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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청년초점은 청년 예비언론인의 눈으로 본 우리 사회에 대한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면 그때마다 그를 추상적인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그를 멀리 밀어내 버리는 것이다. 그가 웃을 때면 너털웃음을 웃는다는 것 따위는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는 ‘실루엣’이 되어 버린다.” 작가 알베르 카뮈가 한 말이다. 이걸 읽자마자 얼마 전 보았던 한 인터뷰가 생각났다. “대통령에게 우리가 정말 적인지 묻고 싶다. 왜 우리를 이렇게도 적대시하는지, 우리가 자식을 잃고 아파하는 마음을 정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이정민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의 인터뷰였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있고 지금까지 1년 3개월 동안 참사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은 실루엣이었다. “놀러 갔다 죽었다”며 사회적 참사의 책임을 희생자들에게 넘기는 말들에 가려 진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법망을 빠져나갔고 정부는 진상규명을 바라는 유가족들을 정권의 안위를 흔드는 방해 세력처럼 대했다. “정쟁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대통령이 유가족들과 악수 한 번 하지 않은 동안, 대통령과 여당 인사들이 1주기에 서울광장이 아닌 교회에서 예배하는 동안 159명의 죽음과 유가족들의 고통은 점점 더 실루엣에 가려졌다. 그리고 지난 30일 정부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법안으로 정부는 해당 법안이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았다. 동행명령, 압수수색 의뢰와 같은 특조위의 권한이 헌법상 영장주의 원칙을 훼손하고 기본권을 침해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행명령권과 압수수색 영장 청구 의뢰권은 세월호 특조위와 같은 유사한 조사위원회에 모두 있었던 권한으로 위헌성이 문제 된 적 없었다. 또한, 특조위는 체포 권한이 없기에 신체적 자유와 같은 기본권을 침해할 수 없다.
정부는 검경 수사로 이미 진상규명이 이뤄졌기에 특조위는 국가 예산 낭비이고 사법부와 행정부의 역할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 또한 공감이 어렵다. 지금까지 윤 대통령이 책임을 물어 경질하거나 스스로 물러난 고위공직자는 0명이다. 지난해 1월 수사를 마무리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도 대부분 무혐의나 내사 종결로 사건을 처리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렇듯 사법부와 행정부가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역할을 대신하기 위해 특조위가 필요한 것이다. 또한, 재난 원인과 같은 기본적인 진상규명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예산 낭비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우리를 국민으로 취급하지 않는 이 정부를 우리도 정부로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거부권 행사 이후 유가족들은 한목소리로 정권 심판에 대한 의지를 외쳤다. 국민이 국가를, 국가가 국민을 적으로 보는, 모두가 실루엣 속에 가려진 사회가 되어버렸다. 10년 전, 세월호 참사 때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서로 적이 되어 싸우는 동안 우리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실패했고 수학여행 가다 희생당한 친구들의 죽음에 분노했던 학생들이 자라 그때와 같은 국가의 부재로 서울 한복판에서 목숨을 잃었다. 지금 또 우리 사회가 안전해질 기회를 놓친다면 우리는 또 어떤 희생을 치르게 될지 모른다.
이 악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정부가 지금이라도 실루엣 뒤의 사람을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 희생자들이 살아있을 때 어떤 웃음을 지었는지, 지금 유가족들이 왜 울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들어야 한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했음에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먼저 손 내밀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필수적이다. “왜 거부합니까? 죄를 지었으니까 거부하는 겁니다. 진상을 밝히고 조사를 하면 감옥에 가야 해서 못 하는 겁니다.”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 한 말이다. 정말 떳떳하다면, 정말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자신이 한 말을 지켜야 할 때다.
장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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