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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송경동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내일 다시 쓰겠습니다> 출판기념 책담회가 대구 서성로 공간7549에서 열렸다. 김문주 문학평론가(영남대 국문과 교수)가 진행한 책담회는 대구민주시민교육공동체모D와 동네책방모디가 같이 마련했다.
아시아출판사 K-포엣 시리즈 37권으로 출간된 이번 시집은 ‘비대면의 세계’와 ‘지금 내리실 역은 이태원역입니다’를 비롯해 표제시 ‘내일 다시 쓰겠습니다’ 등 35편의 시를 3부로 나눠 실었다. 시편 외에 시인 노트와 에세이를 비롯해 고명철 문학평론가의 해설 ‘눈물과 상처가 있는 세계의 중심’, 문동만, 이설야, 진은영 시인의 발문을 담았다.
행사를 주최한 김채원 동네책방모디 책방지기는 “송경동 시인이 대구에서 출판기념회를 한 번도 가진 적이 없다는 말을 듣고 놀랐고 미안했다. 굶으며, 땅바닥을 기며, 통곡하며 싸워왔던 송경동은 알지만 정작 그의 시는 얼마나 알까”라고 말했다.
대구에서 처음 열린 시인의 책담회는 독자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인의 앞선 저작과 근황, 걸어온 길과 시집에 관한 이야기, 송경동의 시 ‘노래, 할 수 있을까’로 노래를 지은 이종일의 축하공연 등으로 저녁 7시부터 9시 반까지 진행됐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에서 일할 때
국가정보원이 위법적으로 사찰해온
문화예술인 249명 중점관리명단을
간신히 받아왔다이름 옆에 A, B, C 등급이 매겨져 있었는데
다행이 A등급 스물두 명에 내 이름이 또렷이 들어있었다
B나 C였다면
난 국가정보원의 존립 이유를 믿지 못했을 것이다”
_’자존심’ 전문
김문주 평론가는 이번 시집의 발문을 들며 “편향과 편파의 시인. 그다음에 체제 부적응자, 그다음에 A급 블랙리스트 그다음에 지하 생활자들의 운명에 대해서 증언하는 자, 산재시 조사 시인 그다음에 우리 시대 고통의 곁에 머무르는 시인으로 호명했다”고 소개했다.
책담회에서 송경동은 문학으로 이끈 계기를 묻는 질문에 중학교 국어 시간에 쓴 ‘봄비’로 선생님께 들은 칭찬과 첫사랑에게 보낸 연애편지를 말했다. 직접 문학의 길로 들어선 사건으로 ‘그나저나 배린 인생’에 쓴 김남주 시인과 첫 만남을 들기도 했다.
시인은 독자 앞에서 자신의 시 ‘노래, 할 수 있을까’와 ‘비대면의 세계’ 두 편을 읽었다. 앞의 시는 이종일의 축하공연에 앞서, 뒤의 시는 이번 시집 가운데 시 한 편 골라 읽어주길 바란 진행자의 요청에 답하며 읽은 시다.
“화성에 온 것 같아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수만 번의 번개가 치며
한 달째 100여 곳으로 번진 산불이
서울 면적 20배를 넘게 태우고도 꺼지지 않는데
기후변화 때문이란다전 세계 산소의 20%를 생산해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브라질 아마존 밀림에서도
2019년부터 2020년 8월까지 10만 건의 산불이
1년째 타올랐는데
이 또한 기후변화 때문이란다2020년 2월 남극 마람비오 기지에 여름이 찾아오고
북극 베르호얀스크에 38도가 찍히고
기후변화의 카나리아라는 그린란드 대륙빙하가
역대 최고 속도로 한 해 532조 리터가 녹고 있는데
이 또한 기후변화 때문이란다안데스와 히말라야 산맥의 고원에서
지구의 거울이 되어 수억 년 태양열을 반사하며
지표를 식히던 빙벽들이 녹아 생긴 빙하호가
지난 10년 새 1.5배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 또한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하고
우기도 아닌 한반도에
세 번의 태풍이 연달아 오고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에볼라···
코로나19가 창궐한 까닭도 기후위기
기후재난 기후변화 때문이라는데너무들 한다 아마존 우림이 파괴되는 것이
다국적 자본의 이해를 위해 무차별 개발을 밀어붙이는
브라질의 신종 독재자
보스소나루 때문이었다고는 말하지 않고너무들 한다 기후위기 기후재난의 원인이
전 세계 석유 자본의 무한 탐욕 때문이라는 것은
과잉 생산과 무한 소비를 부추기는 시장 때문이라는 것은
그 잘난 개발과 발전의 신화 때문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고전 세계 0.1% 자본가들의
무한한 독점과 축적
제1세계의 천문학적인 안락과 풍요를 위한
약탈과 탐욕의 문명 때문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는
교육도 언론도 문화도 정치도 너무하다이 모든 종말과 파멸의 주범은
산불도 폭염도 미세먼지도 구멍 난 오존층도 아닌
태풍과 토네이도와 녹아가는 빙하도 아닌
박쥐도 천산갑도 멧돼지도 고양이도 아닌
사스도 메르스도 에볼라도 코로나19도 아닌진실과 오랫동안 비대면해온
인간 스스로이다
우리가 끝내 우리의 유한한 삶과
무한한 세계에 대한 영원한 무지에 대해 인정하고
한없이 소박해지지 않는 한도미노처럼 쓰러져가는
세계의 재난은
끊이지 않을 것이며
파국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비대면의 세계’ 전문
시인은 행사를 마치며 “저도 현실은 그렇게 못 사는데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살아야 되지 않겠냐라는 그런 각오나 꿈을 다 담은 글이에요. 현실은 좀 아닙니다. 진짜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고 인사했다.
송경동은 1967년 전남 벌교에서 태어났다. 2001년 ‘내일을 여는 작가’와 ‘실천문학’으로 작가의 길에 들어섰고 구로노동자문학회에서 활동했다. 용산참사, 희망버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 사회운동에 앞장섰고, ‘비정규직없는 세상만들기’에 참여하고 있다. 시집 ‘꿀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등이 있다. 천상병 시문학상, 김진균상, 신동엽 창작상, 고산문학대상을 수상했다.
정용태 기자
joydrive@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