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민주통일전사 한기명 의장의 마지막 가는 길···추모의 밤

18일 숙환으로 별세···향년 96세

21:42
Voiced by Amazon Polly

통일운동, 민주화운동의 원로 한기명 선생(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대구경북연합 명예의장)이 18일 오후 3시 35분 세상을 떠났다. 향년 96세. 20일 저녁 7시 ‘자주민주통일전사 한기명 의장 시민·사회장 장례위원회’는 대구전문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한기명 의장을 추모하고 유훈을 낭독하기 위한 추모의 밤을 진행했다. 지역 시민사회계 150여 명이 참석해 자리를 지켰다. 발인은 21일 오전 5시, 장지는 마석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이다.

▲20일 저녁 빈소에서 ‘자주민주통일전사 한기명 의장 추모의 밤’이 열렸다.

한기명 의장은 1929년 9월 12일 서울 창신동에서 오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42년 동덕여자고등학교에 수석 입학했으며,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위안부로 끌려가는 여성과 농민수탈 등 일본제국의 만행에 분노하고 만주 무장 독립투쟁 소식에 호응해 민주학생연맹에 가입하면서 민족운동에 뛰어 들었다.

해방 후에는 민족의 분단을 막는 일에 앞장섰다. 1948년 한 의장은 2.7구국투쟁, 5.10단정단선반대투쟁에서 동덕여고 대표로 동맹휴학을 주도했으며, 이로 인해 유치장에 수감되고, 학교도 자퇴했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에는 조선노동당 서울시 동대문구역당 선전부 일꾼으로 활동하다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서 15년형을 선고받았다. 1955년 출소한 후 1956년 이형락 선생과 결혼했다. 1968년 남편 이형락 선생이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으로 구속된 이후 서문시장 난전에서 장사를 하며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했다.

막내딸 이단아 씨는 2021년 진행한 한국학중앙연구원 구술 인터뷰에서 이때를 회상하며 “아버지가 옥고를 치룰 때 어머니가 한약재로 쌍화탕을 지어 파셨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큰 언니는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작은 언니는 야간중학교에 갔다가 공장에 다녔다. 난 연좌제 때문에 사법고시를 칠 수 없다는 걸 알곤 희망이 없어졌고, 가족에 대한 사찰로 동네에서 놀림과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기명 의장은 평생을 민족과 통일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고, 그건 말년으로 갈수록 더 강고했다. (사진=정용태 기자)
▲지난 2021년 강창덕 선생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한기명 의장(왼쪽). (사진=정용태 기자)

1985년 6월, 10년 만기출소한 남편이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이듬해인 1986년 이단아 씨가 노동운동 중 수배되면서, 한 의장은 대구민주운동가족협의회 활동을 시작했다.

1990년에는 범민련 남측본부 결성과 함께 다시 통일운동을 시작했다. 범민련 남측본부 대구경북연합 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부의장직을 맡아 활동했다. 1994년에는 대구경북지역양심수후원회 준비위원회를 거쳐 1995년 공동대표를 맡았으며 현재까지 직을 유지했다.

이단아 씨는 앞서 구술인터뷰에서 “특히나 대구여서 외로워하시던 어머니가 활동을 시작하셨다. 범민련 탄압이 있었을 때가 90년대 후반이었는데, 환갑이 넘어서 징역도 다녀오셨다. 어머니가 장부 스타일이라 전혀 거리끼지 않고 즐겁게 (활동을) 하셨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한 의장은 1995년 범민련 남측본부 대구경북연합 결성 건으로 구속됐으며, 2013년 국가보안법 위반(찬양·고무)으로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2018년에는 형명재단을 창립해 이사장에 취임했다. 형명재단은 이형락, 한기명 선생의 이름을 한 글자씩 가져와 만든 이름으로, 장학 사업과 통일·민주화 관련 프로그램 지원사업 등을 진행했다.

한 의장은 최근까지 한국진보연대 고문,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고문, 대구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고문, 대구촛불행동 고문, 민주화운동원로회 회원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이 외에도 민주주의민족통일대구경북연합, 미군장갑차 고 신효순 심미선 살인사건 대구 대책위, 통일유니버시아드 시민연대, 이라크파병반대 대구경북시민행동, 한미FTA저지 대구경북운동본부,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대구경북시도민대책위, MB 퇴진 대구시국회의, 4대강 사업저지 대구본부,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대구시국회의, 사드배치반대 대구경북대책위, 영남대의료원노동조합 정상화를 위한 범시민대책위, 박근혜퇴진 대구시민행동, 세월호참사대구시민대책위, 대구민중과함께, 대구경북겨레하나 등 지역 안팎의 활동에 함께 하며 사회의 민주화와 인권, 통일을 위해 헌신했다.

한 의장은 지난 1월 설을 앞두고 대구에서 남긴 유훈에서 “범민련, 양심수후원회 열심히 통일 투쟁했던 단체 뿐 아니라 반독재 민주화를 위해 앞장서 투쟁했던 모든 단체도 민족 자주 대단결로 함께 뭉쳐 조국의 범민족연합 통일 골간을 세워 행복한 우리 민족 세계평화 위해 큰일 하기 믿는다”고 전했다.

▲20일 오후 7시 한 의장의 빈소에서 열린 ‘자주민주통일전사 한기명 의장 추모의 밤’에는 15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20일 열린 추모의 밤은 한 의장을 기억하는 150여 명의 동지들이 모여 그를 추모했다. 추도사는 이태형 전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김혜순 민가협양심수후원회 회장, 한상렬 목사, 윤병태 전 범민련 남측본부 대경연합 의장, 박석준 6.15대경본부 상임대표가 준비했다.

유가족 대표로 나선 맏사위 이승구 씨는 “가족보다 더 큰 애정과 믿음으로 어머니와 함께 하는 분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어머니는 우리만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우리 모두의 어머니를 보내 드리는 길 함께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유족도 어머님 큰 뜻을 잘 섬기고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전했다.

▲20일 오후 7시 한 의장의 빈소에서 열린 ‘자주민주통일전사 한기명 의장 추모의 밤’에는 15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