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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태어난 신동집(1924년~2003)은 진학을 위해 고향을 떠난 젊은 시절 빼고는, 다시 대구로 돌아와 계명대학교에서 퇴임할 때까지 영문학 교수로 재직했다. 스물다섯 살 되던 1948년 여름, 시인이 되고 싶었던 그는 조부가 선뜻 내어준 5만원으로 500부 한정판 시집『대낮』(敎文社,1948)을 자비 출간했다. 서문은 박목월이 썼다. 그러나 막상 나온 시집이 오식 투성이라는 알고 창피해진 그는 책을 몽땅 파기하고 문학 수업을 새로 시작했다.
이런 연유로『서정의 유형』(영웅출판사, 1954)이 그의 첫 시집이 되었다. 이 시집은 3년 1개월 동안의 전쟁으로 남북한에서 총 350만 명의 사상자를 낸 한국전쟁이 정전(停戰)된 이듬해에 출간되었다. 시인이 전쟁의 한복판에서 써 모은 22편의 시는 전쟁의 참혹과 생사의 부질없음을 쉽고 단순한 언어와 기교로 전달한다. “살은 자는 죽은 자를 증언하라/ 죽은 자는 살은 자를 고발하라/ 목숨의 조건은 고독하다.”(「목숨」), “어제 만난 얼굴은 다시는 볼 수 없습니다./ 오늘 만난 얼굴은 어제의 얼굴이 아니올시다”(「얼굴」), “악수란 오늘/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 나의 한 편 팔은/ 땅 속 깊이 꽂히어 있고/ 다른 한 편 팔은/ 짙은 밀도의 공간을 저항한다.”(「악수」)
서구나 일본에서 전후시 혹은 전후시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와 시인을 말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만은 한국전쟁이 기준이다. 문학 평론가 김재홍에 따르면, 한국의 전후시인은 식민지 시대에 탄생하고 자라서 해방기의 혼란 속에서 시의 배웠으며, 6ㆍ25의 비극적 체험을 전후해서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 40년대 내지 50년대 초기 시인들을 가리킨다. 물론 이 시기에 등장했다고 모두 전후시라는 특색을 가진 시를 쓴 것은 아니다. 시인 김광림에 따르면, 전후시라는 말은 전후에 씌어진 시를 뜻하는 게 아니라, 전쟁의 악과 비참함과 죽음을 증언한 시를 가리킨다.
시인들이 전쟁에 접근하는 방법은 각기 다르다. 김춘수의「꽃」이 그렇다. 이 시에 대해서는 존재론적 탐구라는 해석이 우세하지만, 김재홍은 1952년에 발표된 이 시의 두 구절(“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에서, 전쟁이 가져온 허무와 서로를 적으로 간주해야만 하는 불신의 시대를 극복하려는 시인의 희구를 읽는다. 마찬가지로 신동집의 시 역시 전쟁의 참상을 그리거나 이념을 따지기보다 죽음 앞에서 무력해진 인간의 나약성과 혼란을 파고든다. 김재홍은『한국전쟁과 현대시의 응전력』(평민사, 1978)에서 이렇게 말한다. “김춘수와 신동집은 인간 존재의 실존에 대한 존재론적 인식을 추구하고 존재와 언어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탐구함으로서 암시의 미학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시사적 중요성이 인정된다.” 대구에 터잡고 후학을 가르친 두 사람은 대구 문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시인의 전모를 훑어볼 수 있는『신동집 시선』(탐구당, 1983)을 보면, 첫 시집을 낸 이후 약 30여 권의 시집을 남긴 신동집의 전후 체험은 시의 표면(언명)에서 급격하게 사라졌다. 대신 역사(전쟁)에 억눌려 있었던 ‘존재 언어’(존재를 밝히려는 언어적 노력)에 더욱 몰두했다. 그런 끝에 얻은 수작이「빈 콜라 병」이다. “빈 콜라 병에는 가득히/ 빈 콜라가 들어 있다./ 넘어진 빈 콜라 병에는/ 가득히 빈 콜라가 들어 있다.// 빈 콜라 병에는 한 자락/ 밝은 흰 구름이 비치고/ 이 병을 마신 사람의/ 흔적은 아무데도 보이지 않는다.// 넘어진 빈 콜라 병은/ 빈 자리를 생각고 있다./ 그 옆에 피어난 들국 한 송이/ 피어난 자리를 생각고 있듯이.// 불고 가는 가을 바람이/ 넘어진 빈 콜라 병을 달래는가./ 스스로 풀어내는 음악이/ 빈 콜라 병을 다스리고 있다.”
시인은 어느 시론에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자연의 계시로서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곧 종교이고 시라고 말한바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빈 콜라병이라니? 동아시아의 자연 신학(자연을 신으로 여기는 사고)은 산수(山水)를 특권화했지 콜라 병과 같은 공산품은 멸시해오지 않았나?