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노동자의 죽음 앞에 눈물만 흘리고 있을 수는 없다

일하는 청소년 인권은 어디로 ⑥

19:21

아침부터 누군가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2016년 5월 28일 5시 58분경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열아홉 노동자가 죽었다는 소식에 망연자실했다. 누군지 알 수 없으나, 노동자가 일하다 죽었다.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맞이한 노동자 이야기에 나는 넋을 놓았고, 머릿속은 하얘진다.

사망사고 원인을 스크린도어수리공의 잘못으로 몰아갔던 서울메트로는 시민들의 뭇매를 맞았고, 그의 죽음 앞에 세상은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며 구의역을 포함한 지하철 역사에 포스트잇을 붙여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의 죽음은 외주화된 대한민국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다.

[사진=페이스북 페이지 '구의역 스크린도어 9-4 승강장`]
[사진=페이스북 페이지 ‘구의역 스크린도어 9-4 승강장`]

나는 그의 죽음이 던져주는 또 하나의 이야기에 목소리 높여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열아홉의 청소년노동자라는 사실이다. 그는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서울메트로로 현장실습을 나갔다. 서울메트로가 곧 자회사를 만든다는 계획이 있어, 정규직 채용이 가능할 거란 기대와 희망을 품고 밥 먹을 시간도 없이, 휴식을 취하지도 못한 채 장시간노동을 마다치 않았다.

처음에는 현장실습생이라고 불렸을 것이고, 다음엔 하청노동자란 이름으로 서울시민의 안전을 위해 일했던 그는 자신의 안전은 돌볼 틈이 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 또 다른 노동자의 자살소식을 접했다.

스크린도어수리공 김군과 같은 해 졸업생인 또 다른 김군은 경기도 내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유명한 E외식업체에 현장실습을 겸해 조기취업 했는데, 양식부 직무와 관련 없는 학과를 졸업하고 주로 수프 만드는 일에 파견돼 일했다고 한다.

하루 11시간 장시간노동에 무료노동까지 강요받으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직장 내 선배들에게 무시와 괴롭힘을 당해왔다고 한다.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두지 못한 채 일했던 그가 어느 날 사표를 던지고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 사건은 스크린도어 김군의 사고가 있기 전인 5월 7일이었다고 한다.

피해자 부모님이 스크린도어 김군 사건을 접하면서 자식이 겪을 일들과 흡사해 가슴에만 묻어두지 않기로 했다고 전한다. 피해자는 일하는 4개월 동안 몸무게가 10kg이나 줄었고, 일을 그만두고 싶어 했지만, 부모님은 “사회생활 어디를 가나 다 그렇지. 좀만 참고 견뎌라”고 한 것을 뒤늦게 후회하신다.

2014년 CJ제일제당 충북 진천공장에서 일하던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 사내 괴롭힘과 폭행을 견디다 못해 자살했고, 같은 해 울산 현대자동차 하청공장 금영ETS 공장 붕괴사고 현장에서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시신이 발견됐다. 2012년 12월에도 한라건설 해상 크레인 작업선 전복 사망사고 등 파악된 중대재해와 사망사고가 이럴진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은 오죽할까?

특성화고 현장실습제도는 교육이란 외피를 쓴 청소년노동자를 착취하는 현장이다. 2011년 기아차 현장실습생이었던 김민재 학생의 주야 2교대 근무와 뇌출혈 사건이 이를 말해준다.

대구청노넷은 올해 2월 대구교육청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특성화고등학교 현장실습에 관한 실태파악과 점검기록을 남겨둔 자료를 달라고 요청했는데, 교육청 관계자는 현장실태파악을 하지도 않았다는 낯 뜨거운 고백과 자료도 없다고 답변한다.

특성화고등학교는 입시를 대신해 취업률을 높이는 경쟁의 늪에 빠져있다. 교육당국은 취업률이 높은 학교에 예산을 듬뿍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사회 진출을 앞두고 노동인권을 비롯해 사회에서 필요하거나 겪게 될 상식과 교양, 전문지식 등을 갖추기 위해 교육을 수행하기보다는 현장실습 나가는 것에만 목을 빼고, 줄을 세운다. 그리고 실습이 취업으로 연결될 수 있기 위해 예의 바른 직장생활만 강요한다.

구의역 청소년노동자의 죽음을 책임져야 할 곳은 서울메트로지만, 학교와 교육당국은 현장실습이 가져온 비극을 보아야 한다. 전공과목을 살리고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의 연장으로서 현장실습이란 말은 그럴듯하다. 현실은 학교 안팎으로 비참하다. 죽지 않았다고 해서 비참함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잠재된 것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취업률 실적이 노동자의 목숨에 비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서울메트로로 현장실습을 보내고 싶다면 외주용역업체로 취업시키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지 않나? 파견, 하도급, 외주용역 등 사람 장사로 돈을 벌어먹는 중간착취 구조에 현장실습을 보낸다는 것은 교육자의 양심을 파는 행위다.

일자리 질이 떨어지는 걸 알지만, 학생이 졸업하면 취업하기를 바라는 교사의 마음은 경건하다. 취업한 곳에서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미리 예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말이다. 미래를 예견할 능력이 없다고 해서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된다. 안전한 일자리를 찾는 노력은 필요하다. 일하다 죽을 수 있는 곳, 기형적인 구조로 일하는 곳, 사회적으로 문제가 발생한 비정규직 고용에 무심해서야 사고를 예방할 수 없다. 교육당국의 무능과 관료행정이 결국 학생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생명이 이윤보다 더 중하다는 가치를 지향한다면 충분히 사고를 예방할 방법은 찾을 수 있었다. 더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포스트잇을 붙이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말이다. 청소년노동인권교육도 더 많이 하고, 그들에게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음을 더 큰 목소리로 주장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원인을 밝혀내고 재발하지 않게 행동해야겠다.

연이은 청소년노동자의 죽음 앞에 눈물만 흘리고 있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