데 또 시설이라는 거죠. 고립감이라는 현상은 있는데, 증명되지는 않은 거죠. 그래서 장애인의 신체 기능과 시설화 경험, 탈시설 이후의 지원제도 체감도, 사회 자본과 고립감이라는 5가지 변수의 관계를 검증하는 연구를 진행하게 됐어요.
Q. 연구 결과는 어떻게 나왔나요?
결과적으로 시설에서 나와서 외로운 게 아니라, 시설에서 살았기 때문에 외로울 수 있겠다는 걸로 증명됐어요. 시설에서 나오면 외롭다는 검증되지 않은 믿음들이 많은데, 문화적으로 익숙하니까 근거 없이 가정하는 것들을 깨고 싶었어요. 시설화 경험이 높을수록 탈시설한 이후에 여러 지원제도에 대한 체감도는 낮아졌고, 지원제도의 체감도가 낮을수록 고립감은 높아졌어요. 그리고 시설화 경험이 높을수록 탈시설 장애인의 사회자본도 낮았어요. 특히, 시설에 최초 입소한 연령이 18세 이하, 아동기였던 집단이 성인기였던 집단에 비해 시설화의 경험이 높고 탈시설 이후 지원제도 체감도가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어요. 정리하면 시설화 경험은 탈시설 이후의 지원제도를 온전하게 체감할 수 없게 한다는 거죠. 또, 시설화 경험이 사회자본과 고립감에도 영향을 준다는 거죠.
Q. 시설에 오래 머무를수록 탈시설 이후 고립감을 높이는데 영향을 준다는 것이군요.
맞아요. 시설화 경험이 높을수록 국가가 나에게 이런 걸 해주는구나 하는 체감도가 떨어지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시설화 경험을 연장하거나 늘리지 않아야 하고, 시설화 경험을 줄일 수 있도록 정책을 손봐야 하는 거죠. 연구 결과, 지원제도 체감도가 사회자본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걸로 나타났어요. 개인이 사회자본을 갖기 위해서라도 지원제도 체감도를 높여야 하고, 그러려면 시설화 경험을 줄여야 하는 거죠.
그런데 탈시설 장애인의 사회자본이 고립감에 영향을 줄 거라는 건 기각됐어요. 탈시설 장애인의 사회자본이 본인의 고립감에 영향을 미칠만한 변수조차 아니었던 거죠. 탈시설 장애인이 가진 사회자본의 솔직한 현실이죠. 당사자가 체감도를 높일 수 있도록 지원제도가 바뀌어야 하는 거죠. 이 연구에서는 지원제도 역할이 크게 나타났어요. 국가의 지원제도가 사회자본 형성을 촉진하는지, 방해하는지는 검토가 더 필요한 것 같아요. 탈시설 장애인에게는 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논의가 있는데 이 연구 결과는 국가의 역할을 지지하는 쪽으로 나온 거죠.
Q. 연구에 탈시설 장애인이 얼마나 참여했나요?
목표는 450명이었는데, 365명이 참여했어요. 지금 상황에서는 적지 않은 인원이죠. 국책연구나 공공기관에서 했던 연구 중 이 정도 규모의 참여자들이 없었어요. 120명이 넘는 분들이 면접원으로 나서 주셨어요. 설문지만 돌리고 받는 게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 비장애인까지 많은 분들이 도와줬어요.
Q. 장애인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연구가 가능했던 것 같군요.
맞아요. 전업 연구자였으면 설문에 참여할 사람 모집하는 것부터 불가능했겠죠. 참여를 알려줄 수 있는 구조가 있었던 거죠. 감사한 일이죠. 금호 선배(노금호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가 전화기 붙자고 참여해달라고 사정사정했어요.
Q. 그렇지만 박사과정에 들어갈 때가 코로나19가 대구에 돌던 때라서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시간적으로는 많이 바빴지만, 코로나19와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가 장애학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예전에는 정책, 제도를 바꾸자고 환경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제도나 정책이 중단된 거죠. 한정된 자원을 어떤 우선순위로 배분할 건가를 두고 자연스럽게 장애인들이 후순위가 되는 과정이 있었죠. 정책, 제도 문제가 아니라 인간 자체에 대한 고민과 닿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그즈음 금호 선배의 희귀난치성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죠. (노금호 소장은 전신 근육이 점점 약화되는 희귀질환 척수성근위축증(SMA, Spinal Muscular Atrophy)을 겪고 있다. 2016년 최초 치료제인 스핀라자가 개발돼 2019년부터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 보험 급여적용 기준에는 인공호흡기를 사용하고 있거나 만 3세 이전에 진단 기록이 없는 환자는 제외된다. 스핀라자는 보통 1년에 3~4번 주사를 맞아야 하는 치료제로, 주사 1회당 비용은 약 9,235만 원이고, 급여 적용을 받아도 건강보험 부담금은 598만 원이다. 스핀라자에 대한 급여 적용 기준 확대 투쟁을 2022년부터 벌여왔고, 2023년 10월부터 기준이 확대됐다.)
장애운동에서 본인의 신체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건강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던 문화였어요. 그런데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기 의료공백이 생기니 이야기가 활발히 하기 시작한 거죠. 박명애 대표(장애인지역공동체·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님이 한 세미나에서 ‘우리 운동에서는 이런(건강) 이야기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고 말했어요. 제도, 장애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사회라는 이야기만 해왔던 거죠. 그런 경험이 장애 문제를 바라볼 때 몸이나 인간성을 제외하고 나면 본질적인 것들을 건드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Q.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는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요즘 쓰고 있는 논문이 전장연 시위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내용이에요. 사회계약 이론에 따르면 계약의 주체인 시민의 몸에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제외되거나 누락된 거죠. 이성적 능력이 있어야 하고, 기생하지 않은 몸의 상태가 있어야 시민인 거죠. 전장연 시위를 보면, 근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지하철에 있는 시민들이 전장연을 비판하는 게 시민성이 결핍되어 있거나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언론, 정치인은 대중적인 언어를 쓰잖아요. 우리 사회가 계약한 시민성이 가장 적절하게 표현된 것이죠. 전장연의 시위는 그 시민성에 다른 시민성을 요구하고 있는 거죠. 전장연 시위에 대한 공격과 비난은 시민성의 결여가 아닌 주류 시민성과 대안 시민성의 경합으로 이해할 수 있고요. 전장연의 선전 포스터 중에 나치독일의 T4작전(우생학에 기반한 장애인 대량 학살 작전)에 대한 게 있었죠. 전장연의 시위가 그걸 패러디한 것은 극단적인 표현이라기보다는 국가와 시민의 관계를 묻는 것이었다고 봐요.
어떤 하나의 정책, 제도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아니라 국가와 시민의 관계를 묻는 거죠. 문화평론가 중에 어떤 분이 ‘지금 전장연 시위를 보면서 인간성과 시민성이 전복되는 아주 기념비적인 장면을 보고 있다’고 했어요. 장애인운동은 정책이나 제도를 넘어서 인간과 시민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하는 과정에 왔어요. 지하철이라는 공간도 그렇죠. 근대 시민성의 상징적인 공간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변재원(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장애시민 불복종』 저자) 동지가 2020년대 이후부터는 장애인운동의 대중화 시기라고 평가를 하더라고요. 박경석 전장연 대표와 이준석 대표가 토론을 했잖아요. 토론 과정을 보면, 수어통역도 없고, 책상은 (박경석 대표의 높이에) 맞지도 않고. 박경석은 토론장으로 올 때까지 몇 배의 시간이 걸렸고, 정식 토론 후에도 박경석은 활동지원사가 있어야 했고요. 또, 이준석은 가장 문명의 언어를 썼고, 박경석은 가장 자연의 언어를 썼죠. 대중화 단계에 들어선 장애운동이 건드리고자 하는 바가 시민성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Q. 앞으로 전업 연구자의 길로 갈 수도 있는 건가요?
대학원에서 햇수로는 7년 공부하면서 이 활동,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를 더 많이 찾게 된 시간이었어요. 현장의 언어가 학술적인 영향으로 단단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계속 장애인운동을 하면서 학문적 탐구를 계속해야죠.
장애학은 장애인 당사자를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장애화’ 하는 권력이 움직이는 경로와 관계를 탐구하는 학문이지, 등록장애인 대상을 집단으로 연구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장애화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받아쓰는 것, 그게 주된 활동과 연구의 이유로 삼고 싶어요.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연구가 현학적이면 실제 사람들과 멀어지는 경우를 봤던 것 같아요. 그렇게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천용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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