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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과 연시가 뒤엉킨 새해 첫 번째 달도 저물어간다. 과거 정리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필수다. 하지만 워낙 바쁘고 험난한 현재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도 어느새 기억 속에서 휘발되기 십상이다. 대구독립영화 1년 결산을 앙상하게 써내려가는 건 ‘검단자’로서의 자신감과는 무관하다. 이렇게 쓰는 것이 맞는 일인지, 필자가 바라보는 시각이 과도한 건 아닌지 늘 번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별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경향과 흐름으로 누군가는 부실한 글이나마 남긴다면 이를 바탕으로 더 유의미한 정리 혹은 토론이 발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의 발로 정도로만 일독해 준다면 바랄 게 없을 일이다.
◆ ‘대구+독립+영화’의 불투명성이라는 난제 앞에서
해마다 부딪히는 문제가 하나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각도로 불투명해지는 중이다. 바로 ‘대구독립영화’란 무엇이고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하는 논쟁이다. 이는 일면적인 지점이 아니라 해당 개념 조합의 모든 구성요소가 의심받는 지경에 봉착하고 만다. 이 문제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영화 내/외부가 모두 포함이 되는 쟁점이라 그렇다. 영화적으로만 규정할 게 아니라 사회학적 분석이 요구될 사안이다. 그래서 더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대구독립영화’는 ‘대구’ vs ‘독립’ vs ‘영화’의 조합일 테다. 하나하나 뜯어보자.
<쟁점1> ‘대구’라는 공간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우선 첫 번째는 ‘대구’라는 지역적 측면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대경(대구+경북)’이라는 표현을 구사하곤 하지만 이미 단순한 물리적 거리는 실질적인 생활권 문제와 동일시될 수 없는 사회적 조건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 지역의 독립영화단체가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란 명칭으로 활동 중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경북’의 대부분 지역과는 별다른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이는 단체의 문제가 아니라 역부족 또는 역량 한계에 가까운 지점이다. 그리고 광역시에 속하는 대구에서도 영화 관련 환경과 기반이 부족한 상황에서 기초 지자체 단위의 독자적 영화 생태계가 존재하기란 극한에 가까운 조건이란 점도 고려해야 한다.
행정구역상 경계를 넘어 해당 사안은 좀 더 심층적 쟁점으로 돌입한다. 대구독립영화라 칭한다면 흔히 대구라는 지역 내에서 제작된 영화 또는 대구 출신 영화인의 작업이 일정 부분 충족되는 애매모호한 범주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여기에 확정된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영화를 특화해서 지원하거나 상영하는 경우에 각자 별개의 규정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세부 내용은 상이하지만 앞에서 열거한 양대 축 사이에서 부유하는 셈인데 개별 각론 차원에서 미묘하게 상이한 내용들이 존재하지만 해당 문제가 공식적으로 토론되어 통일기준이 설정될 것 같진 않다. 그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라 보기에도 어렵다.
하지만 해마다 소소한 불협화음이 발생하곤 한다. 양대 축 가운데 ① 행정구역상 대구 내에서 만들어졌다고 해서 단순 배경이 아니라 ‘지역성’이 인식되는지 여부 ② ‘토박이’ 개념이 희미해진 21세기 한국사회에서 선거 출마할 것도 아닌데 형식적 소재지 외에 감독 혹은 제작진의 다수가 지역에 주소지를 갖는 게 얼마나 변별력을 갖는지 판단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①의 경우는 지역사회에서 경험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인식 vs 지역 외부에서 ‘대구’라는 공간 특성을 인지할 수 있는지 중 기준을 어디에 놓는지에 따라 최소주의와 최대주의 사이를 오갈 테다. 대구를 공간 배경으로 삼았지만, 지역에서 장기 거주하며 생활한 사람만 식별 가능할 뿐 굳이 대구라는 도시 정체성을 강조하지 않는다면 과연 ‘대구영화’라 할 수 있는지부터 제작진이 물리적 촬영공간으로 삼았을 뿐 별달리 지역적 특징을 포착하거나 활용할 의도가 존재했는가 여부까지 몇 갈래 쟁점이 도출될 수 있다. 이는 의식적으로도 무의식적으로도 별개화가 될 수 있겠다.
②의 경우는 ‘대구 영화인’의 경계선 획정 문제와 이어진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지역 내에서 제대로 영화 관련 교육이나 현장 참여 기회가 생소했던 상황에서 소위 ‘인재 유출’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곤 했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역에서 악착같이 견디며 영화를 만들어온 독립영화인들의 노고와 별개로 영화를 배우기 위해 정규교육기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뭐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타지에서 학교를 다니며 영화를 배운 뒤 지역으로 돌아오거나 오가며 활동하는 이들이 하나둘 발생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타지에서 흘러들어와 대구에 정착하는 사례도 있다. 그리고 영화가 감독 개인에 의해 온전히 완성되는 게 아니기에 여러 제작진과 출연진이 필요한데 예를 들어 ‘감독’ 1명만 제외하고 모두 대구 내에서 활동하는 인원이라면 그 영화의 국적은 대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여기에서 더 복잡해지는 건 ①과 ②가 뒤엉키면서 제곱, 세제곱 경우의 수를 생성한다는 것이다. 정답이 딱 그어지기보단 해당 쟁점에 대해 폭넓은 입장이 상호 토론되면서 경향을 만들어가야 할 문제다.
<쟁점2> ‘독립’의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이 문제는 지역 독립영화만의 차별화된 쟁점은 아니다. 현재 한국 독립영화가 직면한 근본적인 논쟁지점 중 하나일 테다. 다만 대구의 독립영화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점이 언급되지 않거나 간과된다는 개인적 입장에 따라 언급하려 한다. 노파심에서 언급하자면 이 지점이 지역의 영화들에서 특히 심각하다거나 핵심적인 단점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수도권/유명 영화학과에 비하면 문제가 작은 편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현재 한국의 독립영화와 그 창작세대 대부분이 해당 문제에 봉착한 건 엄연한 사실이라 판단하기에 굳이 다루려 한다.
‘독립’이란 무엇으로부터의 독립일까? 오래된 구분기준으로는 20세기에는 ‘검열’, 21세기 들어서는 ‘자본’으로부터의 자율성이란 주장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흔히 ‘영화운동’이라는 경향이 과거 군사독재와 맞서는 사회운동의 일각으로 여겨질 때는 부도덕한 정치권력의 문화예술 통제에 대항해 표현의 자유, 그리고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를 선명성의 기준으로 삼았었다. 이 쟁점은 20세기 말 기존의 사전심의 제도가 무력화되고 기존에는 ‘재야’에 머물던 사회운동이 체제 내로 들어오면서 탈각되어갔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또한 입장이 나뉘기 시작했는데, ‘독립영화’가 자유로운 예술 표현에 초점을 맞춘다면 창작자가 상업자본에 종속되지 않고 자율성을 담보할 경우 제도적 지원을 받는다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 주류가 되었다. 따라서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란 개념 역시 온전히 상업자본 바깥으로 이탈하는 게 아니라, 창작의 자율성-상업적 수익이 최우선이 아닌 게 담보된다면 모두 포괄하는 너른 범주로 인식하는 게 대세가 되었다. 결은 다양하지만, 이 정도가 현재 합의되는 기준점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영화 제작에는 노력과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과거에 비해 기술 발전으로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한 진입장벽은 현저히 낮아졌지만, 그에 일정 부분 비례해 요구치도 높아졌다. 누구나 상대적으로 좋은 환경에서 창작하고 싶다. 장비는 이 정도는 쓰고 싶고, 고생하는 스태프 밥도 잘 먹이고픈 게 이심전심이다. 예전에는 퉁 치던 근로조건과 인건비도 부담이다. 그런 가운데 중앙정부/지방정부/민간재단/영화관련 기관 등 다양한 경로로 형성된 제작지원사업은 동아줄처럼 지역 영화인들에게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바늘귀’를 통과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은 어느새 지원에 통과할 가능성이 높은 ‘요령’으로 변모한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으로 바뀐다.
심사결과에 대한 하마평이 창작자 사이에서 가장 민감한 관심사가 되어버린 것과 함께, 중앙/지방정부 수장이나 책임자가 교체되면 줄넘기하듯 오락가락하는 여러 독립영화 지원사업은 안정되고 예측할 수 있는 영화 생태계 형성을 가로막는 주요한 장애물이다. 목마른 사람 죽지 않을 정도로 졸졸 흐르는 지원인지라 늘 적자생존이 전제되다 보니 수혜를 받는 이는 제한적이고 지원자는 넘쳐날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여러 측면에서 한계가 노출되는 심사결과는 의구심과 불만을 방어하기엔 역부족이다. ‘의심암귀’는 그런 조건에서 창궐하기 안성맞춤이다. 다행히 대구는 상대적으로 해당 논란에서 자유롭지만, 근본 전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항상 경계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쟁점3> ‘영화’의 경계와 차별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지역에 정규 영화학과는 부재하지만 ‘영상’, ‘콘텐츠’ 등의 명칭이 붙은 경우가 없진 않다. 21세기 문화 콘텐츠 산업에서 ‘영상’은 필수요소 아니겠는가. 그런 가운데 영화의 정체성은 무엇이고 꼭 ‘영화’여야 하는지 의문부호도 따라붙는다. 천만 영화 블록버스터 유행이 물러가자 영화보다는 OTT나 유튜브 같은 분야가 더 주목받는 실정에서 굳이 영화, 그것도 독립영화에 주목하고 지원해야 할 이유를 질문 받는 경우는 늘어만 간다. 해마다 반복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그런데 설명하기가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지역 내에서도 종종 이런 의문과 마주치곤 한다. 지원을 결정하는 단위 입장에서 단기성과를 내고자 한다면 미디어에서 각광받는 SNS 콘텐츠가 더 유망해 보이는 실정에서 영화가 타 영상매체에 비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설득하는 건 일상의 전투가 되어간다. 해당 이슈에 대한 고민이 부재한 기관이라면 상대적으로 투입자원도 적고 실적도 내기 좋아 보이는 ‘숏폼 ShortForm’에 솔깃하기 마련이다. 그런 가운데 영화 관련 지원을 얻기 위해 ‘산업’으로서의 영화지원이 고장 난 테이프처럼 반복해서 등장하곤 한다. 그리고 산업적 투자가치가 없는데 왜 지역의 독립영화를 지원해야 하는지 논리를 만드는 숙제도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
이에 대한 설득력을 담보하는 결론은 아직 ‘정식’으로 채택되지 못했다. 일단 어차피 영화산업 부흥이 지역 성장 동력으로 실효성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수동적 입장이 우선이다. 지역 내 역량의 한계보다는 ‘서울 공화국’으로 집중된 문화예술 분야 생태계를 지적하게 된다. 합당한 논거이지만 기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곧이어 그러면 왜 지역 독립영화를 지원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감당해야 한다. 여기에서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장기적 대안과 함께 ‘청년인재’의 외부 유출을 막기 위한 정치사회적 주장이 도출된다. 하지만 부정적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거듭된다. 다른 부문에 지원하는 것과 어떤 비교우위가 있는 것인지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하면 말문이 막힌다. 애초에 들을 생각이 없는 것인지 우리가 정책 설득력이 약한 것인지 헷갈릴 때가 생긴다. 뭔가 머릿속에 하고 싶은 말은 한 가득인데 입 밖으로 정리되어 나오진 않는다. 실존적인 딜레마다.
◆ 그럼에도 대구에서 독립영화 제작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다
이런 오만가지 난제에도 불구하고 대구 곳곳에서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대구(독립)영화’에 주목하는 시선은 지극히 제한된 독립영화판 내에서일지언정 꾸준히 확장일로다. 2022년에 한국의 공식 ‘영화박물관’이라 할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대구독립영화 기획전을 열었고, 2023년에는 몇 지역에서 대구독립영화를 조명하는 상영회나 기획전이 연이어 개최되었다. ‘지역독립영화’라는 구획으로 뭉뚱그려 구성하는 게 아니라 ‘대구’ 지역의 작품을 특화해 조명하는 건 우리 동네에서 제작되는 영화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인식에 기반을 둔 것이다. 환영하고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아쉽게도 지역사회에선 여전히 ‘역수입’이 이뤄져야만 지역독립영화에 대해 관심을 보이곤 한다. 역수입이라면 영화제 등에서 입상하거나 상업적으로 성과를 내는 등의 ‘실적’이 화제성을 띨 때 대개 가능해진다. 가시적 실적을 내고 미디어가 조명해야 한다. 상업적 흥행을 내기 힘든 한국 영화시장 구조 때문에 대구 독립영화 역시 영화제 초청과 입상이 승부수가 되곤 한다. 어떻게든 (타 시도 영화제로) ‘수출’되어야 생명연장이 가능한 셈이다. ‘내수’가 받쳐주지 못하는 구조 내에선 영화제 진출과 수상실적이 영화에 대한 결정적 기준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단기간에 개선되기도 어려워 보인다. 해당 척도에 비판적인 입장이지만 결국 관련 실적을 언급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일단 대구 내에서 영화가 제작되면 1차 관문은 대중에게 공개되는 것이다. 공개 경로에서 가장 넓은 문은 매년 8월말에 열리는 대구단편영화제가 될 테다. 해당 영화제는 ‘애플시네마’란 명칭으로 지역 내 단편독립영화 부문을 선정하고 있다. 2023년 선정 작품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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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캠프 (장주선/극영화) 고요 한가운데 (김현진/극영화) 못 (이민영/극영화)
사라지는 것들 (권민령/극영화) 소녀탐정 양수린 (김선빈/극영화)
아무 잘못 없는 (박찬우/극영화) 운동회날 (김주리/극영화) 처음 (진여온/극영화)
휴식과 나의 남자친구 (태지원/극영화) OK목장의 결투 (변석호/극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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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는 아니지만 지역 내 유일한 독립예술영화 전용극장인 오오극장이 연말에 여는 지역독립영화 결산 기획전 역시 대구독립영화 소개창구로 기능한다. 애플시네마 선정 10편 외에 추가로 장편 1편과 단편 5편이 추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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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색편이 (정민우/실험영화) 저주사물 (김규태/극영화) 점핑 클럽 (채지희/극영화)
비포 선라이즈 (박정윤/극영화) 수능을 치려면 (김선빈/극영화)
더 납작 엎드릴게요 (김은영/극영화) *장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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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포함되는 정도가 아마 대중에게 공개되고 미디어의 조명을 받는 최저기준선이 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2차로는 대구 바깥 영화제에서 호명되고 수상하는 경우가 다음 단계로 작용할 테다. 일일이 영화제 초청 및 수상실적을 열거하진 않겠지만 위에 언급된 작품 중 진하게 표기된 경우들이 해당 영화들이다.
주요 수상결과로는 박찬우 감독의 <아무 잘못 없는>이 23회 전북독립영화제 ‘상상’과 49회 서울독립영화제 ‘씨네플레이 로컬시네마상’를 수상했다. 25회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선 3편의 ‘땡그랑동전상’(관객상) 가운데 김선빈 감독 ‘수능을 치려면’과 김은영 감독 ‘더 납작 엎드릴게요’가 포함되었다. 6회 제주혼듸독립영화제에선 김선빈 감독의 ‘소녀탐정 양수린’이 혼듸연기상을 수상한 바 있다. 여기에 수상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그동안 상대적으로 진출사례가 적었던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채지희 감독의 ‘점핑 클럽’과 권민령 감독의 ‘사라지는 것들’이 초청받기도 했다. 전부 다 열거할 순 없지만 대구독립영화의 성과를 영화제 진출 및 수상실적으로 본다면 꾸준히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라 봐도 무방하겠다.
◆ 장편영화 제작 및 상업개봉 진행현황
그동안 지역 독립영화는 대부분 단편 위주였지만 서서히 장편 제작 및 개봉으로 중견 감독들의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2023년에는 2021년 제작된 김현정 감독의 ‘흐르다’가 3월, 2022년 제작된 유지영 감독의 ‘나의 피투성이 연인’이 11월에 극장에서 개봉했다. 김현정 감독의 경우는 첫 번째 장편이고 유지영 감독은 ‘수성못’ 이후 두 번째 장편이다. 이중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2023년 대구독립영화를 떠올릴 때 독보적인 ‘아웃풋’으로 꼽히기에 무리가 없는 실적을 거뒀다. 해당 작품은 최초로 공개된 2022년 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시민평론가상을, 2023년엔 57회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KVIFF) 프록시마 경쟁 부문 대상(그랑프리)과 41회 토리노 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해외의 유서 깊은 영화제 수상은 국내 영화제의 실적과는 궤가 다른 인식을 주며 큰 화제가 되었다. 또한 독립영화 개봉실적에서 성공기준으로 꼽히는 1만 관객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아직 공개되진 않았지만 대구 독립영화계의 ‘큰형’. ‘큰언니’ 포지션인 최창환 감독과 중견 반열에 들어선 장병기 감독 등의 신작도 제작이 완료된 상태다. 단편으로 주목받았던 감독들이 자연스럽게 장편 제작으로 이행하는 패턴의 전형이라 볼 수 있겠다. 아마 현재 한창 단편 경력을 쌓아가며 호평을 얻고 있는 신진 감독들도 지역 중견 감독들의 경과를 따르려 할 테다.
하지만 여기에서 새로운 쟁점이 형성된다. 지역을 기반으로 작업해오던 감독들이 단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원과 예산이 필요한 장편 제작으로 중심을 옮기면서 그들의 작업이 지역 독립영화로 묶이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러운 이행이라 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삐딱하게 보자면 중견 감독들이 지역 독립영화의 상징성을 띠면서 주목받고 조명되어온 측면이 희석되는 감이 있다. 물론 필연적인 수순이다. 산업적 기반이 부재한 가운데 창작자 개개인이 자유로운 작업환경을 찾아 이동하는 건 아무런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극단적인 양극화로 기울어진 국내 영화계에서 독립영화가 상을 타고 개봉한다 해서 이들 감독에게 안정된 창작환경과 생활고 해결이 보장되지 않는 게 치명적이다. 여전히 중견 감독들이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지역 내 제작지원사업에 신청할 수밖에 없는 여건인데 신진과 선배 급이 경쟁해야 하는 구도가 발생한다. 이는 파이가 비약적으로 늘어나지 않는 한 해소되기 힘든 문제다. 창작자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들을 둘러싼 환경의 열악함에서 파생되는 쟁점이지만 쉽사리 개선될 기미가 없기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이다.
◆ 대구독립영화에서 발견되는 몇 가지 특징들
<특징> 대구영화학교의 압도적 점유율과 파생효과
다시 2023년 대구단편영화제와 오오극장 연말정산 기획전 상영 목록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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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캠프/ 고요 한가운데/ 못/ 사라지는 것들/ 소녀탐정 양수린/ 아무 잘못 없는/
운동회날/ 처음/ 휴식과 나의 남자친구/ OK목장의 결투/ 적색편이/ 저주사물/
점핑 클럽/ 비포 선라이즈/ 수능을 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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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편의 단편영화 중 <처음>, <적색 편이>, <점핑 클럽> 3편을 제외하면 모두 2019년 1기로 시작해 2023년 5기까지 배출한 대구영화학교 프로그램 출신이 감독으로 기재되어 있다. <처음>의 경우 감독은 해당되지 않지만 주요 제작진이 영화학교 출신이다. 점유율로 치자면 압도적인 지분을 차지하는 셈이다. 장편영화에 도전중인 중견감독들은 영화학교 기수의 선배 그룹에 속하며 실제로 교육과정이나 제작현장에서 선후배 격으로 교류하고 있는 중이다. 대구영화학교로 지역 영화제작의 길이 통한다고 봐도 무방할 테다.
물론 이 또한 그 자체로 문제될 건 전혀 없다. 오히려 영화학교가 출범하기 전에는 더 제한된 그룹 안에서 거의 모든 창작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으니, 체계적 교육과 공개적인 모집으로 외연이 확장되는 과정으로 보는 게 올바른 해석에 가까울 것이다. 오히려 대구영화학교 졸업생들이 공동작업에 품앗이를 해가면서 제작 스태프 층이 두터워진다고 봐야 할 테다.
하지만 유심히 주요 작품들을 살펴본다면, 극영화 장르로의 극단적 편중이 확인된다. 실험적 요소가 가미된 작업은 일부 있지만 다큐멘터리나 애니메이션 등 다양성 측면이 극도로 희박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극영화 내에선 전통적인 드라마 외에도 코미디, 공포 장르 등 상대적으로 다양한 소재와 결을 지닌 작업이 이뤄지는 점이 다행이라 하겠다.
다만 대구영화학교의 주요 재원이 되어주던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역영화 활성화 지원사업이 2024년에 전액 삭감되면서 영화학교 과정의 연속성이 살얼음판이라는 게 확인되고, 지금의 영화학교 교육과정이 극영화/드라마에 집중된 편중성이 생태계 종 다양성 측면에서 아쉬운 상황에서 개선이 이뤄지길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또 다른 여지가 있다면 대구영화학교 외에도 영화 관련 교육과정이 속속 형성되는 중이란 점이다. 주로 지역 내 미디어 교육기관에서 진행하는 워크숍들은 영화학교에 비해선 총량적으로 부족하지만 접근경로의 다양화 측면에서 주목할 가치가 충분하다. 이들 중 대구시민미디어센터의 실버세대를 타깃으로 잡은 제작워크숍을 수료한 문향영 감독의 단편 극영화 <이상한 희수연>은 15회 서울국제노인영화제 한국단편경쟁 우수상을 수상하며 작은 파문을 일으켜 주목받았다. 독립영화가 청년세대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극복한 드문 사례다. ‘다다익선’이라고 다양한 세대와 계층을 대상으로 한 교육 및 제작지원은 대구가 광역시 규모란 점에서 한층 더 북돋울 필요가 있다.
<쟁점> 극영화 편향은 개선될 수 있는가
대구영화학교의 주관 단위인 대구영상미디어센터는 영화학교와 별개로 독립다큐멘터리 제작 워크숍도 매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규모나 투입자원은 제약이 많다. 지역 내에 다큐멘터리 창작 집단이 꾸준히 유지되지 못하다 보니 롤 모델로 삼을 선배 영화인 절대다수가 극영화 지향이라는 점 역시 의외로 중요한 참고지점일 테다. 대구영화학교의 경우 교육과정부터 소그룹으로 묶어서 공동작업 경험을 축적시키는 게 지역독립영화 창작집단 활성화에 큰 몫을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다큐멘터리 워크숍의 성패는 교육과정보다는 오히려 워크숍 수료 후 동료로서 공동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멤버십 구축이 더 주요한 지점일 수 있겠다.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14년째 활동 중인 다큐멘터리 그룹 ‘오지필름’ 사례를 봐서도 입증되는 측면이다.
하지만 조금씩 극영화/드라마 분야 외에도 창작자가 늘어나고 다양해지면서 개선될 단초가 엿보이는 중이다. 극영화 창작자로 경력을 시작한 이다운 감독은 지난해 다큐멘터리 워크숍 과정을 마치고 수료작품 <버티는 밤>으로 3월 개최예정인 2회 반짝다큐페스티발에 초청되면서 해당 과정 최초 타 지역 영화제 진출 기록을 남겼다. 그밖에도 다큐멘터리 분야에서 지난해 조명된 작품들이 별도로 존재한다. 또한 성서공동체FM 등의 조력으로 완성된 흐뉸 감독의 ‘지금은 멀리 있지만’은 11회 디아스포라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된 것 또한 특기할 만하다. 이 역시 미얀마 민주화운동 관련 이주민/노동자들이 지역 미디어활동가들의 지원에 힘입어 지역영화의 영역을 확장하는 성과로 손색이 없겠다. (현재 대현동 이슬람 사원 이슈를 소재로 작업 중인) 박문칠 감독 외에 추가로 다큐멘터리 제작 지층이 형성될지 흥미롭게 지켜볼 생각이다.
그 외에도 실험/다큐멘터리 분야 등에서 (지역 독립영화협회나 미디어센터와 협력하거나 지원을 받지만) 개별 창작자와 그룹이 소수지만 확인되는 중이다. 어느 순간부터 대구 내에서 제작되는 영화들에 대한 온전한 파악이 쉽지 않을 만큼 여러 경로로 진행되고 있다는 증명이다. 아직은 수면 아래 있는, 아마 대부분은 명멸할 테지만 분명 눈여겨봐야 할 작품들이 적지 않을 게 분명하다. 개인 창작자의 경우도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는 사례가 관측되지만 ‘펄프필름’ 그룹처럼 공동창작집단을 지향하며 장편 제작에 도전하는 사례는 더욱 귀추를 주목해볼 만하다.
◆ 독립영화의 한계는 세계관의 한계일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구독립영화의 현재는 영화학교 수료생들의 작업으로 점칠 수 있다. 1기부터 5기까지의 작업을 꾸준히 지켜봐온 바, 기존 중견 창작자들의 제작현장에서 스태프로 참여했던 경력직들 위주이던 1-2기에 비해 점점 초심자 위주로 흘러오고 있음이 확인된다. 거칠게 정의하자면 1-2기가 예전 창작자들과 구심력으로 연결되어 왔다면 3기부터 점점 그 중력이 감소되면서 원심력 차원으로 농도가 약해졌고, 2023년 5기에 이르면 거의 무관하다고 봐도 될 정도에 도달했다. 신규 창작자 양성의 본령에 점점 도달해가는 셈이기도 하다.
그와 함께 기존 창작자들의 작품 경향을 일정부분 따라가던 신진 창작자들의 스타일에도 변화가 두드러지는 중이다. 물론 선배 그룹이라 해서 현재 한국독립영화 창작경향과 온전히 차별화된 지향을 가진 건 아니지만 중력장의 약화와 함께 전국적으로 관측되는 동 세대 창작 스타일이 대구의 신작들에서도 큰 차이 없이 목격되는 경향이 짙어진다는 판단이다. 기성세대의 선입견일 수 있겠지만 점점 약화되어온 사회참여 경향이나 보편적인 정치사회적 쟁점에 대한 의문이 창작의 출발점인 경우는 적어지고, 그에 비례해 자신을 표현하거나 혹은 자기위로/연민으로부터 비롯되는 지향이 확고해져간다. (강조하지만 이는 전국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이전 세대가 자아실현 욕구의 일환으로 글을 쓰거나 하던 것에서 지금 청년세대는 영상문법으로 이를 수행하는 경향으로 전환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청년세대 위주의 창작자들이 동 세대의 전반적인 경향을 따르는 건 가치판단의 영역이 아니라 당연한 추세임에 분명하다. 다만 정치사회적 집단행동과는 다른 각도에서 스스로가 속한 사회와 시스템에 발언하는 것이 문화예술의 역할이라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기성세대에 비해 다양한 경험이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 또는 그가 속한 세대 특성에 경도된 창작과정과 결과물이 사회적 공감대를 얻거나 타인과 소통하는 데 취약점이 노출되기 쉽다는 점은 한계로 봐도 무리가 없을 테다. 과거에 비해 정치색이 약하다거나 사회적 고민이 없다는 훈계가 아니다. 개인적인 데에서 출발해도 그 이야기가 보편성을 획득한다면 하등 문제될 것 없다. 그러나 다양성과 표현수위 확장 측면에서 요즘 창작세대 전반적으로 자신에서 출발해 자신으로 수렴되는 소재가 지배적 경향이라면 ‘획일화’ 또는 ‘단조로움’의 위험은 증가될 수밖에 없다. 이는 지역 내 독립영화 및 영화인들이 대구의 지역사회 속에서 ‘시민권’을 획득하는 데 일정한 한계로 작동하기 좋은 조건이다.
물론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영화 외적인 상황에서 기인할 테다. 이는 특정지역으로 영화적 방향과 소재가 국한되길 원치 않는 창작자 개별 입장과는 별도로 작동하는 영역이다. 청년 창작자들과 대화해 보면 확인되는 게 굳이 대구라는 장소에서 뿌리를 내린다거나, 지역 특성을 강하게 인식하며 창작활동을 이어갈 뜻이 없다는 게 일반적으로 관측된다. 이는 청년세대가 자리를 잡고 생활할 시공간으로서 ‘대구’라는 도시의 매력이 없다는 결론에서 도출되는 입장이다. 기성세대가 기득권을 유지하는 지역사회에서 비집고 들어갈 정치적 지분도, 최소한의 독립생활을 이어갈 경제적 지반도 얻기 힘든 청년세대에게 ‘의지드립’이나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 올 기회’는 환상에 가까울 테다. 그런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동네에 대한 관찰이나 기록 작업을 기대하는 건 억지일지도 모를 일이다. 대구독립영화 활성화에 있어 가장 큰 난관은 영화 내부가 아니라 그 바깥, 지역사회/시스템의 한계적 조건이란 생각이 갈수록 짙어만 간다. 물론 지역독립영화만 해당되는 문제일 리 없다.
<관련 정보>
◎ 대구영화데이터베이스 (https://dmdb.or.kr/main.php)
-대구영상미디어센터가 관리하는 해당 홈페이지는 현재 대구독립영화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자기완결 구조의 사이트다.
◎ 오오극장 홈페이지 내 ‘대구독립영화연말정산 2023’ 관련 게시판
(http://55cine.com/2023/12/05/dgi2023/)
-대구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이 매년 연말에 개최하는 기획전 관련 정보가 집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