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근대역사관, ‘동요의 귀환, 윤복진 기증 유물 특별전’

윤복진의 유족이 기증한 300여 점 가운데 60여 점 선봬
동요를 중심으로 다양한 일제강점기 지역 문화예술계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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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부터 대구시가 문화예술 아카이브를 세우면서 기획한 ‘동요의 귀환, 윤복진 기증 유물 특별대구근대역사관 기획전시실(2층)에서 열리고 있다. 윤복진 외에도 박태준, 홍난파, 정순철 등 일제강점기 문화예술인들의 활동을 조명하는 이번 특별전은 내달 31일까지 이어진다.

▲’동요의 귀환’전_대구근대역사관 2층 기획전시실(사진=정용태 기자)

전시 제목 ‘동요의 귀환’은 이중의 의미를 담았는데, 동요가 다시 위상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윤복진의 필명인 김귀환의 ‘귀환’을 말한다. 윤복진의 유족이 기증한 300여 점 가운데 60여 점과 국가 기관에서 빌린 관련 자료로 꾸민 이번 전시는 근대 대구 풍경을 보여주는 ‘프롤로그’, 1부 ‘시, 노래가 되다’, 2부 ‘노래에 담은 근대의 꿈’, 3부 ‘초월, 경계를 넘다’, 4부 ‘무영당, 예술과 사람’ 편으로 구성됐다.

주요 전시물로는 대구 근대 연표와 윤복진(1907~1991) 연표, 인물 관계도를 시작으로 1부에서 <제일집 윤복진 창작시집>(1926), 이인성이 표지를 그린 동요집 <꽃초롱 별초롱>(1949) 영인본 등을 보여준다.

2부는 윤복진 작시 박태준 작곡의 음악노트와 윤복진이 소장했던 홍난파의 <조선동요 100곡집> 중 상권(1929년)과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동판 악보(국가등록유산) 및 윤복진 작사, 홍난파 작곡의 동요가 담긴 유성기 음반으로 꾸몄다. 박태준 작곡, 윤복진 작사 악보집 <돌아오는 배>는 이번 전시에서 최초 공개했는데, <중중때때중>(1931)과 <양양범버궁>(1932)에 수록된 동요와 민요 13곡을 모아 1934년 재출간했다.

▲이인성 판화 작품으로 표지를 제작한 윤복진 작시, 박태준 작곡 세 번째 동요곡집 ‘물새발자옥'(1939)_대구근대역사관 ‘동요의 귀환’전 가운데(사진=정용태 기자)

3부는 일제강점기 지역 문화예술의 상황과 당시 문화예술인의 이론적 철학적 기반이 된 책과 영화 시나리오 등을 전시했는데, 음악평론가 김관이 발행한 우리나라 최초 월간 음악평론집 <음악평론>(1936)을 비롯해 윤복진이 음악과 영화 평론가로 활동한 자료를 볼 수 있다.

4부는 무영당 서점을 시작으로 대구 최초 민족 자본 백화점 무영당과 이인성이 그림을 그린 무영당 광고, 무영당을 중심으로 교류한 예술인들의 흔적을 선뵀다.

이외 전시물로 <현제명작곡집> 제2집, 정순철 동요곡집 <갈닢피리>, 양주동의 <조선고가연구>, 최남선의 <백팔번뇌> 등이 있다.

전시연계 특강도 마련됐는데 지난 15일부터 3월 14일까지 매주 목요일 오후 2시 대구근대역사관 2층 문화강좌실에서 열린다.

윤복진은 대구에서 태어나 희원학교, 계성학교와 일본 법정대학 문학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일제강점기 소파 방정환이 창간한 잡지 <어린이>에 ‘별따러 가세’로 입선하면서 조선, 동아 등 신문과 잡지에 작품을 발표했다.

주요작품으로는 동요 ‘고향하늘’, ‘물새발자옥’, ‘기러기’, ‘하모니카’ 등이 있고 윤복진 요, 박태준 곡의 동요곡집 <중중때때중>, <양양범버꿍>, <도라오는배>, <물새발자옥> 등 4권과 동시집 <꽃초롱 별초롱>을 펴냈다.

일제강점기 ‘어린이날’ 중앙위원을 맡았던 윤복진은 아동문학가 윤석중, 이원수, 신고송, 서덕출 및 작곡가 박태준, 홍난파, 정순철, 현제명 등과 함께 신문, 방송, 강연으로 동시와 동요 보급에 앞장서는 등 어린이 인권과 민족정신 함양을 위해 활동했다.

▲윤복진 연표 부분_대구근대역사관 ‘동요의 귀환’전 가운데(사진=정용태 기자)

화가 이인성, 무영당 백화점 사장 이근무, 무용가 최승희 등 다양한 문화예술인들과 교류하며 음악평론, 영화평론, 음악·무용 해설, 번역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펼쳤다.

조선문학가동맹 아동문학분과(위원장 정지용 시인)의 사무장 역임하고 1950년 정지용, 박태원, 이태준 등 조선문학가동맹의 문학인과 월북하면서 그의 행적과 작품이 지워지고 잊히고 만다. 1988년 해금됐다.

정용태 기자
joydrive@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